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로 심리상담소에 찾아갔다.

스스로를 우울증이라고 판단한 이유.

by 구름조각

현재 상황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독일에 유학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지만 뚜렷한 성과도 없이 한국으로 돌아왔고, 부모님은 이혼 위기였다. 어머니는 자신의 실수를 어떻게든 만회해 보려 무리하게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했다. 갑자기 배달전문 음식점을 해보겠다며 나선 것이다.


어머니는 "서울에서 엄청 잘 되는 프랜차이즈인데 아는 사람 소개로 로열티도 안 받고 하기로 했어." 라며 나에게 가게 자리 잡힐 때까지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나는 그 일이 영 찜찜했다. 엄마의 허술한 돈 관리 문제를 알아버린 이상 새로운 사업을 하겠다는 것도 불안했고 이 모든 일에 얽히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 앞가림에도 빠듯한 상황에 누굴 돕고 말고 할 처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서울에 가서 일을 배워보겠다고 가긴 갔다. 그런데 일을 시작한 지 이틀째 큰 소리로 어머니에게 화를 내고 만 것이다. 난 엄마는 이런 일 할 수 없다며, 우선 육체적으로 너무 고되고 힘든 일이고, 여기가 잘 되는 건 순전히 근처에 메이저 대학이 3개나 있는 유동인구 밀집지역이기 때문고, 우리가 가게를 차릴 곳은 아파트 단지가 많은 주택지이며 지금 있는 가게에 주방설비를 그대로 가지고 가는 건 너무 낭비이고...


그렇게 구구절절 설명하고 반대해도 어머니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살다 보면 이게 사약인 줄 알면서도 들이켜야 할 때가 있는데 나에겐 어머니와 같이 일을 하는 게 바로 사약이었다.


인건비라도 아껴보겠다고 일주일에 7일을 아침 11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주문받고, 포장하고, 재료 손질하고, 가까운 거리는 직접 배달까지 나가며 일을 한지 한 달째. 하지 정맥류와 족저근막염 진단을 받았다. 그래도 일을 줄일 수는 없어 종아리에 파스를 붙이고 압박스타킹을 신어가며 일했지만 너무 힘들어서 일주일에 하루는 쉬기로 했다. 그때까지 어머니도 쉬는 날이 없이 일했지만 내가 절뚝거리며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걸 보는 것보단 본인이 일을 더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일주일에 단 하루뿐인 그 천금 같은 휴식날. 친구와 함께 사진전시회를 보러 갔다. 늘 함께 하면 즐거운 친구와 내가 좋아하는 문화생활을 하며 맛있는 음식도 먹고 수다도 잔뜩 떨다가 오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친구를 만났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친구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귀에 안 들어오는 것이다. 대화에 전혀 집중도 안되고, 친구와 앞에 앉아 있어도 뭔가 꿈속에 있는 듯 몽롱한 기분이었다.


전시회 사진을 봐도 아무 감흥이 없고 가라앉은 기분은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어떻게든 전시회에 걸린 사진이며 영상에 집중해보려는데 모든 것이 다 의미 없이 느껴지고 너무 피로하기만 했다. 전시장을 나와서 카페에 앉아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문득, 내가 이 우울한 기분을 2년이 넘게 느끼고 있으며 그동안 한 번도 기분이 나아졌다고 느낀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독일에 도착한 날부터 2년간, 단 한순간도 즐겁거나 행복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외로움과 고립감은 가족들과, 친구들과 함께 있는 순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으면서 심리상담소를 검색해 집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예약했다.

제가 아파서요. 우울증 상담을 받고 싶어요.

첫 상담을 받은 날이 기억난다. 차분하게 내 상황을 설명하고 약이라도 받아오려 했었다. 그런데 상냥해 보이는 선생님이 "뭐가 힘들어서 왔어요?"라고 묻는 순간부터 미친 듯이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다. 그러고 2시간 동안 펑펑 울다가 나왔다. 울면서 무슨 말을 쏟아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선생님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진료 표에 뭔가를 메모하던 일은 생각이 난다.

"그랬군요."

"저런..."

"너무 힘들었겠어요."

이런 말들이 큰 위로가 되었다. 내가 겪고 있는 일이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며 이게 내가 특별히 나약하거나, 부족해서 생긴 일이 아니라는 인정 같기도 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내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선생님께 "죽고 싶다."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렇게는 살기 싫다고, 매일 잠도 못 자고 내 인생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 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다시 내 인생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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