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치료의 Step.05
엄마와 나는 서로 닮아 있다.
냉동실에는 엄마가 제수음식을 배울 때 썼던 곶감이나 연잎 같은 것들이 남아 있고, 우리 몸에 좋다고 담아둔 인삼청이나, 홈쇼핑에 저렴할 때 사둔 냉동 고등어 같은 것들이 나왔다. 그 모든 것들에 가족을 생각하는 엄마의 기억들이 함께 묻어 나왔다.
냉장고 정리를 하고 찬장에 묵혀둔 용기들과 미역이나 다시마 같은 마른 재료들을 버릴 때는 100리터 짜리 쓰레기봉투가 필요할 정도였다. 고장 났지만 버리지 못했던 믹서기, 뚜껑을 찾지 못한 밀폐용기, 엄마가 시집올 때 장만한 그릇들과 은수저까지. 그 시간들은 우리 가족의 역사를 되새겨 보는 엄숙한 시간이기도 했고, 찾던 용기를 의외의 장소에서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고, 그동안 왜 이렇게 묵혀두고만 살았는지 반성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청소가 거의 끝나갈 무렵, 엄마에게 말했다.
그동안 엄마가 집안일을 게을리한다고 탓하기만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누가 했어도 하면 될 일이네... 엄마가 집안일이며 바깥일이며 모두 다 해내지 못한다고 엄마가 자신의 책임을 저버렸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 보니 아무도 엄마를 이해하지 못해서 엄마 혼자 많이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어.
참 열심히 살아왔지만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엄마도 많이 속상했을 것이다.
엄마는 내가 기억하는 시간부터 항상 일을 했다. 미술 선생님, 학습지 선생님, 카페 사장, 보험설계사, 음식점 사장... 사이사이 일을 쉴 때는 가정주부로 있으면서도 항상 퀼트, 자수, 이바지 음식, 전통 민화, 제빵 같은 것을 배우러 다녔다. 늘 그렇게 의욕적으로 일을 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배우는 삶을 사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예전에는 좀 평범한 엄마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냥 아빠가 벌어다 준 돈으로 알뜰살뜰하게 살면 좋겠고, 집을 좀 깨끗하게 청소해두면 좋겠다고. 정리되지 않은 냉장고나 어수선한 집을 보면 늘 엄마가 자기 할 일을 게을리한다고 생각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엄마가 해야 할 일은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이다. 한 번도 내 엄마가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루고 싶은 일이 있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는 물어본 적이 없다.
나를 낳기 전, 24살의 엄마는 무슨 꿈을 꾸면서 살았을까. 나와 같은 28살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내려놓았던 건 뭐였을까.
엄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나의 질문에 이렇게 답을 했다.
난 인생에서 남들이 인정할 만한 성취를 이루고 싶다.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도 뭔가 의미있고 특별한 것을 남기고 싶다. 자기의 삶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인정을 받고 싶고 아빠도 엄마가 하는 일을 보잘 것 없다고 무시하지 못하게, 자기를 인정할 만한 뭔가를 이뤄내고 싶다.
나에게는 그것이 삶의 진정성을 위한 투쟁으로 느껴졌다. 보잘 것 없이 사라지는 삶이 아니라, 그래도 눈 감는 순간 "내 인생 잘 살았다."라고 만족할 수 있는 삶을 향한 투쟁.
한편으로는 배우자에게 자신의 이상을 인정받고 지지받고 싶다는 욕구을 느꼈다. 아내와 남편, 엄마와 아빠.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결혼생활이 참 힘든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유년기에 갖지 못했던 안락한 가정을 원했고, 자신의 엄마가 집에 있기를 바랐듯이 아내가 가정을 지켜주기를 원했다. 가장으로서 열심히 돈을 벌어올테니 밖에 나가서 일 벌이지 말고, 살림이나 하면서 살라는 그 말에는 집에 왔을때 자신을 반겨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이 숨어 있었다.
어머니는 자신이 하는 일을 배우자에게 인정받고 지지받기를 바랐다. 엄마에게 직업이란 단순히 생계를 위한 돈벌이 이상의 자아실현의 영역이거나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이었다. 엄마는 때로 집에서 쉬다가 해지는 노을을 보고 있으면, '오늘 하루를 버렸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런 공허감을 느끼기 싫어서 뭐든 배우고 만들어내고 일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제서야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 또한 그런 삶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고 있기 때문에.
내 인생이 이대로 허무하게 흩어져 버리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에.
이 삶에 진정으로 만족하고 싶기 때문에 우리는 멈춰 있을 수 없다.
나의 이런 진정성을 향한 투쟁은 어머니와 꼭 닮았다. 그래서 난 어머니를 이해한다. 어머니라는 이름 너머의 한 여자의 삶과 그 안에 숨은 갈망을 이해한다.
그렇게 우리 모녀는 화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