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칭찬은 남자를 춤추게 한다

남자들의 인정 욕구와 칭찬의 상관관계

by 구름조각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사람이 칭찬으로 춤까지 춘다고 생각하면 뭔가 께름칙한 기분이 든다. 듣기 좋은 말, 입에 발린 소리에 현혹되어 칭찬하는 사람의 손에 놀아난다고 해야 할까? 내 시각이 무척이나 부정적이겠지만 이런 칭찬이나 타인의 인정은 양날의 검과 같이 장단점이 있는 것이다.


인정과 사랑을 받고자 나의 진정한 욕구를 억누르게 되거나, 때로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더라도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에 대해 눈을 감게 만든다. 적절한 칭찬과 인정은 채찍과 당근 중에 당근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지만 동시에 '착한 아이 콤플레스'를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은 짚고 싶다. 너무 착한 아이들에게는 억압과 반동 형성의 방어기제가 자주 보인다.


오늘의 주제는 칭찬 그 자체는 아니고 칭찬에 대해 남자들이 어떻게 반응하느냐 이다. 이 주제에 대해 나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긴 일이 있는데 2년 전 어린이 직업체험관에서 일했을 때로 돌아가야 한다.


어린이 직업 체험관은 말 그대로 13세 미만 아이들이 사회의 여러 직업을 경험할 수 있도록 실제와 유사한 체험시설을 만들어 놓은 곳이다. 그곳에는 농부, 과학자, 소방관, 의사, 법조인, 경호원 등 다양한 직업군의 유니폼과 실제 병원, 박물과, 법원, 방송국 촬영장 등을 재현해 놓은 방이 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직업을 체험하면서 어떤 일을 하는지 배우고 체험을 완료하면 장난감 돈을 받아 아이스크림 가게나 와플 가게에서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일 해서 돈을 벌고 그것으로 내가 원하는 물건과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다는 기본적인 경제적 상식을 몸으로 배울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곳에서 일하며 나도 덩달아 다양한 직업체험을 했고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하듯이 일하는 건 참 재미있었다. 나는 방송국, 법원, 백화점, 공룡박물관, 동물병원, 소방서, 아이스크림가게, 사진관, 패션쇼 장, 골프장, 채소가게 등에서 직업체험 선생님을 했는데 중학교 때 연극을 하며 쌓은 연기력으로 아이들을 속여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예를 들면 공룡 체험관에 있는 모형 화석이 실제 화석이라고 거짓말을 한다던지... 딱 11세 기준으로 그보다 어리면 속아 넘어가고 그 이상 자라면 눈치가 빤해서 안 속는다.


어린아이들이 오면 신기하게 남녀 성별에 따른 행동방식의 차이가 뚜렷하게 보인다. 대체로 체험을 하고 장난감 돈을 받으면 여자아이들은 네일숍에 가고 남자아이들은 보드 게임방으로 간다.


체험을 하는 태도를 봐도 여자 아이들은 지시나 설명을 주의 깊게 듣고 잘 따르는데, 문제가 있다면 너무 수줍어하거나 체험하기 전에 겁을 먹는다는 것뿐이다. 남자아이들은 산만하고 친구들과 장난을 많이 치지만 본인이 흥미가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줬다.


가령 공룡 연구소에 줄을 서는 아이들은 10명 중 9~10명이 남자 애들인데 티라노 사우르스 모형이나 트리케라톱스의 화석을 보면 눈이 초롱초롱 해진다. 난 남자애들이 많으면 늘 팀을 짜서 문제를 맞히는 게임을 하거나 먼저 공룡 퍼즐 맞추기처럼 경쟁을 하게 만드는데, 이 방법이 산만한 남자아이들의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었다. 반대로 여자애들은 팀을 나눠서 경쟁을 하는 것에 보통 거부감을 보였는데 이것도 누가 더 빨리 하느냐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크지만, 누가 더 예쁘게 만드냐에 대해서는 경쟁심을 가진다. 이게 남녀의 경쟁심에 미묘한 차이점인 것 같다. 그리고 정말 흥미로운 것은 남자애들이 한 팀이 되고 여자애들의 한 팀이 되어 성대결 양상이 되면 경쟁이 과열되는데 서로 지나치게 도발하지 않게 선생님의 개입이 필요하다.


