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의 Step.02
남자를 혐오했던 건...
마음속에서 아버지와의 매듭이 하나 풀리고 3회 차 상담이 진행되었다. 상담 선생님이 제안한 다음 문제는 남성성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물론 남성성에 대한 문제와 나 자신의 여성성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첫 상담 때 내 입으로 이야기한 문제이다.
저는 제가 여자인 게 싫어요.
정체성에 대한 문제라기보다 무의식 속 뿌리 깊게 자리한 나의 여성성에 대한 좌절감이 원인인 것 같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여자답지 못하다'라고 자주 지적을 하셨다. 난 자기 의견이나 고집도 강하고 원하지 않는 일은 죽어도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고분고분하게 굴라거나 여자답게 행동하라는 말을 들으면 더 엇나가고 삐딱하게 구는 아이였다. 난 나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하는 아버지를 원했고 아버지는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에 잘 적응하는 딸을 원했던 것 같다.
그런 아버지가 유독 남동생과는 잘 지내는 모습을 몹시 질투했었다. 아버지는 드센 누나에게 주눅 드는 남동생에게 큰형에게 은근히 밀리는 둘째였던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나에게는 그것이 여자라서 받는 차별처럼 느껴졌었다. '내가 딸이라서 아빠가 날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그릇된 인식이 깊숙한 무의식에서 자라났다.
그렇지만 가장 치명적인 상처이자 분명한 원인은 남자 친구와의 관계에서 느낀 좌절과 고통이다.
첫 연애에 대한 상처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23살 때 대학교 과모임에서 만난 한 학년 높았던 선배와 첫 연애를 했다. 과 CC가 부담스러웠지만 같이 첫 데이트하는 모습을 동기들과 선배들에게 들켜서 어영부영 사귀게 되었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고는 말을 못 하겠다. 객관적이지 못한 나의 경험이자 감정이니까. 있었던 사실만 말하자면 이 사람은 사귀는 내내 사소한 거짓말을 반복했고 첫 관계에서 나에게 성병을 옮겼다.
처음엔 그게 성병 인지도 몰랐다. 자꾸 몸이 아프고 피곤하길래 요도염 같은 건 줄 알고 비뇨기과에서 약을 먹었는데도 전혀 낫질 않았다. 한달째 약을 먹어도 낫지 않자 비뇨기과 의사가 산부인과에 가보라고 했다. 그날 처음 산부인과에서 내시경을 했는데 화면에 내 자궁입구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불긋하게 염증이 부어서 짓무른 모습. 산부인과 의사는 염증이 너무 심하니 자궁경부암 검사와 임신 테스트부터 해보겠다고 말했다.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암과 임신이라니.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일이었고 이걸 부모님께 말할 수는 없으니 남자 친구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 남자 친구였던 그 남자는, 그리고 나에게 성병을 옮긴 당사자였던 그 남자는 임신 테스트를 한다는 메시지를 읽자마자 연락이 두절되었다. 혼자 산부인과에서 초조하게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나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이윽고 암도 임신도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의사는 대신 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며 남자 친구도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임신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남자 친구에게 보내니 금방 답장이 왔다. '왜 연락하지 않았냐고, 나 혼자 산부인과에서 결과를 기다리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는 말을 했더니 마음이 심란해서 산책을 다녀왔다는 답장이 왔다. 마음이 심란해서 산책이라니... 의도가 투명해서 더욱 괘씸하고 화가 났다. 남자 친구는 비뇨기과에서 성병 검사를 하고 약을 받아왔다. 그가 보균자인 게 맞았다. 그는 20대 초반 원나잇 한 여자가 옮겼을 거라며 그 여자 탓을 했다. 원나잇에 성병에 임신테스트란 말에 연락 두절되는 비겁함까지 여러 모로 최악인 남자다.
그런데도 바로 헤어질 수가 없었다. 당장 골반염까지 번져서 절뚝거리는 몸으로 기말고사까지 쳐야 했고 당시 부모님께서 해외여행을 가셨기 때문에 날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난 그게 첫 연애였고, 나를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을 못했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용납해선 안 되는 선을 알지 못하고 혼자 방황했다.
헤어지지 못하고 애매한 만남을 이어가는 동안 사랑과 증오는 내 안에서 몸을 합치고 기괴한 충동들을 낳았다. 나는 가끔 그의 목을 비틀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다는 기분도 들었다. 그런 파괴적인 감정은 밖으로 향하기도 했지만 자기 반향적으로 나에게 돌아오기도 했다. 난 나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고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
나 자신을 지켜내지 못한 멍청한 여자였으니까. 경솔하게 몸을 섞은 일도, 나에게 병을 옮긴 남자에게 시원한 복수도 하지 못하고 헤어지지도 못하는 나를 자책하고 미워했다. 똑똑한 척하는 헛똑똑이. 파괴적인 감정들은 나와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런 불안정한 관계에서 남자 친구의 사소한 거짓말들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내가 그와 이별을 결심한 건 내가 갑자기 눈이 돌아버려 그를 죽이고 남은 내 인생을 교도소에서 보낼지도 모른다는 섬찟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남자 하나 잘 못 만났다고 내 인생을 망칠 수는 없다. 그래서 그와 헤어졌다. 그러나 이미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 깊은 고통을 질겅질겅 곱씹고 다시 게워 올려 되새기고 분노와 파괴적인 충동을 여러 번 삼켜내며 이 모든 것이 괜찮다고 느끼는 때가 올까... 첫 연애에서 느낀 배신감은 깊은 상처를 줬고 남성 자체에 대한 혐오감으로 남았다. 그래서 첫 연애가 끝나고 4년 동안 남자를 만나 연애를 하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다음 연애는 28살 즈음이었고 내가 한창 우울증 상담을 받고 있던 때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용서하지 않은 건 남자가 아니라 그때의 나 자신이다. 멍청하게 잘 못된 선택을 하고도 쉽사리 그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과거의 나. 남자를 혐오하는 것은 곧 나 자신을 혐오한다는 말과 같았다. 내가 여자였기에 이런 일을 겪는다고 생각했으니까. '모든 원인은 내가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임신과 질병에 대한 리스크는 고스란히 여성의 몸을 가진 내가 져야 했다.
그렇게 자신을 혐오하고 인류의 절반을 적으로 돌리는 삶이 즐거웠겠는가. 난 속에서부터 자기모순에 뒤섞여 부패하고 있었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주변에 독을 뿌리고 다녔다. 세상 모든 게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요즘에 인터넷에서 지독하게 싸워대는 남녀 갈등을 보면 그때의 나를 보는 것 같다. 나는 그들에게서 상처 받아 잔뜩 움츠리고 혐오로 자신을 보호하려던 나를 본다.
인간의 혐오라는 감정은 모두 상처에서 온다. 한번 상처 받으면 우리 뇌가 고통을 회피하려 대상에 혐오의 감정을 덧씌워 놓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벌레와 뱀 따위를 혐오한다. 그것들에 당한 일은 유전자 깊이 박혀있을 것이다.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다. 남자에게 상처 받은 여자가 남자를 혐오하고 여자에게 상처 받은 남자가 여자를 혐오한다. 싫어하고 피하게 만들어서 자기를 보호하려는 마음이다. 그래서 난 무언가를 혐오하는 사람을 보면 그의 상처를 들여다본다. 그는 지금 아픈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도 참 많이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