우울증 상담을 받으면서 누군가 나의 감정을 깊이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내가 첫 남자 친구를 만난 때 겪은 일을 말하고, 독일에서 터키인 사장에게 성추행당한 일을 풀어놓았다. 그 당시에는 내 감정을 쏟아내기 급급해서 그때 선생님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잘 살피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표정이었던 것 같다.
첫 남자 친구도 성추행을 한 터키 사장도 용서할 수 없었지만 가장 용서할 수 없었던 건 나 자신이었다. 나를 지키지 못하고 어리석게 행동한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자책이 가장 큰 문제였다.
나는 내가 똑똑한 줄 알았다.
뭐든 잘 해낼 거라고 믿었다.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내가 내 앞가림은 할 수 있다고 자만했다.
그러나 우울증까지 오고 나니 이 모든 게 나 자신에 대한 허상이었다는 걸 인정해야 했던 것이다. 남자를 보는 눈도 없고, 나 자신을 지켜내지도 못했으며, 고집부려서 간 유학에서는 아무 성과도 없이 돌아왔고, 제대로 된 돈벌이도 없이 부모님께 기대어 사는 상황이면서 정서적으로도 전혀 독립하지도 못했다. 눈을 떠서 나 자신을 보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 인생이 완전히 내 손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왜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 자신의 잘 못만 생각난다. 그때 그 사람을 만나지 말았어야 한다. 그때 그 학교에 가지 말았어야 한다. 그때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했어야 한다고 여러 번 되뇌었다. 그러나 지나간 과거는 바꿀 수 없고 자책을 하는 동안 나 자신만 상처 입히게 된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자기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잔혹한지 아는가? 차라리 남을 탓하고 폭력을 가했으면 상대가 방어를 하거나 법에 의해 내 행동이 제한될 수 있었겠지만 내가 나 자신을 괴롭히는 건 한계가 없다. 하루에도 수십 번 머릿속에서 나를 고문하고 학대하고 죽이면서도 아무도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지 모를 수도 있다. 겉으로 멀쩡해 보였던 우울증 환자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택하는 이유다. 타인은 내가 나를 죽이고 있다는 걸 모르고, 그런 자학에는 제어장치가 없다.
상담선생님은 내가 나를 용서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용서는 타인이 아니라 자신을 향해야 한다. 내가 그들을 원망하는 마음 깊숙한 곳에 그날의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갈등이 남았기 때문이다. 이미 그 일은 지나갔음에도 여전히 그 사건 속에 살고 있는 건 나 자신이다. 그렇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분열되어 지독하게 싸워대면서 우울증이 생긴 것이다. 나의 우울증의 원인은 자기 자신에게 향하는 분노였다.
그때부턴 나 자신에게 관대해지는 법을 연습했다. 충분히 자고 쉬고 응석부리고 책임지지 못하는 일을 책임지겠다고 자만하지 않는 것. 내가 강하지 않고 약하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나는 어리숙했고, 스스로의 가치를 몰랐고, 부족함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고, 내가 잘 해낸 건 나를 응원해주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그러니 난 지혜로워질 수 있고, 내 가치를 배울 수 있고, 부족함을 채워나갈 수 있으며, 내가 힘들 때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걸 떠올려야 했다. 그렇게 나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를 인정했다. 그제서야 모든 것이 바로 보이기 시작했다. 한계를 인정한 그 곳에서 추락은 끝이 나고 바닥에 부딪힌 것이다. 내 초라함을 바로 보는 것은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더 이상 끝없는 추락은 없을 거라고 안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