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뇌는 추상적 정보를 감각적 정보와 묶어서 정리하는 것 같다. 고민, 생각, 감정 같은 추상적이고 형체 없는 기억들을 소리, 맛, 냄새 같은 분명한 감각 정보와 함께 연결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을 먹었을 때의 감정이 생각나고, 어떤 냄새를 맡으면 무의식 어딘가에 숨겨져 있던 어린 시절이 기억나고, 어떤 노래를 들으면 그 시절에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떠오른다.
나에게 소녀시대가 부른 <다시 만난 세계>가 딱 그런 노래다. 2007년에 데뷔한 예쁘고 힘찬 소녀시대의 노래를 들으면 17살의 내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았던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다.
고등학생 시절, 이사장의 가족들이 학교에서 한 자리씩 하는, 고인물들이 썩어가는 사립 여자 고등학교를 다녔다. 어린 우리들의 눈에도 선생님들의 권력관계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각종 비리들이 뚜렷하게 보였기 때문에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 같은 건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나마 열심히 수업을 하고 학생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던 선생님들이 학교 이사장의 눈 밖에 나서 사라지고 그 자리를 중얼중얼 책이나 읽어주는 이사장 친인척들로 대체한 것이 정말... 후...(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겠다)
어느 날 작은 사건이 생겼다. 옆반에서 석식을 먹던 친구가 반찬 속에서 담배꽁초를 발견한 것이다. 외주를 주던 급식업체는 일찍이 반찬 속에 비닐장갑을 빠뜨렸던 전적이 있었는데, 이번엔 장갑도 아니고 담배꽁초라니...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이 음식들을 만들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나 다름없었지만, 업체 대표가 처음 발견한 학생에게 음료수 한 병을 사주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불길은 되려 우리 반에서 번졌다. 그건 먹을 것에 대한 여자애들의 집착 같은 게 아니고, 기본적인 생존권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 어른들에 대한 실망감과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부당함에 대한 저항이었다. 우리 반 학생들은 단체로 석식을 거부했고 도시락을 주문해서 먹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은 대놓고 우리를 쓰레기반이라고 비난하고 유별난 애들로 몰고 가서 결국엔 이 반 학생들 모두가 고스란히 다음 학년으로 진학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물 흐리는 애들이라 다른 학생들과 섞어 놓을 수 없다는 이유였는데, 그 타성에 젖은 선생님들 중 그 누구도 우리가 불만을 품은 이유를 물어본 적이 없었다. 난 그날부로 세상의 모든 어른들에 대한 기대를 버리기로 했다.
두뇌의 신경회로가 <다시 만난 세계>와 그 시절의 사건과 사회에 대한 저항을 하나로 연결한 계기는 2016년 이화여대 학생들이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항해 소녀시대의 노래를 부른 사건이다. 공권력의 폭력 앞에서 널 사랑한다는 노래를 부른 것은 이 저항이 권력투쟁이나 피의 혁명 같은 게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좀 더 좋게 만들고 싶다는 희망의 느낌을 주었다. 그날부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는 더 이상 예쁘장한 소녀들의 응원이 아니라 이 실망스러운 지금의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길 바라는 여성들의 염원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90년대생 여자들이 처음 만난, 20대에 경험한 사회는 냉혹하고 잔인하고 혼란스러웠다. 우리는 사회로부터 서로 모순되는 메시지를 주입받으면서 자랐다. 너의 커리어를 가질 수 있고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와 그래도 여전히 여자의 가장 큰 행복은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리는 것이라는 메시지.
얼핏 둘 다 가지면 금상첨화일 것 같지만 그 사랑하는 남편과 만나 가정을 꾸리는 과정은 너무도 구시대적이어서 자아와 경쟁력을 가지라는 전자의 메시지가 무색해지는 것이다. 결국 마지막 커리어가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로 끝난다면 우리는 왜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해야만 했나? 우리의 자아실현은 내면의 여성성을 완전히 희생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인가?
그런 사회에 대한 실망과 저항이 첨예한 갈등이 된 순간에서 부르는 노래가 <다시 만난 세계>였다. 이 환멸 나는 세상을 포기하고 싶지 않고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글은 사랑이나 이별 같은 감성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불을 지피는 더 나은 삶으로의 열망에 대한 것이다. 전혀 말랑하지 않고 오직 뜨겁게 타올라서 결국 우리를 죽일지도 모르는 그런 감정이다.
90년대생 여자들에게 소녀시대는 말 그대로 시대의 상징이다. 나와 내 친구들은 세상살이에 지칠 때마다 노래방에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곤 한다. 노래방에 가기 꺼려진 후에는 안무를 연습해서 영상을 찍자고 하는데 나는 계속 모른 척하고 있다. 더 이상 소녀가 아닌 우리들의 희망이 되는 유일한 노래이자 잊고 있던 나의 소녀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가사라서 가끔 노래를 들으면 울컥 눈물이 날 것 같다.
이 헤매임의 끝은 언제 오는 걸까요?
그래도 우린 아직 포기할 수 없어요.
계속 울지 않게 도와주세요.
지금이 끝이 아니라고,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말해주세요.
'도리'라는 유투버가 <다시 만난 세계>를 보사노바 풍으로 커버했는데 잔잔하고 독특한 목소리가 좋아서 이 영상을 첨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