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그들은 왜 뒤에서 여자를 욕하는가?

독종과 남미라고 불렸던 여자들

by 구름조각

조던 피터슨은 한 영상에서 남자의 공격성과 여성의 공격성을 비교하면서 남자는 직접적이고 신체적인 공격성을 보이고 여자는 간접적이고 언어적인 공격성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내가 경험하기에도 여성들은 험담, 헛소문 같은 상대의 평판을 해치는 방식으로 경쟁자를 제거하려고 한다.


그러나 남자들의 공격이 직접적이고 신체적이라는 말은 남자 vs 남자의 상황에서만 그렇고, 직접적이고 신체적인 공격을 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서는 여성과 비슷한 공격 패턴을 보인다. 즉 '남자는 여자를 때리면 안 된다'라는 불문율을 어린 시절부터 교육받은 남자들도 마음에 안 드는 여자에 대해 뒷담화하고, 따돌리고, 평판에 흠집을 내면서 사회적 처벌을 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서술할 예시는 모두 실제 나의 경험이다.


▣독종이라 불렸던 여자

대학시절을 남초 학과에서 공부했다. 그나마 매 학기마다 강의실에 25%는 여자들이 있었으니까 아주 극심한 남초 집단은 아니었다. 대학교 2학년 때 나는 정말 바쁘게 살았다. 동아리 활동, 공모전, 독일어 공부, 영어 공부, 아르바이트, 학과 공부에 정신이 없었고 그 와중에 3학년 수업을 미리 당겨서 듣고 있었다. 당시 21학점을 수강하면서 그 모든 걸 해내려면 몸이 두 개여도 빠듯하지만 연애까지 하려니 매일 탈진에 이를 때까지 나를 몰아붙여야 했다. 공강 시간에 짬을 내어 쪽잠을 자고 일어나서 또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서 과제를 하다가 밤 11시에 스쿨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삶. 그렇게까지 나를 괴롭혔던 건 전부 원하는 학교에서 떨어졌던 내 열등감을 채우기 위한 발악이었다.


노력에 대한 소소한 보상으로 교내 디자인 대회에 1등을 한 적이 있다. 그렇게 아이디어를 채택받으면 실제 제품을 만드는 과정까지 지원해 주기 때문에 내 디자인이 실체화된다는 것에 아주 들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미리 당겨서 들었던 3학년 강의에서는 3학년 선배들이 단합하여 중간고사 공부를 안 하기로 했다는데 나 혼자 빽빽하게 시험지 2장을 적어 내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들이 공부를 했든 안 했든 '나는 나의 길을 간다'가 인생 모토라서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당시 남자 친구는 그 모든 걸 지켜보면서 아주 못마땅해하는 것이다.


하루는 남자 친구가 날 걱정하면서 이런 조언을 했다.

"사람들이 너보고 독종이라고 부르는 거 알아? 나는 네가 동기들이랑 술도 마시고 과 생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좋겠어."


그는 나름 내 걱정을 하며 말했다지만, 내 귀에서 사람들이 너보고 독종이라고 말한다는 것만 들어왔다. 그래서 누가 그런 말을 하느냐, 넌 어디서 그 얘기를 들었냐고 캐묻기 시작했다. 그 독종이라는 말은 남자 친구와 그의 동기들이 함께 술자리에서 의 친구가 얘기를 하면서 너무 열심히 하는 게 독해 보인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었다. 그리고 내 남자 친구는 그 말을 듣고 공감하여 곧이곧대로 내게 전한 것이다. 늘 그렇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의 말보다 가까운 사람의 말이 더 치명적이다. 나는 독종이라는 단어의 묘한 뉘앙스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걸 옳다쿠나 나에게 전하는 남자 친구가 더 서운했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얼마나 애를 쓰는지 아는 네가 그 술자리에서 내 입장을 대변해 주는 것도 아니고, 그들의 평가를 그대로 옮긴다는 건 결국 너도 날 독종이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니?"


남자 친구는 독하다는 말은 칭찬이라고 말했지만 난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독종이라는 말은 '성질이 독하다' '못됐고 이기적이다'라는 뜻이고 그게 여자를 수식하는 말이면 '아주 모질고 인간미 없다' '욕심이 지나치고 너무 경쟁적이다'라는 부정적인 의미이다. 남자들 세계에서는 그런 독종이 끝내 성공하는 스토리가 선망의 대상일지는 몰라도 여자에게는 어딘가 부족한 여성성을 채우려 아등바등한다는 평가이다. "쟤는 얼굴도 예쁘지 않으니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지..." 뭐, 이런 류의 조롱인 셈이다.


