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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Jun 12. 2021

문득 생각나는 그 아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이소라와 나

그 아이라고 부르기엔 우리가 좀 자란 상태에서 만났지.


    대학교 동아리에서 만났으니까. 우리 둘 모두 주민등록증을 가진 성인의 신분으로 만났다. 그럼에도 아이라는 인상으로 남는 것은 그 애의 몸집이 조금 작았기 때문이다. 키도 작고 어깨도 좁아서 안경을 쓴 채 구석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그 애와 어쩌다가 친해지게 된 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나마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그 애와 내가 파스타를 먹으러 갔다가, 내가 권한 크림 파스타를 끝내 다 먹지 못하고 그 애가 포크를 내려놓은 일이다. 이 가게는 크림 파스타가 맛있다며 내 멋대로 주문했는데 그걸 차마 거절하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먹다가 결국 속이 느끼하다며 한 그릇을 채 먹지 못한 것이다.


    사람 대하는 것에 서툴고 타인의 감정에 섬세하지 못한 내가 의도치 않게 그 애를 불편하게 만든 기억이 오랫동안 남아 있다. 그날 식사 자리에서 대충 식사를 끝낸 그 아이는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었다. 나는 무슨 노래를 좋아하냐고 물었고 그 애는 이소라의 노래를 전부 다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보통 남자들의 감성이라기엔 퍽 낭만적이고 몽롱하여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늘 조용하고 싫어하는 음식을 매몰차게 거절하지도 못하는 그 아이의 성정에 잘 어울리는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날 나는 그 아이가 싫어하는 것 하나와 좋아하는 것 하나를 알았다. 지금은 도무지 이름도 얼굴도 생각나지 않지만 오직 크림 파스타를 버거워하던 얼굴과 이소라의 노래를 흥얼거리던 목소리만은 남은 것이다.

 

    내가 그 아이를 남자로 좋아한 건 아니지만 더 친해지고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다. 그 아이의 특별한 감수성, 나에게 없는 섬세함을 갖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늘 무신경하여 예민한 사람들을 의도치 않게 힘들게 했기 때문에 그 아이에게 좀 더 다정하고 연약한 감성을 배우고 싶었던 것 같다.


    몇 년 후 JTBC에서 <비긴 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에 이소라가 출연했을 때도 '그 아이'가 생각났다.


    그 애가 좋아하겠구나. 나와 같은 시간에 TV 앞에 앉아 있겠지.


    그때는 이미 일찍이 다니던 동아리도 그만 두고 대학도 졸업한 시점이었다. 몇 년이나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의 취향을 여전히 기억하는 것. 나의 기억력은 이렇게 비상한 부분이 있음에도 늘 의도치 않은 것만 오래 기억하는 게 문제다. 얼굴 생김새나 이름은 기억 못 하면서 이소라를 좋아한다는 것과 크림 파스타를 싫어한다는 것만 기억하다니...


    <비긴 어게인>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소라는 늘 어딘가 너무 예민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게 버거운 사람처럼 보였다. 그나마 노래에 집중하는 순간만큼은 삶의 굴레에서 조금 편안해진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여리고 서글픈 목소리가 락밴드 오아시스의 노래와 어울린다는 것이 참 신기했었다.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더니 진정 실력 있는 가수는 모든 노래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킨다. 매주 <비긴 어게인>을 챙겨보며 아일랜드와 영국의 흐린 날씨에 어울리는 노래를 감상했다. 그 쓸쓸한 풍경에 어울리는 모든 노래가 참 아름다웠고 이미 실력 있는 아티스트들의 고군분투가 재미있었다. 어린 연습생들이 점점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조마조마한 마음 없이 대한민국에서 실력이 쟁쟁한 음악인들이 그들의 연주과 노래에 진심을 다 하는 것은 예술가의 자긍심이 느껴지는 장면이기도 했다.


    그 뒤로 이소라의 노래를 찾아보고 신곡이 나오면 숙제처럼 꼭 한 번씩은 듣게 되었다. 나의 취향과 관계없이 그녀의 목소리는 늘 특별하고 언제까지 이 아름다움이 우리 곁에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소라의 커리어를 더듬어 보다 발견한 노래가 「시시콜콜한 이야기」였다. 처음 듣고도 익숙하다 싶어 찾아보니 언젠가 아이유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부른 적이 있었다. 그때 흘려들은 멜로디를 익숙하다 느끼는 나의 기억력은 어딘지 너무 집요한 것 같다.


    한밤중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연애 상담을 하는 가사지만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도 이소라의 목소리인 것 같아서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그 애를 너무 좋아하지만 나를 모른 척해서 서운하고, 그래도 그냥 놓아버릴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괴롭지만 계속 잘해주고 싶다는 노래 가사...


    실제로 내 친구가 이런 전화를 걸어 청승을 떨면 나는 정신 차리고 샤워나 하고 일찍 자라는 냉정한 말을 할 테지만, 이소라의 목소리로 이런 말을 하면 어딘가 숨죽이고 끝까지 들어줘야 할 것 같다. 지금 나마저 매정하게 전화를 끊으면 정말 이 친구의 마음 어딘가가 끊어질 것 같아서, 실낱같은 생명줄을 부여잡는 마음으로 전화기를 붙들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라면서 그 목소리는 전혀 시시하지 않은 것이 이 노래의 매력이겠지. 그래서 나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이소라의 목소리를 좋아하던 특별한 감성을 가진 그 아이에 대해서.



https://www.youtube.com/watch?v=iYds438UR0U


<시시콜콜한 이야기> - 이소라

잠깐 일어나봐

깨워서 미안해

나도 모르겠어

윤오의 진짜 마음을

같이 걸을때도 (거기 어디니) 한걸음 먼저 가

친구들 앞에서 (혼자있니) 무관심할 때도 괴로워 (어디 가지말고 거기 있어 내가 갈게)

많이 힘들어 (지금 우는 거니) 요즘 자주 울어 (너 땜에 속상해)

맨 처음 봤을 때 가슴 뛰던 생각 나 (가슴 뛰던 너의 모습 알아 그렇게 힘들면 헤어져)

헤어지긴 싫어 (그렇게 안되니) 내가 좋아하는 거 알잖아 더 잘해달라면 그럴거야

이러고 있는 거 (그사람은 아니) 나도 너무 싫어 (매일 이러는거)

갤 만나고부터 못견디게 외로워 (못견딜게 세상에 어딨니 울어도 달라진 건 없어)

저울이 기울어(조금만 기다려 응?)

나만 사랑하는 거 같잖아

또 전화도 없고

또 날 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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