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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Apr 21. 2021

비혼은 아닙니다만...

당신은 결혼을 하길 원하나요?

    개인적으로 비혼 주의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피하고 싶다. 비혼 주의라는 단어는 '민주주의'나 '공산주의'처럼 이데올로기(이념)가 아니기 때문이고 정치적으로 사용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비혼 주의자들이 모여 세력을 형성해서 결혼제도라는 기존체제를 전복하고 비혼 주의자들의 정부를 만들자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냥 내 인생에서 결혼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결심 정도인데 거기에 '~주의'라는 단어를 붙이는 건 너무 거창한 표현이다. 


    그럼에도 비혼 주의라는 단어가 통용되는 이유는 아직도 결혼이 기본인 사회에서 개인의 선택을 표현할 만한 짧고 굵은 단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결혼할 생각이 없냐"라고 물었을 때, 내가 살아온 지난날과 결혼에 대한 나의 정의와 주변인들의 결혼을 관찰한 사례 등등을 구구절절이 설명할 시간도 에너지도 없을 때.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질문을 한 사람이 진지하게 궁금해하거나 장황한 설명을 듣고자 하는 의지가 없을 때 일축할 수 있는 한 문장.

저 비혼 주의입니다.

 

아. 간결하게 나의 입장을 표현할 수 있는 한 문장이겠다.


    사실 나는 파트너가 꼭 필요한 사람이긴 하다. 난 어떤 식으로든 친밀감을 나누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어떤 상대를 만나느냐에 따라 생각이나 라이프 스타일이 많이 변하는 사람이다. 꼭 연애만이 아니라도 우정과 가족들과의 관계 자체가 큰 의미를 주기 때문에 나도 내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내 미래 결혼 계획에 큰 걸림돌은 내가 나의 영역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나는 혼자만의 공간, 혼자만의 시간을 엄청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혼자만의 시간에는 생각이나 감정을 정리하기도 하고 이렇게 글을 쓰거나 취미에 몰입할 시간을 갖고 싶다. 그리고 나는 나의 공간 안에서 물건들이 나의 질서에 따라 놓여 있으면 좋겠다. 내가 편리한 순서로 주방도구가 정리되어 있으면 좋겠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물건만 집안에 들여놓으면 좋겠다. 그러나 타인의 결혼 생활을 엿보면 나의 그런 바람들이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일이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거다.


    서로 다른 생활방식을 가진 두 남녀가 만났는데 삶의 규칙이나 집 꾸미기 취향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그런 일로 투닥투닥 싸우며 정이 들기도 한다지만 갈라서는 일도 부지기수이지 않나. 더군다나 아이라도 태어나면 24시간 아이를 돌보느라 나만의 공간 따위는 상상도 못 한다. 


    예전에 직장에서 만난 40대 여자분께 혼자 있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하냐고 물었는데, 그분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난 한 번도 혼자 있고 싶었던 적이 없는데?"라고 반문하셨다. 그때 난 '아, 이런 사람만 결혼을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생각했다. 


    만약 나에게 이상적인 결혼생활이라면 직장 때문에 떨어져 지내는 주말부부나 김숙이 이야기한 것처럼 남편이 옆집에 사는 게 좋은 예일 것이다. 그런데 또 그렇게 살 거라면 굳이 혼인신고라는 과정을 거쳐 서로를 법적으로 구속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Olive 밥블레스유2 캡쳐. 저작권에 문제될 시 삭제조치하겠습니다.

    나와 같은 라이프 스타일을 공유할 수 있는 남자가 있다면, 그리고 서로 존중하며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난 얼마든지 결혼서류에 도장 찍을 생각이 있다. 그러나 상대의 라이프 스타일에 내가 일방적으로 맞춰야 하거나 반대로 상대방이 나의 인생에 휩쓸리고 말 결혼이라면 안 하는 게 낫다는 게 내 나름의 결론이다.


각자의 공간과 시간을 확보할 수 있으면서 서로 친밀감을 나눌 수 있는 관계.


 이런 관계라면 나도 결혼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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