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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Apr 21. 2021

흰머리를 받아들이는 자세

내 모습을 온전히 사랑하고 있나요?

    한때는 풀메이크업에 목숨을 걸었다. 어렸을 때 미술을 공부한 덕에 흰 도화지에 얼굴을 새로 그리는 마음으로 얼굴에 새로 이목구비를 그려 넣었다. 내 얼굴 생김을 글로 생생하게 표현하기에는 힘들지만, 눈에 쌍꺼풀이 있고 콧대가 좀 낮은 편이며 입술이 작다. 입 자체가 그리 크지 않아서 입술 폭이나 콧방울 너비가 비슷하다. 그래서 메이크업을 하면 입술을 크게 그리고 콧대에 쉐딩을 강하게 넣어주고 눈에 반짝이를 잔뜩 올려 강조해준다. 그렇게 메이크업을 하고 나면 제법 '센 언니' 느낌이 나는데, 누군가는 내 완성형 얼굴을 보고 '담배 필 것 같이 생겼다'는 짧고 굵은 한줄평을 남겨 줬다.


    메이크업뿐만 아니라 헤어 스타일도 큰 고민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1년에 두 번 매직 스트레이트를 해서 곱슬머리를 생머리처럼 피고 다녔다. 추석 설 전에 새로 자라난 곱슬머리를 피는 게 설빔 추석빔을 준비하는 것과 같은 중요 이벤트였다. 그 당시에 전지현의 긴 생머리가 워너비였기 때문에 곱슬머리는 최대 고민이었다. 


    매년 스트레이트 펌을 했지만 고3 수험생 스트레스와 야자(자율아닌 야간자율학습)에 지쳐 짜증이 극에 달한 어느 날, 거추장스러운 머리를 쇼트커트으로 잘라버렸다. 짧은 머리에 스트레이트 펌을 하는 것도 우스워서 그 뒤로는 곱실거리는 머리를 그대로 두고 살았다. 그래도 염색만은 포기하지 않아서 머리에 오렌지색, 체리 레드, 베이지색 등으로 잘도 바꾸고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이 모든 걸 그만두었다. 메이크업도 펌도 염색도. 지금 난 노메이크업에 자연스러운 곱슬머리에 드문드문 새치가 보이는 상태이다.


    꾸밈을 노동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를 꾸미는 일 자체는 즐거운 일이었고 나름 재주도 있었으니까. 다만 이 모든 일이 타인의 기준에 맞춰져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 두기로 한 것이다. 긴 생머리가 유일한 미의 기준도 아닌데, 내 자연스러운 곱슬머리에 부스스하다는 둥 지저분하다는 둥의 평가를 듣는 게 지겨웠기 때문이다. 


    내 코가 낮아서 딱히 문제가 될 것도 없는데 "넌 코만 손보면 굉장히 예쁠 것 같아."라는 말을 듣는 게 불쾌했기 때문이다. '그래. 내 코가 낮아서 뭐가 어떤데? 너한테 예쁘다는 소리 들으려고 내가 그 고통스러운 수술 과정을 감내하고 거액의 수술비를 마련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건가?' 이런 외모 평가가 숨 쉬듯 자연스러운 대한민국에서 내 있는 모습 그대로 사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콧방울이 동그란 내 코에 보형물을 넣어 봤자 별로 안 예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곱실거리는 내 머리카락은 그 자체로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꾸미는데 애쓰는 걸 그만두는 이유는 꾸며내지 않은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기 때문이다. 콧대에 쉐딩을 넣을 때마다 내 코가 더 높았으면 좋겠다고 바라지 않고, 피부에 파운데이션을 바를 때마다 내 피부가 연예인들 피부처럼 투명하고 깨끗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말이다. 내 얼굴을 남 얼굴과 비교하면서 어쭙잖은 우월감이나 비참한 열등감도 느끼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난 꾸미지 않는 게 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꾸미는 행위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누군가에게는 네일아트를 받고 외모를 잘 관리하는 것이 자존감을 지켜내는 방법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꾸미는 일 자체가 자신의 고유한 개성을 만들고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다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 뿐이다. 얼굴에 그림을 그리면서 못난 얼굴을 감추는 일이라고 일이라고 생각했고, 항상 내가 부족하다고 나 자신을 평가했다.


피부가 푸석하고 잡티가 많고, 

눈이 작고, 

코가 낮고, 

입술이 너무 작고, 

몸이 마르지 않고, 

머리는 부스스한 곱슬머리라고 평가하면서


피부를 깨끗하게 가리고, 

눈을 크게 그리고, 

코에 쉐딩을 넣고, 

입술을 크게 그리면서 

어떻게든 날씬해 보이는 옷을 골라 입으며 

머리를 피려고 갖은 화학약품을 들이붓는 건


나 자신을 너무 지치게 만든다.

그래서 날 좀 쉬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이제는 나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 놓고 좋은 것나쁜 것, 예쁜 것못난 것을 나누는 일 따위는 그만두려고 한다.


    이런 내 심경의 변화를 매번 장황하게 설명할 순 없으니 누가 나에게 왜 안 꾸미냐고 물어보면 이 글의 링크를 보내줄 참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꾸미지 않기로 결심했다.'를 멋지게 설명하면서 조회수도 올릴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려보겠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무례한 관심에는 유머감각으로 받아쳐 본다. 내 새치에 호들갑 떠는 사람들에게는 외계인이랑 통신하는 안테나니까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정중하게 부탁해본다. 얼굴에 비비라도 바르라는 말에는 착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비비를 발랐다고 웃겨본다. 


    잠깐 벌거벗은 임금님 흉내를 내주면 그냥 웃고 다 지나갈 문제니까. 세상의 무례함과 싸울 때 유머는 피 흘리지 않고 이길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무기가 된다.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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