이 직업체험관에서 겪은 일들이 많아서 차차 설명하겠고 오늘은 라디오 부스에서 생겼던 일에 대해서 말해보려 한다. 이 날 한 초등학교에서 3학년들이 체험관에 단체로 왔는데 여자아이들 한 무리가 체험을 하고 나가고 그걸 보고 있던 같은 반 남자아이들이 들어왔다. 라디오 부스에서는 마이크에 대고 타이밍에 맞춰 스크립트를 읽으면 스피커로 체험관 곳곳에 소리가 들리는, 실제 라디오 방송을 10분 정도 짧게 체험하게 해주는 활동을 한다.


먼저 체험을 하고 나간 여자애들은 차분하고 조용하게 체험을 하고 나갔는데 그 중 한 아이가 마이크를 보고 바짝 얼어서 아무것도 못하는 걸 보고 나도 당황한 상태였다. 그 뒤에 들어온 남자아이들이 산만하게 장난을 치는 게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물론 내가 안내하는 내용을 제대로 듣지 않기는 했지만 애들이야 늘 그렇다고 생각하니 되려 귀여워 보이는 것이다. 아이들이 인사말과 소개 멘트를 또박또박 마이크에 말하고 나서 나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와, 너네 너무 잘하는데?
정말요?
응! 오늘 온 친구들 중에 제일 또박또박하게 잘했어. 아까 진짜 라디오 방송 같았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서로 놀라는 아이들을 보니 되려 칭찬한 내가 머쓱해질 정도였다. '아니, 이 정도 칭찬에 왜 그렇게 놀라는 거지?'


칭찬을 받고 신난 아이들은 시키지 않아도 새로운 멘트를 치고, 목소리를 바꿔 연기를 하기도 하고, 이전보다 의욕이 넘치게 체험을 마쳤다. 끝나고 장난감 돈으로 일당을 받아가면서도 들뜬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선생님 너무 재밌었어요! 또 하면 안 돼요?
나도 너네가 잘해줘서 고마웠는데, 다른 체험도 많으니까 다 해보고 가!

종이돈을 들고 소방관 체험을 하러 뛰어가는 아이들이 귀엽게 보였다.


이후에 이런 어린 남자아이들과 유사한 심리를 내 남자 친구에게서, 혹은 주변의 성인 남자들에게서 똑같이 느꼈을 때는 꽤 당황스럽기도 했다. 내가 스치듯이 던진 칭찬 한 마디에 즉각적으로 태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때 효과가 있던 칭찬은 "멋있다." 같은 막연한 칭찬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이 좋았다고 짚어 주거나, 지난번에 도와준 것에 대해 보답을 하는 차원에서 '인정하는 말'을 하는 것이 있었다.


▣구체적인 예시

1. (직장 남자 상사에게) 지난번에 우리가 실수한 불량품 나가기 전에 캐치한 거 보고 생각보다 세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냥 단순히 세심한 성격인 것 같다고 말한 것뿐인데 갑자기 나를 엄청 챙겨주고 이전보다 친근하게 장난도 치기 시작했다. 이 상사는 요즘 여자들은 건드리기만 해도 큰 일 난다면서 나를 대놓고 피해 다니던 사람이라 더 놀라운 변화라고 느꼈다.


2. (남자 친구가 해준 음식을 먹다가) "근데 오빠가 요리를 많이 하지 않아서 그렇지, 레시피 없이도 간을 딱 맞추는 거 보니까 요리 재능이 있는 것 같아. 닭갈비 만든 것도 끓이다가 재료 추가했는데 간이 잘 맞네~"

▶그 뒤로 남자 친구 집에 갈 때마다 푸짐하게 한 상씩 얻어먹었다. 나중에는 본인이 요리를 하지 않더라도 나를 먹이는 게 본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지 매번 새로운 음식을 배달시켜 차려주기도 했다.


