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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Aug 28. 2021

연극이 끝나고 막이 내리면

삶의 연극에서 우리의 역할 놀이에 대하여


Actors are so fortunate. They can choose whether they will appear in tragedy or in comedy, whether they will suffer or make merry, laugh or shed tears. But in real life it is different. Most men and women are forced to perform parts they have no qualifications. The world is a stage, but the play is badly cast. 
배우들은 아주 운이 좋다. 그들은 비극에 나올지 희극에 나올지, 고통스러워할지 즐거워할지, 웃을지 울지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삶에서는 그럴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역할을 맡도록 강요받는다. 세상은 연극무대 같지만 배역은 형편없다. 

-오스카 와일드-


우리의 삶은 연극과 같다.


    삶을 연극이라 비유한다면 우리 모두가 주인공인 것일까? 안타깝지만 인생은 우리가 원하는 배역을 주지 않는다. 나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귀족 아가씨이고 싶지만 실제로는 가난한 농부의 둘째 딸일 수도 있다. 나는 전쟁터의 장수를 꿈꾸지만 실제로는 당장 내일의 삶도 기약할 수 없는 병약한 환자 역할 일수 있다. 그러니 우리 삶의 비극은 우리가 원하는 역할과 실제 역할의 괴리에 있다. 이상하게 나는 원하지 않았던 나의 시나리오가 따로 있는 것이다. 

    

    엄마로서, 딸로서, 학생으로서, 직원으로서, 군인으로서 등등. 수없이 많은 사회의 역할을 통해 우리가 살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에게 덧씌워진 역할과 그에 걸맞은 옷은 인생의 생애주기에 따라 계속 바뀐다. 자존감과 자아를 찾으려는 노력이 화두인 요즘은 그런 역할을 거부하고 자기의 인생을 찾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역할을 포기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것으로는 나 자신을 찾을 수 없다. 실제로 우리의 삶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회의 의무, 타인의 기대, 요구하는 역할과 마땅히 치러야 할 테스트를 피하면 성장은 없다. 


원하는 삶을 흉내내기


    원통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원하지 않았는데 부모, 환경, 성별, 지역, 사회적 지위 등등...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진 조건들이 너무 많다. 현재 한국에서 계층 간의 수직상승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나의 지위가 되기 십상이다. 아니, 더 어려운 상황으로 추락하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부모가 물려주는 유전자와 교육혜택이 나의 인생의 거의 대부분을 결정한다. 외모는 물론이고 성격, 재능에 이르기까지. 부모를 잘 타고나는 것이 인생의 로또인 셈이다.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서 사랑받고 자란 부잣집 아가씨를 흉내 내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다. 명품 사진이나 비싼 자동차 안에서 사진을 찍지만 사실 알고 보면 남의 물건, 남의 자동차다. 거짓된 이미지를 만들어 볼품없고 초라한 자신을 가린다. 비단 SNS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우리는 말로 남을 속이곤 한다. 가정에서 학대와 방치를 경험한 아이들은 '사랑받고 자란 아이'의 이미지를 가장한다. 어릴 때는 어설퍼서 들키기라도 쉽지만, 어른이 되면 교묘한 페르소나가 되어 자기 자신을 속이기도 한다.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이름 붙일 필요도 없다. 우리 모두 그런 거짓말 속에 살아가고 있으니까. 


역할이 아닌 사람의 본성을 보는 법


   그런 의미에서 한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나는 ~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30%만 믿으면 된다. 사람의 영혼은 말이 아닌 행동에서 드러난다. 실제도 대화를 할 때도 언어 자체로 전달되는 정보 보다 표정, 행동, 뉘앙스에서 전달되는 비언어적 정보가 70%나 된다. 입으로는 정의롭고 양심적인 사람이라고 하지만 실제 행동은 이기적인 사람도 많다. 이런 예시가 어려울까? 그럼 말로는 다이어트한다고 하면서 늘 실패하는 사람을 관찰해봐라. "다이어트 해야지."라고 말하는 동시에 뭔가를 먹고 있을 테니.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어서 혼자서는 자기 자신을 모른다. 스스로의 무의식적인 행동은 말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말과 행동이 다를 때는 행동이 진심이다. 그러니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이미지를 벗겨 내고 텍스트를 먼저 본 다음, 텍스트도 벗겨내고 실제 행동을 봐라. 거기에 그 사람의 영혼이 있다. 반대로 사기꾼들은 그럴싸한 이미지를 먼저 만든 다음 적당한 말로 둘러대면서 나를 등쳐먹으려 한다. 그때도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된다. 그 사람이 가진 고급 의류와 가방을 떼어낸 다음, 그 사람의 말을 음소거 한 다음, 행동을 보면 된다. 


    또 다른 예. 나를 사랑하는지 헷갈리는 남자 친구가 있나? 그럼 그동안 함께 쌓아왔던 시간, 추억부터 버려라.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이미지를 버리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하는 말도 지워라. 그런 다음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봐라. 약속 시간에 늦는 행동, 내 눈을 바라보지 않는 행동, 나를 배려하지 않고 자기 편한 대로 하는 행동에 그의 영혼이 있다. 그럴 때 "날 사랑하냐?"라고 묻지 말길 바란다. 그는 기계적으로 습관처럼 "사랑한다"라고 대답할 것이고 당신은 혼란스러울 것이다. 말을 믿고 싶어서 눈앞에 빤히 보이는 그의 행동을 지우고 있기 때문이다. 비참하게 끝이 나고 뒤늦게 깨달을 것이다. 그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사실 나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을.


마음에 들지 않는 연극일지라도


    삶을 연극에 비유한다면 분명한 주인공은 따로 있다. 다만 우리 각자의 서사만 나를 중심으로 돌아갈 뿐이다. 지나가는 행인 1에게는 지나가는 행인 1의 사정이 있고, 무수리 3에게는 무수리 3의 사연이 있는 법이다. 그러니 삶의 연극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빨리 파악하고 충실하게 역할을 수행하기를 바란다. 그 역할을 수행하면서, 옷을 뒤집어쓰면서 내가 누군지를 발견하게 될 테니. 


    공주님이 되고 싶었지만 여전사가 된 사람도 있을 거다. 화려한 무대에 서고 싶었지만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근로자도 있을 것이고. 멋진 CEO가 되고 싶었지만 한 가정을 경영하는 것에도 벅찬 사람이 있겠지. 삶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가져다준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 다음 역할, 그 다음 역할이 올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지나서 연극의 막이 내리면, 우리가 왜 이 땅에 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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