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름조각 Jun 09. 2021

라일락 나무 아래 그네를 매어놓자

밍기뉴가 부르는 <라일락꽃>

에메랄드빛 바다와 사랑하는 사람과 고양이가 있는 삶


    언제 어디서 읽었는지 모르는 책의 한 구절이 내 마음속에 콕 박혀서 꿈꾸는 날들이 되었다. '언젠가는 사랑하는 사람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면서 귀여운 고양이를 키워야지.' 이런 신기루 같은 꿈이 삭막한 사막 같은 하루하루를 버티게 해 주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렇게 헛된 꿈과 낭만 속에서 살아가는 몽상가의 감성을 가지고 있다.


    나중에 우연히 들은 밍기뉴의 <라일락꽃>이라는 노래에 매료되어 저 아름다운 꿈에 보랏빛 터치를 더하기로 했다. '에메랄드 빛 바다가 보이는 곳에 집을 짓고 마당에 연보랏빛의 라일락꽃을 잔뜩 심어 놔야지. 우리 고양이는 정원에서 뒹굴면서 놀고 나는 사랑하는 이와 손을 잡고 그 풍경을 날마다 걸어야지.' 상상만 해도 아름다워 눈물이 날 것만 같은 행복이다.



    우리 나중에 함께 살면 라일락 꽃을 심어놓자.


    어쩌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님과 한평생 살고 싶다는 가사와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왠지 더 아련하고 쉽게 부서질 것처럼 들리는 것은 가수의 나른한 목소리와 느릿느릿한 걸음을 닮은 기타 소리 때문일 것이다.


    이 노래는 아직 정식 발매가 되지 않았고 유튜브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다. 유튜브에 밍기뉴의 <라일락꽃>이라고 검색을 하면 누군가 찍어서 올려준 직캠 영상 하나와 윤시월의 플레이리스트와 [히치하이크]라는 영화의 영상에 노래를 삽입하여 뮤직비디오처럼 만든 영상이 뜬다. 유튜브의 장점은 한 아티스트의 아름다운 작품이 여러 사람에게 재해석되며 새로운 예술로 태어나는 것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HZqj056gMm0


    <라일락꽃>을 들으면서 나는 사랑을 떠올렸지만 이 영상을 만든 사람은 우정을 떠올렸나 보다. 나는 이 영화를 보지 않았기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등장하는 두 사람은 모두 어린 여자아이들이다. 고속버스에서 장난을 치고 교복을 입고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하는, 그들은 사랑인 것 같기도 하고 우정인 것 같기도 하다.


    사랑과 우정이 모호한 경계 속에 문득 우정도 사랑의 다른 형태임을 깨닫는다. 우정과 사랑은 서로 견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원래 한 몸에서 태어난 형제들 같다. 다른 형제들로는 가족애나 전우애가 있을 것이고, 인류애는 배다른 형제 같다. 결국에는 다 하나의 마음, 상대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 타인을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그 흐릿한 마음의 경계에서 선명한 선을 긋는 것이 어려워 우리는 늘 싸워대는지도 모른다.


    노래를 부른 '밍기뉴'라는 이름을 곰곰이 입안에서 굴려보다가 이 이름이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 등장한 나무의 이름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외로운 제제의 유일한 친구였던 밍기뉴... 아름답고 슬픈 소설에 감명받은 이름을 가진 아티스트는 자신의 예쁘고 슬픈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라일락의 꽃말은 『우정』 『소중한 친구』 『첫사랑의 감격』 『청춘의 기쁨』이라고 한다. 우정과 친구와 첫사랑과 청춘이 하나의 낱말 그릇 속에 담길 수 있을까?


    사람이 가족의 품 밖에서 처음으로 배운 '다른 이를 아끼는 마음'은 우정이었던 것 같다. 친구에게 주고 싶어서 내가 좋아하는 간식을 꼭 쥐고 옆집 초인종을 누르던 어린 날을 생각하니 나는 그렇게 부모의 사랑 밖에서 사랑하는 법을 배운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이에게 나눠주고 싶은 마음으로.


 우리 훗날에 같이 살면 라일락 꽃을 심어 보자


    노랫말처럼 우리는 사랑하는 동안 늘 그와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고 섣불리 약속하고 만다.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지만 곧 현실에 실망하고 서로 싸우고 상처 주기도 하고 그럼에도 헤어지지 않고 긴 시간을 함께 보내다 결국에는 서로를 가엾이 생각하는 마음으로 곁을 지킨다. 모든 사랑의 마지막은 어딘가 우정에 더 가깝다.


    그러니 나와 에메랄드 빛 바다와 귀여운 고양이, 향기로운 라일락을 함께 할 사람이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이든 사랑을 나누는 남자이든 크게 상관이 없을 것 같다. 정원에 심은 라일락 나무 아래 그네를 매어놓고 그들과 함께 흔들흔들, 흐르는 시간을 감상해야지...

 


직캠 라이브 영상도 첨부합니다. 조용한 기타 소리가 주는 매력이 있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dPxjVnXs6xY


<라일락 꽃> -밍기뉴

우리 나중에 함께 살면

라일락 꽃을 심어 놓자

우리 나중에 사랑을 하면

거센 불을 지펴두자  


라일락 꽃 향기는 너를 닮아서

내 마음에 온전히 피워 두고파

라일락 꽃 향기는 너가 떠올라서

그 마음을 난 간직 하고파  

라일락 꽃 향기는 너가 좋아했어서

내 곳에 깊숙이 남겨두고파

라일락 꽃 향기와 널 사랑해서

영원히 아껴주고파  


우리 훗날에 같이 살면

라일락 꽃을 심어 보자

우리가 한때 참 좋아했던

그 향기를 기억하자


밍기뉴의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_mingginyu_/


매거진의 이전글 너의 기억속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