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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Jun 11. 2021

사람에게 중독되었을 때의 처방전

릴러말즈와 유라가 부르는 <인간중독>

    릴러말즈 곡 전체를 선호하지는 않고 오직 이 노래만 좋아한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의 목소리와 독특한 감성을 담은 가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책 없이 쏟아지고
더 나은 곳으로 끌어내리고
나를 뒤흔들리게 유연하게 해
그대를 충분히 불러보네
기꺼이 새로운 대답을 기다릴 때
마치 몰랐었던 얼굴들처럼

작사에 릴러말즈와 유라의 이름이 동시에 기재되어 있는데 이 부분은 유라의 감성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그대를 충분히 불러본다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입안에서 굴려본다. '충분히'라는 단어를 말할 때 입안 동그랗게 공간이 생기며 그 안에 의미와 숨결을 담는 것을 마치 놀이처럼 여러 번 반복해 보는 것이다.


    사귀던 사람의 이름을 여러 번, 이유 없이 불러보던 때가 생각이 났다. 내 입안에서 동글동글 알사탕처럼 그의 이름을 굴려보다 톡톡 무심한 그의 등에 던져 대는 거지. 여러 번 이름이 불려진 그가 "왜?"라고 되묻는 게 좋았다. 마침내 그가 웃음이 터져 나를 돌아볼 때까지 그렇게 이름을 불러 대는 건 딱히 이유가 없다. 

"그냥, 그냥 좋아서."


    하지만 정말 내 심장에 꽂히는 가사는 따로 있다. 정말 마음에 드는 노랫말을 들으면 고막을 뚫고 곧장 심장에 박히는 느낌이 든다. 얼얼한 고막과 뻐근한 심장에 새겨지는 가삿말들... 나는 이렇게 말에는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에너지가 있다고 느낀다.


날 뒤흔들리게 유연하게 해


    그래, 그런 게 사랑이다. 내가 나라고 믿고 있던 견고한 자아가 완전히 부서지고 해체되어 재조립되는 것. 그렇게 새로 태어난 나에게는 그의 일부가 한 몸이 되어 붙어 있다. 서로의 자아를 유연하게 풀어헤쳐 함께 뒤섞이게 하는 유일한 것이 사랑이다. 끝내 육체의 껍데기까지 뚫고 하나가 될 순 없으니 서로의 벌거벗은 몸을 꼭 끌어안을 수밖에...


    헤어지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살다가도 어느 날 문득 그의 사소한 것들이 생각날 때가 있다. 웃을 때의 입꼬리라던가, 목덜미에서 나는 냄새 같은 것들. 어떤 거창한 대상도 아니고 구체적인 정황도 없이 흐릿한 배경에 파편 같은 기억만 떠오르는 것이다. 그때 그 웃음을 지은 곳은 함께 걷던 캠퍼스였나, 집 앞의 카페였나 헷갈리지만 오롯하게 그 입꼬리만 떠오를 때면 어떻게 이 기억을 지워야 할지 모르겠다.


    사랑이 주는 애착의 감정을 그저 옥시토신 호르몬의 작용이라고 치부한다면 왜 가끔 그가 없을 때에도 그리운 감정이 생기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 몸에서는 늘 적당한 감정을 만들어 두고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기 위해 과거의 기억들을 끌어오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느 날 떠오른 그의 입꼬리가 사무치는 그리움이 되기도 하고 짜증 나는 전 남자 친구의 기억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대체로는 아련한 그리움 같아서 비가 오는 날 떠올릴 옛사랑의 추억이 되어준다.


    어디에서 본 연구결과인지 모르겠지만, 약물 중독자들의 뇌를 연구하는 팀이 금단증상이 얼마나 지속되는지 실험한 내용이 있었다. 결과에 따르면 마약이나 중독물질을 끊은 후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마약에 대한 사진이나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뇌의 한 부위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우리의 뇌는 생각보다 똑똑해서 강렬한 쾌감을 줬던 대상을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이렇게 오랫동안 기억하는 뇌인데 왜 시험공부를 할 때는 모든 정보가 입력과 동시에 삭제되는지 모르겠다. 시험문제가 아무런 쾌감을 주지 않기 때문인가?


    사람은 무언가에 한번 중독이 되면 좀처럼 끊어내지 못한다. 대상에 대해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도 아니고 늘 머릿속 한편에 저장된 충동을 애써 참는 것이다. 사랑도 그렇게 강렬한 쾌감을 주기 때문에 한번 그 사람에게 중독되고 나면 머릿속에 각인이 남는 것 같다. 잊었다 생각했지만 그저 무의식 어딘가로 밀어놓은 것에 불과한 것이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추억을 꽁꽁 숨겨 침대 밑에 숨겨두었지만 어느 날 청소하다가 잊었던 상자를 발견하는 것처럼.

 

    담배를 끊은 사람처럼, 커피를 끊은 사람처럼 니코틴과 카페인은 우리의 손을 떨게 하고 불안감을 느끼게 한다.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한 후에도 그런 금단증상이 찾아와서 손을 떨게 하고, 없으면 죽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거겠지. 그러나 담배든 커피든 금단증상은 우리를 죽이지 않고, 늘 사랑이 우리를 죽게 만든다.


그래서 헤어진 후에 그리움이 떠오르고 다시 그 품에 안기고 싶을 때면, 그의 이름을 여러 번 입안에서 굴려보듯이 이런 말을 중얼거린다


이 감정은 곧 지나갈 거야
조금 후에는 사라질 거야


그러면 마법처럼 곧 그리움이 사라진다

눈 깜짝할 새 우리의 사랑이 없어진 것처럼.



https://www.youtube.com/watch?v=Xl9K7k2vE9Y

<인간중독> -릴러말즈  feat. 유라  Prod.TOIL

그대는 커피 같아요
그대 없이 손을 떨어요
그대는 담배 같아요
내 한숨을 들어줄래요
중독됐나요
되돌려야 해요
어디 있나요
그대의 손 그대의 품 그게 절실해요


밤새 헤맨 어두운 거리
날 부르는 사람들 소리
잔고와는 달리 내겐 텅 빈
껍데기만 남은 체 버려졌지
돈이 다라고 말했던 사람들은
우울한 감정도 다 해결될 거라
말했는데
전부 그랬는데


Oh no 난 그런 사람이 아닌가 봐요
어머 아마도 사랑인가요
너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눈앞에 있는 나를 꽉 안아줘요
점점 모든 게 다 흐려져요
점점, 선을 난 모르겠어요
이상해요


그대는 커피 같아요
그대 없이 손을 떨어요
그대는 담배 같아요
내 한숨을 들어줄래요
중독됐나요
되돌려야 해요
어디 있나요
그대의 손 그대의 품 그게 절실해요


그대는 강이 되어주네
여기는 쉼처럼 고요해요
매일 밤 몰래 오는 안식 같은 것
그대의 눈을 읽고 쓸 때
나는 토요일 같은 꿈을 내어 주네
아 아 아 아 아 아


우리는 대책 없이 쏟아지고
더 나은 곳으로 끌어내리고
나를 뒤흔들리게 유연하게 해
그대를 충분히 불러보네
기꺼이 새로운 대답을 기다릴 때
마치 몰랐었던 얼굴들처럼


그대는 커피 같아요
그대 없이 손을 떨어요
그대는 담배 같아요
내 한숨을 들어줄래요
중독됐나요
되돌려야 해요
어디 있나요
그대의 손 그대의 품 그게 절실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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