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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Apr 22. 2021

나의 실패한 연애사

당신도 짝사랑에 울어본 적 있나요?

    내 지난 연애사를 읊어보자면, 그야말로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지난한 역사다. 난 천방지축처럼 아무나 만나서 사랑에 빠졌고, 어리둥절한 상태로 관계를 시작했으며, 빙글빙글 나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며 이별했다. 누군들 연애가 쉬웠겠냐만 나에게는 유독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자존감이 완전히 무너진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다지 길지 않은 연애기간이 지나면 아주 긴 쿨타임을 가져야만 했다. 산산조각 난 자아를 재조립하고 씁쓸한 기억 속에서 애써 배울만한 지혜를 건져내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첫 번째 연애를 1년 정도 한 후에는 4년 동안 솔로로 지냈고, 마지막 연애도 채 1년이 지나기 전에 끝이 나서 2년째 연애 휴식 중이다. 그 사이 크고 작은 만남이야 있었지만 제대로 관계를 시작했다고 말할 수도 없을 만큼 짧은 기간이라 나 혼자 그건 연애가 아닌 걸로 치기로 했다.


    길지 않은 건 연애로 치지 않는다는 단언에도 혼자서 하는 짝사랑을 연애 대한 글의 주제로 삼은 건, '사실 우리가 하는 모든 사랑이 짝사랑인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끝나고 나면 지난 시간들은 다 한여름밤의 꿈같이 아득해진다. 그렇게 죽고 못살았던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지금 헤어진 전 남자 친구를 보더라도 그때 사랑했던 느낌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냥 아닌 밤중에 고라니라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랄 뿐이겠지. 아니면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일 것 같다. 나에게 전 남자 친구의 존재란 그저 고라니나 좀비 같은 것이다. 불쾌한 공포와 당황 같은 거. 


    몇 번의 이별 후 슬픔이나 고통도 다 지난 후에는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밖에 없다. 


내가 사랑한 건 정말 너였나, 아니면 내가 이상화한 환상이었나 하는 질문들. 

그때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었나, 아니면 내 기분을 사랑하고 있었나. 

우리가 사랑이란 걸 했던 건 맞나. 


    내 마지막 연애가 딱 그러했다. 짝사랑 같은 연애. 함께 하는 동안 나 혼자만 사랑하고 노력하는 듯한 관계. 지나고 보면 즐거워했던 시간도 다 한여름밤의 꿈같아서 도무지 현실감이라곤 없는 연애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 구남자 친구에게는 '판도라의 상자' 같은 비밀이 많아서 그는 내 친구들 사이에선 '판도라남'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 판도라남과의 1년간의 연애는 다사다난한 스토리와 배신감과 좌절감과 실망감을 안겨 줬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에 대해 설명할 때 유난히 큰 감정의 진폭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잔잔한 감정 변화가 아니라 파동 그래프의 최고점과 최저점의 차이처럼, 아주 기쁜 환희의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아주 어두운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진폭이 큰 감정 탓에 어린 시절에는 조울증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었다. 이런 감정의 변화를 나의 특성으로 받아들인 후에는 '연애'라는 활동이 나의 감정을 증폭시킨다는 걸 알았다. 


    예를 들어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수치화하면 +10과 -10을 오간다고 했을 때 연애를 시작하면 감정의 폭이 +100과 -100 사이를 날뛰는 것이다. 내 남자 친구가 너무 사랑스럽고 이 관계에 환희에 가까운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동일한 사람에게 완전히 실망하고 관계 자체에 대한 깊은 우울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나에게 연애라는 활동 자체는 평온한 감정 상태평지풍파를 일으키고 나에게 감당하기 힘든 에너지 소모를 불러일으키는 골치 아픈 선택이다. 그렇기에 연애활동아주 도전적인 자세로 나설 수밖에 없다. 폭풍우 치는 날 거친 파도에서 서핑을 도전하는 마음으로 관계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처럼 굳은 결심으로 관계를 시작하지 않는 걸 알고 있다. 귀엽고 알콩달콩한 연애를 하는 친구들도 많고 말랑하고 편안한 친구 같은 연애를 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런 소박하고 예쁜 사랑은 찾아오지 않았다. 일단 그 관계에 발을 들이고 나면 깊은 소용돌이에 휩쓸리듯 온갖 감정의 폭풍을 겪고, 이러다 죽겠다는 마음이 들 때 구사일생으로 벗어나곤 했다. 그리고 이런 나의 깊은 감정은 오직 나만의 것이어서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도 어려워하기만 했다.

나는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 널 사랑할 수 없다.

    나의 첫 번째 남자 친구의 말이다. 나의 감정의 깊이에 맞춰 줄 수 없다는 말이었다. 나의 정성에 응답해 줄 수 없다는 말이었고 자신은 조금 덜 사랑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24살의 나는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단언했고 관계에서 벗어났지만, 그 후 여러 관계에서 일정한 패턴을 보이는 것을 발견하고 이것이 나의 문제라고 인정했다. 이렇게 큰 감정 변화와 관계에 올인하는 특성 탓에 나는 매번 혼자 하는 듯한 사랑을 했다. 왜 나만 사랑하는 것 같을까 라는 의문이 들면 강박적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확인해보고 싶어 했다. 좀 더 나에게 표현해주길, 나만큼 깊은 마음을 보여주길 기대했다. 번번이 좌절감이 찾아왔고 나의 관계는 매번 씁쓸한 실패로 남았다.


    30대가 될 때까지 수없이 사랑과 관계에 대해 고민한 결과 나의 가장 큰 문제는 '기대감'이란 것을 알았다. 나의 사랑이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 기대감. 

사랑이 눈에 보이는 결과로 나타나길 바라는 기대감. 

상대의 마음이 나와 비슷해야 한다는 기대감. 

사랑은 마땅히 나의 모든 걸 받아들일 거라는 기대감. 

이번에는 조금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 


    이 모든 기대감은 나의 마음속에 헛되이 자라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과 상대가 생각하는 사랑이 다르다는 것. 내가 관계에 쏟을 수 있는 에너지와 상대가 쏟을 수 있는 에너지가 다르다는 것. 내가 느끼는 감정은 나만의 것이고 상대가 느끼는 감정은 당연히 나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난 후에야 나는 지난 관계에서 무엇을 놓쳤는지 깨닫게 되었다.


    핵심은 내가 나의 감정을 사랑하고 그것에 빠져 있느라 눈앞에 있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감정이 고조되었을 때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장점으로 치장했고 감정이 조금 식었을 때는 모든 것을 실망스럽다고 느꼈다. 그렇게 감정에 따라 상대를 재해석하니 상대가 변했고 날 속였다고 오해한 것이다.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내가 너무 좋아할 때는 좋은 모습만 봤었고 내가 사랑하지 않을 때는 못난 부분만 비춰봤다. 분명 사랑할 때는 단점도 좋아 보이고 잘 못된 행동에도 마땅히 이유가 있을 거라 변호한 사람은 나 자신이다. 그 사람은 처음부터 원래 그렇게 살아왔고, 모든 인간이 그렇듯 다면적이고 입체적인 인격을 가진 존재였다. 하나의 특성이 상황에 따라서는 장점도 되고 단점이 되기도 하는 그런 보통의 사람이었다. 마찬가지로 나 자신도 변덕스러운 보통의 사람이었고. 그러니 내 연애가 별 볼 일 없는, 대단할 것 없는, 그저 그런 연애가 되고 만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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