3. (처음 만난 작가와 인터뷰하는 상황) "오늘 뵙기 전에 작가님께서 만드신 작품 찾아봤는데 회화를 전공하시고 조형물을 만드시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종이로 만든 조각 작품이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삐딱하게 앉아서 인사도 건성으로 하다가 이 말을 듣자마자 바로 자세를 고쳐 앉고 진지하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특히 작가들에게는 본인의 작품에 대한 칭찬은 자신에 대한 칭찬과 같다.


위에 든 예시 외에도 수많은 예시가 있다. 남자들은 사소한 칭찬이나 자신이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을 받으면 즉각적으로 행동이 변한다. 더 적극적이고 열성을 다 하는 방향으로.


내가 사람을 관찰하는 것은 좋아하는 INTJ라 그런지 몰라도 이런 행동의 인과관계가 너무 뚜렷하게 보이는 게 놀라울 뿐이다. 대체로 사람은 다 칭찬받는 걸 좋아하지만 여자들과 대화할 때는 칭찬 이외에도 친밀감을 쌓은 시간이나 다른 조건들이 필요한 것에 비해 남자들을 대할 때는 그의 장점을 하나 찾아서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태도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발견한다.


어린 남자아이들의 경우는 특히나 칭찬이나 인정에 목말라 있는 것 같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늘 조용히 있으라고, 장난치지 말라고 꾸중을 들어서 인지는 몰라도, 조금만 칭찬해주면 눈이 빛나면서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 물론 열정이 과해 실수를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호기심이 넘치고 뭐든지 활기차게 노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이런 개개인의 특성을 사회적으로 확장하거나, 남성의 보편적인 특성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늘 우리 사회의 남성들이 인정받는 것, 칭찬받는 것에 대한 결핍이 있다고 느껴진다.


군대에서 고생을 하더라도 그걸 때려치우고 싶다는 마음보다 미군처럼 군인을 대우해주고 명예를 인정받는 환경이 되면 좋겠다고 바란다. 이게 허세인지, 아니면 군대에서 세뇌교육을 받은 지는 몰라도 북한군 도발이 있거나 하면 마땅히 나가서 싸워야 하고 사실 도망갈 데도 없다고 자조하는 것이다. 내가 만난 한 남자분은 전쟁이나 재해시 자신의 가족들을 피난시키고 자신은 군대로 돌아가 전투에 임하겠다는 구체적인 플랜까지 짜 놓았던데, 여기서 끝까지 가족들과 도망가지 않고 아내와 아이만 피난시키고 부대로 복귀하겠다는 게 의외인 부분이다. 도망가는 건 애초에 계획이 없는 건가?


중년의 남성들은 가장으로서 가족을 위해 일하는 건 상관없는데 가족들이 알아주고 아내가 수고했다고 한마디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거나 아이들이 아버지를 존경해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열심히 일하고 너무 지쳐서 아내에게 힘들다고 얘기했더니 아내가 "바깥일을 집안으로 가져오지 마."라고 해서 그걸 3년째 서운해하고 있는 한집의 가장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대해서는 남자도 여자 못지않게 섬세한 감정이 다치는 부분인 것 같다.


문제는 이런 칭찬과 인정에 매달리는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고 비뚤어질 때이다. 이런 게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과시하여 사회적 인정을 얻으려 하는 일 중독자를 만들곤 한다. 또 친밀한 관계에서도 본인이 원하는 만큼의 인정과 칭찬이 아니면 그걸 다른 곳에서 찾기 시작한다. 노래방에서 만난 접대부들이나 철없는 어린 직원들에게서 입바른 소리를 듣고는 쉽게 이용당하는 것이다. 늘 그렇듯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칭찬과 인정에 목마른 남자들이 제일 고생스러운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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