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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Jun 07. 2021

음유시인의 노랫말을 따라 춤을 추자

신지훈이 들려주는 <시가 될 이야기>

    옛날 옛적에는 음유시인이라는 직업이 있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선율 위에서 위대한 영웅들의 신화, 이뤄질 수 없는 슬픈 사랑이야기, 고대 현자들의 지혜를 나르는 사람이었다. 그들의 이야기와 노랫말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과 연회에 초청하는 귀족 부인들 덕에 먹을 것과 잘 곳을 얻고는 또다시 홀연히 길을 떠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정처 없이 다니며 온 세상을 시로 쓰고 노래해 이 땅의 아름다움을 남기는 방랑자가 있었다.


    시대가 많이 변했지만 난 여전히 가수의 노랫말은 음유시인들의 노래처럼 한 편의 시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가수는 노랫말에 진심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는 트렌드와는 조금 동떨어진 올드한 취향 탓에 "남자들의 코피가 팡팡파라파라팡팡팡"같은 가사나 "죽고, 죽이고 싸우고 외치고. 이건 전쟁이 아니야"라는 등의 가사는 영 어색하다. 전자의 가사는 지나친 자기애가 오글거리고 후자는 사회비판이라고는 1도 모르는 뽀얀 얼굴의 아가들이 부르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없는 아이돌이 사회비판적 가사를 부르는 건 뭔가 제 옷이 아닌 걸 입은 것처럼 우스워 보인다.


    내가 아이돌들의 해맑은 미소와 멋있는 안무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나는 K-POP의 황금기라는 2008년에 고등학교를 다녔고 모든 음악방송을 P2P에 저장해서 돌려 보곤 했다. 그때는 P2P라는 디바이스가 있었고 모범생들은 거기에 동영상 강의를 저장해서 듣곤 했지만 나는 늘 음악방송 동영상과 노래를 저장해 놓고 다녔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몰래 기기를 교실 TV에 연결해 큰 화면으로 빅뱅의 컴백 무대나 소녀시대의 무대 영상을 틀어 놓았다.


    나 때는 샤이니, 동방신기, 2ne1, 비스트, 카라, 엠블랙, 원더걸스가 있었다. 그 시절의 나에게 아이돌은 이름 그대로 우상이고 스타였지만, 지금에 나오는 아이돌 팀들에게는 그만큼의 감정이입을 할 수 없다. 내가 좋아하던 아이돌을 몇 명이나 안타깝게 떠나보냈고, 그들의 세계도 마냥 화려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내 인생을 사는 것에도 바빠서 이젠 음악방송을 틀면 모르는 팀들이 더 많다.


    그러나 그렇게 아이돌을 좋아하던 때에도 나는 송창식의 <사랑이야>의 가사에 감탄하던 사람이다.

단 한번 눈길에 부서진 내 영혼

'대체 어떤 사랑을 했길래 그 눈길에 영혼이 부서지려나...'

사랑을 잘 몰랐던 10대의 나에게 슬픈 사랑의 낭만을 알려준 노랫말이다. 난 옛 노래의 서정적인 감성이 좋았고 보고 싶어도 쉽게 볼 수 없었던 시절의 낭만을 사랑했다. 편지를 보내 답장을 기다리고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던 시절의 낭만. 적당한 그리움이 사랑을 더 깊게 만들어 준다는 걸 요즘 사람들은 모른다.


    내 취향이 어딘가 현대의 유행, 시대의 흐름과는 많이 뒤처져 있다는 걸 안다. 비단 노래 취향뿐만 아니라, 먹는 것, 입는 것 그리고 사람과 관계를 맺는 태도에도 뭔가 촌스러운 취향이 묻어 있다. 대형마트에서 사시사철 깔끔하게 포장된 재료를 살 수 있지만 여전히 시장에서 산 신선한 채소들로 직접 만든 먹을거리를 선호하고, 한번 정을 들인 옷은 7~8년이고 아껴 입고, 나의 쓸쓸한 영혼을 채워줄 낭만과 사랑을 꿈꾼다. 러니 이런 가사에 마음이 무너지는 것이다.


속절없다는 글의 뜻을 아십니까.
난 그렇게 뒷모습 바라봤네.


     추운 겨울날 온 산을 뒤덮은 눈처럼 슬픔과 외로움이 덮어버린 지난 사랑의 추억들을 떠올리면서, 그래도 그늘진 날마저 아름다웠노라고 노래하는 음유시인의 목소리. 나의 낡은 취향은 이렇게 과거를 회상하는 것에 머물러 있다.


    난 사랑의 열기가 식은 잿빛 마음에 슬퍼하다가 이별의 슬픔은 사랑의 기쁨에 대한 값을 치르는 것뿐이라는 걸 깨닫는다. 다섯 걸음 계단을 올랐으니 다시 다섯 걸음 내려오는 것이다. 오르내리지 않으면 슬픔도 기쁨도 없을 테지만 그럼 재미없는 인생일 테지. 그러니 그늘진 날마저 모두 아름다운 날들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hMQmuXnZCCg


<시가 될 이야기> -신지훈


속절없다는 글의 뜻을 아십니까 난 그렇게 뒷모습 바라봤네

고요하게 내리던 소복 눈에도 눈물 흘린 날들이었기에

많은 약속들이 그리도 무거웠나요 그대와도 작별을 건넬 줄이야

오랫동안 꽃 피우던 시절들이 이다지도 찬 바람에 흩어지네

천천히 멀어져 줘요 내게서

나와 맺은 추억들 모두

히 돌아설 것들이었나

한밤의 꿈처럼 잊혀져 가네


날 위로할 때만 아껴 부를 거라던 나의 이름을 낯설도록

서늘한 목소리로 부르는 그대 한번 옛 모습으로 안아주오

천천히 멀어져 줘요

내게서 나와 맺은 추억들 모두

급히 돌아설 것들이었나

한밤의 꿈처럼 잊혀져가

별빛도 슬피 기우네요

서서히 내 마음 비추던 첫 모습의 당신

아름다웠네 그늘진 날마저 

난 한 걸음마다 회상할 테죠


우리 참 많이 미련 없이 커져서 한없이 꿈을 꾸었네

별을 참 많이 새고 또 새어서 시가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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