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봄이 가는게 아쉬워 장미공원에 왔어요. 벌써 5월 말이니 5월의 장미도 벌써 시들어가고 있네요.
가는 봄을 붙잡고
아쉽다고 타박하면
다시 온다 약속하겠지요.
내 님들은 한번도 지킨적 없는 약속을
봄은 꼬박꼬박 지켰으니
아쉬워 하지 않고 보내는게 맞는 일이죠.
내년에 또 만납시다...
아쉬운 것은 가는 봄인지, 저물어 가는 나의 청춘인지...이렇게 혼자 시를 쓰며 멜랑꼴리에 빠져있는데 문득 냉동실에 얼려 놓은 두릅이 생각 났어요.
가는 봄 - 아쉬 워 - 내년 봄 - 봄 - 두릅- 냉동실 두릅- 두릅 돼지고기 말이- 오늘 저녁 반찬
대충 의식의 흐름이 이렇게 흘러간 모양인데, 멜랑꼴리에서 저녁반찬을 건져내다니 프로 주부의 마인드 같네요. 그래서 어제 저녁에는 두릅 돼지고기 말이를 먹었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 강가에 작은 땅을 가지고 계시는데 거기에 두릅나무를 심어 놓으셨어요. 매년 봄에는 두릅 수확을 가는게 가족들의 큰 숙제입니다. 땅에서 자라는 땅두릅이 아니고 나무에서 자라는 두릅 순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억센 가시가 돋아나기 때문에 순이 올라왔을 때 금방 따야 해요. 높은 나무를 길게 늘어내려 두릅 순을 따는 일은 제법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일인데다 봄볕에 얼굴이 까맣게 타듯 두릅 수확을 하고 있으면 너무 덥고 먼지나 두릅 진액이 묻어 옷이 성하질 않거든요. 그런데도 막상해보면 굉장한 성취감이 느껴져요. 애써 머리 굴리지 않고 단순하게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 만으로도 일용할 양식을 한 광주리 수확할 수 있으니. 저는 그날 제가 육체노동에 적성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딴 두릅은 그대로 두면 시들어 버리니까 날카로운 가시를 긁어 제거하고 데쳐서 보관해야 해요. 끓는 물에 소금 한스푼을 넣어 데쳐서 찬물에 재빨리 식힌 다음 물기를 제거해 차곡차곡 통에 채워 냉동실에 넣어두면 꽤 오래 보관할 수도 있어요. 아니면 간장과 식초, 설탕을 넣어 간장물을 만든 다음 두릅에 부어서 두릅 장아찌를 만들어 보관하기도 하구요.
올 봄에는 처음 먹어보는 두릅요리도 해봤는데 두릅 샤브샤브예요. 무와 소금만 넣고 끓인 맑은 육수에 봄 쭈꾸미, 미더덕을 넣고 미나리와 두릅을 데쳐 먹는 봄 스페셜 샤브샤브죠. 미더덕이 톡톡 터지면서 짠 맛이 점점 육수를 간간하게 만들어주는게 포인트랍니다. 거기에 두릅을 데치면 산뜻한 새순의 맛이 느껴지고 부드러운 식감이 탱탱한 쭈꾸미와 대조되어 혀를 즐겁게 해줍니다. 거기에 향긋한 미나리를 한 입 가득 먹으면 라스트 팡! 봄 내음이 가득한 한 상이 되요. 밖에서 사 먹으려면 이런 밥상은 꿈도 못 꿀걸요?
그러나 저희 가족들이 가장 좋아하는 두릅 요리는 소고기 두릅산적이예요. 한번 데친 두릅을 소고기 치마살과 번갈아 산적 꼬치에 끼워 들기름에 구우면 얼마나 맛있는지, 막걸리가 술술 넘어 가죠. 예전에 농사짓던 분들이 새참으로 막걸리를 맛나게 드시던데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답니다. 고된 노동 끝에 마시는 시원한 막걸리는 오늘의 고생을 잊고 내일을 살게 할 힘을 줍니다.
냉동실에서 한번 얼었던 두릅을 그렇게 산적으로 먹으면 다 부스러질 것 같아서 이번엔 돼지고기 목살을 얇게 썰어 놓은 것을 사왔어요. 대패 삼겹살 두께의 얇은 돼지 고기 목살을 펼쳐 그 위에 생강가루와 소금, 밀가루를 묻혀 밑준비를 합니다. 밀가루를 묻혀야 말아서 구워도 고기가 풀리지 않는데, 밀가루 양이 너무 많으면 떡지니까 밀가루 반스푼을 체로 살살 뿌려주세요.
두릅을 고기 위에 놓고 말아서 프라이팬에 중불로 구워줍니다. 불이 너무 세면 금새 타버리더라구요. 소스는 꿀 한스푼에 간장 두 스푼을 섞어서 준비했는데 나중에 먹어보니 많이 달고 짭짤해서 조금 줄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니면 물을 한 스푼 섞어서 소스가 타지 않지 해도 좋을 것 같구요. 향을 더할 것을 고민하다가 후추는 너무 강할 것 같아서 후추 대신 레몬을 한 조각 썰어 넣었습니다. 레몬향이 전체적인 풍미를 끌어 올려주더라구요.
그렇게 만들어서 식탁에 내 놓으니 제법 때깔도 좋고 맛도 있는데 뭔가 좀 아쉬웠어요. 동생이 한입 먹어보더니 "누나 이건 밥반찬이 아니고 술안주인데?"라고 하네요. 아! 여기에 소주나 사케같은 맑은 술을 곁들이면 완벽할 것 같아요. 뭔가 한식 밥상에 혼자 이자까야 안주같은 메뉴가 되긴 했지만 달고 짭짤한 맛은 계속 입맛이 당기게 만든답니다. 두릅이 없다면 아스파라거스로 대체하셔도 좋을 것 같은 요리예요.
봄이 가는게 아쉽다고 붙잡을 수는 없으니 이렇게 먹는 걸로 아쉬움을 달래 봅니다. 내년 봄을 기다리며 이렇게 5월을 마무리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