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의 Step.01

일단 하나씩 짚어보자.

by 구름조각

우울증이란 걸 내 방에 비유하자면, 마을에 홍수가 나서 내 방이 쫄딱 침수되었다고 말하면 좋을 것 같다. 어디서부터 치워야 할지 막막하고 이 중에 하나라도 건질 것이 있을까 절망스러운 때, 일단 부서진 가구부터 들어내자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는 게 상담사의 역할이다.


뒤죽박죽 엉킨 마음의 상처들 중에 일단 제일 심하고, 당장에 치료할 수 있는 것.

상담 선생님은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말했다.


학교 다닐 때도 진학상담이나 학부모 회의 같은 일이 아니면 부모님 모시고 오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부모님께 내가 아프다고, 그것도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나마 엄마에게 말하는 건 좀 나았던 것 같다. 엄마는 기꺼이 상담소에 방문했고 선생님과 엄마가 따로 이야기를 나누셨다. 그때까지 엄마는 나의 '우울하다'는 말이 그저 기분이 안 좋다는 말로 알았다고 했다.


상담사가 병명을 분명하게 말해주는 것은 막연한 공포를 없애주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특정할 수 없는 감정들에 고통받을 때는 그것이 실체가 없는 적으로 느껴지지만 그것의 이름을 알게 되면 구체적인 대상으로 여겨진다. 우울증이라는 병명을 받는 것만으로도 내가 어떤 어려움을 느끼는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내 상태를 설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상담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상담 선생님은 일단 내가 우울증이 있다는 말을 하면서 가족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해주셨다. 그건 엄마가 내 심리상태에 관심을 가지게 했고 나와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줬다. 만약 나 혼자 엄마에게 내가 우울하고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으면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진 않았을 것 같다. 씁쓸하지만 의료인의 권위가 훨씬 더 설득력 있는 건 사실이다.


그날 상담 이후로 엄마는 부쩍 나를 배려해주고 좀 더 쉴 수 있게 해 주었다. 다만 그게 너무 눈치를 본다고 느낄 정도였다는 게 문제였다. 엄마는 나름의 죄책감 때문에 고통받고 있었고 내 우울증이 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나도 처음에는 아픈 아이가 심통을 부리듯 엄마에게 모질게 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이 편해지는 건 절대 아니었다. 당시에 나는 엄마와 감정적으로 너무 많이 연결되어 있었다.


정말 어려웠던 건 아빠에게 내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는 거였다. 일단 말을 꺼내는 것부터 힘들었지만 함께 병원을 가 달라는 말을 하기는 더 힘들었다. 아빠의 무뚝뚝한 얼굴은 내가 아프다고 말하는 순간 날 한심하게 바라볼 것 같았다. 우울증이라니 무슨 배부른 소리 하냐고 질책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돌려 말한다고 한 것이 상담비가 비싸니 좀 도와줄 수 있겠냐고 말한 것이었다.


그 말에 아빠는 냉정한 말투로 "그 돈을 왜 내가 줘야 하냐?"라고 물었다. 딸이 우울증이라는 말보다 돈 얘기에 거절 부터라는 아빠에게 크게 실망했었다. 난 대꾸도 없이 출근했고 몇 시간 후에 아빠가 전화로 병원비가 얼마냐고 물어보셨다. 이번에는 내가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동안 우리는 매번 이렇게 어긋나는 부녀관계였다.


무슨 일로 마음이 바뀐 건지 아빠와 함께 상담소에 갔는데, 그날은 참 이상한 날이었다고 기억한다. 우선 상담 선생님은 아빠의 첫인상을 무섭고, 대단히 위압적인 느낌이었다고 말씀하셨다. 사실 가족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아빠를 좀 무서워한다. 그런 아빠에게 "따님이 지금 많이 아프고 어렸을 때부터 아빠와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많다"라고 하니 크게 동요하셨다고 했다.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고 하셨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데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아빠가 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상담소를 나와서 나와 동생, 아빠가 함께 고깃집에서 밥을 먹는데 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분명 오전에 나와 함께 병원에 다녀오고 내가 아프다는 말에 아빠의 눈시울이 붉어졌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빠가 갑자기 나에게 윽박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빨리 돈을 벌어서 집을 나가라는 말을 하면서, 제대로 된 직업을 찾아서 부모를 떠나라는 말을 했다. 그 말에 난 아주 울컥해서 그 말을 다 맞받아 치기 시작했다.


"아빠는 변하는 게 없다.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상처를 줘 놓고 내가 아프다는 지금도 나에게 윽박지르기만 하냐. 매번 날 그렇게 외면하고 상처만 주냐."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나는 완전히 돌아버렸던 것 같다. 고깃집에서 집까지 오는 동안, 그리고 집에 와서까지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며 아빠와 싸워댔다. 아빠가 더 이상 이야기하기 싫다며 방에 들어가려 하니까 몇 번이나 주저앉혀서 아빠를 몰아세웠다. 내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덩치 큰 아빠를 밀치고 소리를 지르면서 나를 낳은 걸 후회하냐고 소리쳤다. 솔직히 내가 딸이어서 싫으냐고, 왜 날 이해하려는 노력은 한 번도 하지 않냐고 소리를 질렀다.


결국 아빠가 먼저 울음이 터졌다. 아이처럼 무너지면서...


"너를 아프게 해서 내가 너무 아프다. 평생을 열심히 살아왔는데 남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서 너무 괴롭다."


그런 말을 하면서 얼굴을 감싸 쥐고 괴로워하셨다. 너를 아프게 해서 내가 너무 아프다는 아빠의 그 한마디가 내 평생의 한을 다 녹여주는 것 같았다. 나도 아빠를 안고 엉엉 울었다. 내가 다 잊겠다고, 내 가슴의 빈 곳은 비어 있는 채로 두겠다고, 더 이상 아빠를 원망하지 않겠다며 울었다.


그날이 지나고 한참 후 어느 날 저녁에 아빠와 둘이 맥주를 한잔 마셨다. 캔맥주를 하나씩 들고 동네 편의점 앞 의자에 앉아서 홀짝홀짝 술을 마시다가 아빠가 그런 말을 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항상 자랑스러운 딸이었는데 우리 딸에게 그런 힘든 일이 있는지는 몰랐다. 미안하다.


무뚝뚝한 그 말에 또 눈물이 뚝뚝 흘렀다. 나는 항상 아빠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이미 예전부터 아빠의 자랑스러운 딸이었다는 걸 몰랐다. 우리 부녀는 그렇게 화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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