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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Jun 19. 2021

"누군가 나를 책처럼 읽어 주세요."

내 마음을 관통하는 가사, 쏜애플의 <로마네스크>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입을 다물어 본 적 이 있다. 나만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란 위험부담이 많은 일이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나 비난받을 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누구도 날 알아주지 않고 인정해주지 않고 어쩌면 미움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싹하기까지 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사회에서,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버림받는다는 가능성이 솔직한 행동을 멈추게 만드는 것이다.


    '나만 그럴까? 그렇지 않을걸?'

이건 우리 모두의 고민이라고 확신한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사회에서 적응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특히 초등학생 때 따돌림을 당한 탓에 무리에서 버림받는다는 게 어떤 느낌이고 어떤 후유증을 남기는지 잘 안다. 누군가 웃는 소리만 들어도 나를 비웃는 게 아닐까 두렵고, 시선이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든다. 그런 자신이 싫어서 가면을 쓰는 연습을 했다. 인기가 많고, 밝고, 쾌활한 친구들을 관찰하고 그 애들을 따라 했다. 연극부에 들어가 일부러 연극무대에 오르기도 하고, 신문부나 독서토론회처럼 사람을 많이 만나고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는 동아리에 들어갔다.


    매번 링위에 올라가듯이 관계에 나를 던지고 거절당하면 내 행동을 고치고, 다시 도전하고 다른 접근법을 쓰고 그걸 데이터 수집하듯이 차곡차곡 모아 나만의 처세술을 발전시켰다. 18살의 내 일기장에는 친구들 사이에서 써먹을 만한 유머를 적어놓은 페이지가 여러 장 있다. 일찍이 애교와 유머가 훌륭한 사회적 기술이라는 걸 깨달아 재밌는 유머를 연습하고 귀여운 사람의 애교를 밴치 마킹했다. 지금에야 웃기다고 생각하지만 그 당시엔 꽤 진지했다. 어쩌면 이게 사회생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무기라고 생각했다.


    20대 후반쯤 되니까 사람 만나는 일이 편해졌고 다른 사람들도 나를 쉽게 받아들였다. 내 노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거지. 가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기도 했지만 날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으면 안전했다. 무리에서 버려질 위험은 없다. 그런데 그게 나의 외로움을 다 채워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줘도 사랑받을 수 있을까?


    지금처럼 가면을 쓴 모습이 아니라, 사실은 내가 나약하고 외로워하고 두려움이 많고 쉽게 상처 받는다는 걸 알아도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을까?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적도 없으면서 그런 고민을 하다니, 배부른 소리겠지.


    쏜애플은 그런 나의 미묘한 외로움을 간파한 듯한 가사를 쓴다. 어찌 내 마음을 읽고 이런 가사를 썼을까 싶은 노래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와닿는 건 이 문장이다.


누가 나의 혀를 자르고 그저 곁에 있어준대도 나는 날 좋아할 수 없을걸

    어릴 적 읽은 동화에서 목소리를 잃고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가 왕자와 이뤄졌다고 해도 그녀가 행복하게 살았을 거라 자신할 수 없다. 사랑으로 시작했지만 자기의 가족을 버리고 표현하는 수단도 사라지고 얻은 왕자와의 결혼 생활은 그녀를 천천히 시들게 만들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 입을 막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다고 해도 전혀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어느 순간에는 만들어낸 페르소나를 벗고 나를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 요청한다. 물론, 그 요청이 늘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었다. 조용히 머물던 자리를 떠나면서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은 '언젠가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해줄 사람을 단 한명이라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이 인생이 끝나기 전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 다독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 목소리로 말을 할 것이고 있는 모습 그대로 꾸며내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사랑받고 싶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줘, 아니 사랑하기 이전에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을 담아 혼자 이런 부끄러운 시를 쓴다.

누군가 나를 책처럼 읽어주고
끝까지 다 읽고 이해했다면
그대의 사랑으로 날 불태워 주오.
그리하여 나를 마지막으로 읽은 이는
그대만 남겨주오.

    쏜애플의 가사는 대체로 철학적이고 중의적이어서 해석의 여지가 많다. 팬들은 보컬이자 작사 작곡을 담당하는 윤상현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추측하면서 여러 해석을 내놓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 가사를 예술가의 고뇌와 연결 지어 '온전히 다 표현하고 싶지만 세상의 비판이나 비난이 두려워 움츠리고, 그럼에도 자기표현을 그만둘 수 없는 내적 갈등'을 표현한다고 말했다.


    작품의 해석이 다양하지만 그의 의견과 내 생각이 자기표현의 두려움으로 귀결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나는 관계 안에서의 소통을 생각했으나 그에게는 예술가로서의 표현을 의미하는 것 같다는 작은 생각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또한 글을 쓰면서 같은 고민을 한다. 타인이 받아들이기 쉬울만한 글을 쓰는 것이 나의 개성을 흐리게 만들 수 있단 생각이 들지만 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이다.


    그사이에서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결국 나의 길을 가기로 했다. 그간의 경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사랑받아도 그건 전혀 나를 기쁘게 하지 못한다. 만들어낸 이미지로 사랑받는 것은 의미가 없다.


    쏜애플의 <로마네스크>는 편곡 이전버전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편곡 전의 스타일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 후에 어쿠스틱 버전이 나오면서 색다른 매력을 발견했기 때문에 어쿠스틱 버전의 링크를 올려두었다. 가사를 잘 음미해서 노래를 들으면 이 글을 읽는 사람의 마음에도 무언가 의미가 남을 거라고 생각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xfhp4_rg40o


<로마네스크> - 쏜애플

누가 나의 귀를 만지며

괜찮다고 등을 쓸어도

나는 날 좋아할 수가 없네

누구 하나 잡을 수 없어

목을 놓다 잠든 밤에도

나는 날 안아줄 수 없었네


오늘도 낮이 다 새도록

질려버릴 만큼 줄곧 잠만 잤구나

이제는 입 한쪽만 올리며

웃는 머저리가 돼버렸구나


난 하루에도 몇 번씩

어딘가로 사라질 거야

그저 말뿐인 미지근한 예감


날 좀 더 읽어내줘요

아니 그냥 덮어줄래

혹시 끝까지 봤다면

꼭 태워주고 가요


누가 나의 귀를 만지며

괜찮다고 등을 쓸어도

나는 날 좋아할 수가 없네

누구 하나 잡을 수 없어

목을 놓다 잠든 밤에도

나는 날 안아줄 수 없었네


난 하루에도 몇 번씩

이젠 다 그만둘 거야

그저 말뿐인 미지근한 예감


날 좀 더 괴롭혀줘요

아니 그냥 안아줄래

혹시 떠나갈 거라면

꼭 문은 닫아주고 가요


한때는 여기 흘러넘치던

이제는 숨을 거둔 바람이

다시 한번 내게 불어준다면

나는 온 세상을 끌어안으리


누가 나의 혀를 자르고

그저 곁에 있어준대도

나는 날 좋아할 수 없을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김이 서린 창문을 열고

떨리는 두 팔을 감싸

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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