▣남미라고 불렸던 여자

나와 같은 학과였던 한 여자 후배는 이 과에서 3번 남자 친구를 사귀었다. 나는 한 번만 하고도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하는 과 CC를 3번이나 했다는 것이 놀랍긴 했다. 과 CC를 후회하는 이유는 그것이 늘 구설을 몰고 오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학과라는 건 고등학교의 반 친구들과는 전혀 다른 집단이라 친밀감이나 서로에 대해 알아갈 시간이 없어도 한 공간에서 같은 활동을 해야만 하는 조직이다. 과 대항전이라도 하면 얄팍한 소속감이 들기도 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서로 다른 강의를 듣고 치열한 학점 경쟁을 하면서 결국 다른 길로 걸어갈 사람들이란 것이다. 그렇다 보니 남녀상열지사에 대해 질 나쁜 소문이 돌기도 쉽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평가에 희생되기도 쉽다.


당시 사귀던 남자 친구는 그 여자 후배가 학과 내 남자들끼리 만든 단톡 방에서 "남미"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고 말했다. 남미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니 "남자에 미친 여자"라는 뜻이란다. 그걸 재밌다고 낄낄대며 전하는 전 남자 친구의 뺨을 한 대 쳐주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참 한이 된다. 내 싸늘한 표정을 보고는 입을 다물긴 했지만 당시 내 머릿속은 매우 복잡했다. '내가 고른 남자가 이딴 찌질이라니? 내 눈에 어디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자아성찰에 빠진 것이다.


기본적으로 난 험담에 적극적인 타입은 아니지만 이런 일을 겪고서는 험담이 어떤 사람이 중요한 정보를 가져오는지, 누가 나의 잠재적인 적이 될지를 파악하는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이 쉽게 뱉는 말들의 대부분은 검증되지 않은 허위사실이지만, 그 허위사실도 믿는 사람이 많아지면 사실이 된다. 더군다나 한번 나쁜 이미지로 각인되면 그것에 해명할 기회도 없이 마녀사냥을 당해 산채로 화형에 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옳든 옳지 않은 일이든, 험담으로 나에 대한 이미지나 정보가 왜곡될 수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 남자들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

난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해결책을 찾고 싶어서 제일 가깝고 믿을만한 남성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건 아버지와 내 남동생이었다. 과 생활에서 내가 느끼는 좌절감과 남자 동기들 간의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를 들은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자들은 여자가 가르치려 들면 싫어한다.


그 말에 끄덕끄덕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내 남동생, 어쩌면 이게 남성의 보편적 심리이자 우리 사회의 질서일지도 모른다. 인터넷 댓글창이나 브런치의 글을 보면 세상이 대단히 급격하게 변하는 것 같지만 실제 사회 구조나 제도는 쉽게 바뀌지 않는 것처럼, 생각이 발전하는 속도는 빛의 속도만큼 빨라서 견고한 현실이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나도 현실을 받아들이든 계속 저항하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남성들과 같이 지내기 위해 그들의 심리가 그렇다는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남성이 없이도 혼자 생존하고 일할 방법을 모색할 것인가?


결과적으로 나는 남성을 이해하고 협력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오랜 고민 끝에 세상의 절반을 적으로 돌려서 내가 얻을 것이 없다는 결론을 냈고, 그건 온전히 나의 이익을 위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내가 쓴 전략이 하고자 하는 말을 부드러운 말투와 태도로 전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의 내용이 옳은지 보다 말하는 사람의 태도를 보고 믿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런 태도에 현혹된 비합리적 선택매력적인 여성을 대하는 남성들에게 더 쉽게 관찰된다. 곤란한 부탁이나 날카로운 질문도 그걸 이야기하는 태도가 부드럽고 매력적이면 기분 나쁘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남성들은 공격적인 태도의 여성을 매우 어려워한다. 조던 피터슨의 말마따나 '이성적인 남성은 여자를 때릴 수 없어'서 방어할 수단이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남자들의 심리의 근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의 의문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남자들은 왜 여자들이 지시하고 가르치는 태도에 진절머리를 치는 건가? 분명 같은 지시와 가르치는 말투도 그것이 남성의 입에서 나올 때와 여성의 입에서 나올 때 확연한 반응 차이를 보이는 건 남자들이다. 남자들의 세계에서는 그런 통제욕과 지시하는 태도가 리더십의 한 형태로 인정받고 있어서 쉽게 서열이 형성되지만, 그것이 여성의 태도라면 험담이나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 여성이 파트너를 선택하는 히스토리를 쭉 기억하고 때마다 술자리 안주거리로 삼는 그 심리는 무엇인가? 여러 남자와 사귄 여자를 '남자에 미쳤다'는 모욕적인 단어로 표현하는 말 뒤에 숨겨진 의도가 궁금했다. 21세기의 남성들은 진정으로 현대 여성에게 조선시대 아녀자의 정절을 요구하는 것인가?


