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사회가 요구하는 보통사람의 범주에 들고 싶어 안간힘을 썼던 때가 있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성실한 학생, 부모님이 바라는 착하고 의젓한 딸, 사회에 순응하고 건실할 일꾼이 되어 기꺼이 유능한 생산자의 지위를 가지는 삶. 난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워 왔고 20대 후반까지 기꺼이 사회의 기준에 순응하는 인생을 살았다. 정말 나는 학창 시절에도 모난 행동 한번 하지 않고 살았고, 공부를 잘하고 싶은데 생각만큼 성적이 안돼서 괴로웠지 공부라는 걸 때려치우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그런 나의 정체성이 완전히 무너진 건 학교 졸업 후 떠났던 독일 어학연수 때문이었다.
독일에 도착하고 비자 발급을 받을 때까지 첫 3개월가량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살았다. 가족과 친구들은 먼 한국땅에 았었고, 대학에서 졸업했으니 대학생도 아니고, 어학원은 아직 등록하지 않았고, 어디 일자리를 구한 것도 아니니 나에게 소속감을 주는 공동체가 아예 없었던 것이다. 이 소속되지 못한 느낌에서 오는 불안감이 생각보다 컸고, 내 역할이나 누군가 나에게 요구하는 책임이 전혀 없는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그 말은 그동안 내가 생각해온 나의 정체성이 순전히 내가 속한 공동체의 요구를 충족하는 것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상호의존적인 사회적 관계 속에서 외부의 조건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한 난, 그 누구의 요구도 받지 않는 난, 기꺼이 의무를 지지 않는 나는 아주 투명한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말 그대로 유령 같은 사람인 것이다.
낯선 곳에서 새롭게 만나게 된 나는 '내가 알던' 그리고 '남들이 규정하던'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사람
방에 최소의 물건만 들이는 사람
이불빨래를 매주 하는 사람
요리를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사람
소소한 즐거움과 매일의 산책으로 만족하는 사람
한국에서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수다를 떨고, 공모전이며 시험에 경쟁심을 불태우고, 어떻게든 세상에 날 보여주겠다는 야망에 이글거렸던 나 자신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용돈을 받은 족족 옷과 화장품, 장신구를 사던 버릇도 사라지고 정기적으로 회식과 모임을 하며 가지던 술자리도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아주 고요하고 평화롭고 지루한 일상만이 남았는데, 나는 그게 퍽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동안은 모임의 분위기에 맞추려다가 내 감정을 과장하고, 무의미한 사교 관계에 시간을 낭비하고, 타인의 시선에 맞춰 나 자신을 꾸미는 것이 알게 모르게 날 피곤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런 내적 평화는 내가 사회적 관계를 시작하자마자 깨져 버렸다. 어쨌든 이방인으로서 독일이란 나라에 받아들여지려면 그들의 규칙에 순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주변 룸메이트나 만나는 독일 사람들을 관찰하고, 국가가 인증하는 기관에서 교육을 받고, 내가 이곳에서 '쓸모 있는 인간'이란 걸 증명해야 했다. 그래서 어학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쉴 때는 쇼핑몰이나 카페에 앉아 사람들을 관찰하곤 했는데, 이곳엔 도무지 평균이나 보통의 기준 따위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내가 살던 함부르크에 유독 외국인 이민자들이 많아서였는지 다채로운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살고 있었다. 터키에서 이민을 와서 터키의 문화를 그대로 지켜가면서 사는 사람들도 있었고, 출신 국가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고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때 한국, 내 고향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게 살아가면서 평균과 보통의 기준에 맞는 정체성을 가진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무던히도 애써서 평범한 삶과 보통 인간의 타이틀을 획득해야 하지 않던가.
내가 느낀 정체성의 의미란 이렇다.
정체성은 하나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맺고 있는 인간관계나 내가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에 의해서 유동적으로 변화한다.
때문에 나를 둘러싼 외부조건들이 달라진다면 나는 얼마든지 지금과 다른 생각을 하고, 지금과 다른 취향을 가지며,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환경을 바꾸기보다 내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말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틀린 말이다. 내 삶에서는 전혀 다른 환경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자아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땅의 모든 진리가 그렇듯, 나에게 옳은 것은 나에게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