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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Sep 02. 2021

하얀 국화를 샀다

반려식물을 떠나보내며...

    올여름 뿌리파리의 습격이 있었다. 그 덕에 애지중지 키우던 허브들이 대부분 죽어버렸다. 특히나 애정을 가지고 1년 반을 키웠던 로즈메리가 죽은 게 서글펐다. 저 로즈메리를 잘라서 고기도 구워 먹고 친구들에게 로즈메리 사과잼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친구들은 은은한 로즈메리의 향이 나는 사과잼이 독특해서 좋았다고 칭찬해줬다. 아침에 일어나면 고양이의 밥을 챙겨주고 베란다로 가서 허브들을 쓸어 주며 신선한 향을 맡는 것이 좋았다. 그런 소소한 즐거움을 빼앗긴 게 속상하고 식물 하나 지켜내지 못하는 나의 무능함에 화가 난다.

*뿌리파리: 식물의 뿌리를 갉아먹는 해충


    버텨낸 식물들은 애플민트와 스피아민트인데 이 녀석들은 뿌리파리의 습격에 괴멸 수준까지 몰렸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그 살아난 이유가 묘했는데 아무래도 아버지의 담뱃재 때문인 것 같다. 아끼는 화분에 담배를 털어놨다고 노발대발했는데 이게 웬걸, 담뱃재 세례를 받은 화분들만 살아남아서 괜스레 머쓱해졌다.


    그래도 다 죽어가던 로즈메리에 다시 싹이 나나 싶어서 꽃집에 들고 갔다.


"어떻게...분갈이라도 해서 살려낼 방법이 없을까요?"

"이거 무슨 화분이에요?

"로즈메리 화분이요."

"이거 로즈메리 아닌데요?"

"네? 그럼 뭐예요?"

"그냥 잡초예요."


 새로 싹이 난 것이 로즈메리가 아니고 어디 다른 곳에서 날아 들어온 잡초싹이란다. 그 말에 망연한 사이에 꽃집 주인은 화분을 탈탈 털어서 버리고는 몸소 다른 화분에 난 잡초싹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화분에 저런 싹이 날 때가 있는데 그냥 잡초예요 잡초... "

"아 예..." 


꽃집 주인은 새 모종을 심어야 한다고 말했다.


    꽃집을 두 바퀴나 서성이고도 마땅히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행복나무라는 것도 추천을 받았는데 영 마뜩잖다. 로즈메리를 키우던 화분에 다시 로즈메리를 키우겠다며 화분을 도로 가져왔다. 대신 국화 모종을 하나 사 왔다. 하얀 꽃, 노란 꽃, 보라색 꽃도 있었는데 하얀 꽃잎에 노란 수술이 있는 것이 싱그러워 보여서 냉큼 골라 왔다.


    돌아오는 길에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에서 본 구절이 생각났다. 당근 잎에는 당근 향이 나서 샐러드로 만들어 먹으면 당근을 넣지 않아도 당근 샐러드 같은 느낌이 난다고 한다. 읽을 때는 신기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겨자의 잎에는 겨자처럼 알싸한 향이 나고 레몬 잎에는 레몬처럼 산뜻한 향이 난다. 잎이며 줄기며 뿌리며 나누어봤자 한 식물일 뿐인데 맛이 다를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무언가 쓸모 있고 쓸모없다고 규정하는 것도 인간의 이기심 때문이다. 돈 받고 팔 수 있는 것만 상품가치가 있다. 그렇지 못한 것을 쓰레기처럼 취급한다. 어디 인간이 식물만 그렇게 대할까. 돼지도, 닭도... 매년 구제역에 조류독감이 유행하면 땅에 묻어 살처분하기를 반복한다. 매년 그런 일이 반복되는 데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죽어가는 돼지, 닭, 소보다 인간이 더 멍청하고 어리석다.


    집에 있는 흙으로 작은 화분을 채우고 국화 모종을 심는데 쓰레기 봉지에 버려진 잡초싹이 생각났다. 그래도 파릇파릇 예쁘게 난 싹이었는데 키울 그랬다. 필요 없다고 쓰레기통에 버려지기에는 생명력이 갸륵하기까지 했다. 잘 찾아보면 예쁜 이름이 있을지도 모르는 데 잡초라는 무성의한 이름으로 불리면서 가차 없이 쓰레기 봉지에 버려지다니. 왠지 마음 한편이 불편하다.


    하얀 화분에 심은 하얀 국화는 참 예쁘다. 가을 몇 주를 잘 살고 나면 내년에 또 꽃이 핀다고 한다. 저 국화잎을 뜯어먹으면 국화향이 나려나... 시든 이파리를 몇 개를 뜯어내다 혼자 웃어 버렸다. 당근 잎 샐러드나 민들레 잎 샐러드처럼 국화 잎도 먹을 수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지 눈에 빤하다. 거기에 몸에 좋다고 소문이 나거나, 어디 유명한 브런치 가게에라도 등장하면 금세 동이 나고 말 것이다. 길가에 핀 국화들이 남아나질 않겠지. 그런 경우라면 오히려 쓸모가 없어서 오래 살 수 있구나. 사회에서 늘 나의 쓸모를 증명하려 아등바등 대다가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 오래 살겠구나...' 싶어서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그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면서 세상의 꽃들이 피고 지는 것이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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