▣ 독종인 여자를 보는 남자들

처음 이 매거진을 기획한 의도대로 최대한 남자들의 입장에서 왜 나를 독종이라 불렀는지 생각해 봤다.


다 같이 공부하지 않기로 성적 카르텔(담합)을 형성한 3학년들의 눈에는 2학년이 괜히 3학년 수업에 들어와서 성적 격차를 만든 것이 아니꼬왔을 것이다.


나를 독종이라고 불렀던 동기들은 상대적으로 조급함을 느꼈을 것이다. 너무 부지런한 사람을 보면 상대적인 나의 게으름이 보이고 너무 앞서가는 사람을 보면 상대적으로 자신이 뒤처졌다는 걸 깨닫는다. 내가 어떤 이유에서 절박하게 살았는지, 내적 동기를 이해하기에는 공감대 형성이나 함께 대화를 나눠볼 기회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경쟁자이자 왠지 신경 쓰이는 동급생이었을 것이다.


▣ 그렇다면 남미라 불린 그녀는 왜...?

정말 이해하기 힘든 것은 여러 번 과 CC를 했다고 남자에 미쳤다는 조롱을 퍼붓는 심리다. 남녀를 바꾼 상황이라면과 CC를 여러 번 하는 남자후배에 대해 좋지 못한 소문을 나누고 그를 조심하자며 경계했을 것 같다. 사실 내막을 자세히 모르는 상황이라면 충분히 오해할 소지도 있는 것이다. 한 집단 내에서 여러번 파트너가 바뀌는 것은 진중하지 못한 연애를 하는 사람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조롱하는 듯한 그 뉘앙스는 참 이해하기 어렵다. 그녀와 사귄 남자들도 알음알음 소문을 듣고도 사귀기로 했을 것이고 한 학교에서 전 남자 친구와 현 남자 친구가 마주치는 껄끄러운 상황이 문제라면 당사자들이 해결해야 할 영역이다. 제3자인 남자들이 그녀를 남자에 미쳤다고 모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저급한 표현에는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는 마음으로 사귄다는 의미보다는, 그녀가 남성을 유혹하고 다닌다는 느낌이 있다. 정작 사귀고 있는 남성의 마음은 아무도 묻지 않는 것이다.


▣조던 피터슨의 강의에서 실마리를 찾다.

임상심리학자의 조던 피터슨의 인터뷰에 의하면 이렇다.

여성은 자신보다 나이가 4~5살 많은 남성을 선호하고 자신보다 상위 지배계층의 남성을 선호한다. 어떤 여성도 자신보다 병약하고 왜소하고 가난하고 지능이 낮은 남성과 짝을 짓지 않기 때문인데, 이 말은 남성이 여성보다 건강하고 몸집이 크고 부유하고 지능이 높아야 한다는 뜻이다. 여자보다 나이가 많으면 먼저 사회에서 커리어를 쌓은 남성이 재력, 권력 등에서 보다 나은 위치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향 선택 때문에 여성의 선택지는 점점 좁아진다. 일부일처제가 없는 자연 상태에서는 권력 있는 소수의 남성만 짝짓기 할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이 영상을 보고 내가 이해한 것은 남성들이 여성보다 지배적인 위치에 있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동시에 대단한 커리어를 가지고 사회에서 인정받을 만한 지위에 있는 여성일지라도 자신보다 더 나은 조건의 남성을 만나길 원한다. 물론 더 나은 조건이라는 것에는 신체적인 매력, 재력, 지위, 권력 등 다양하겠지만, 본능적인 부분에서 여성은 임신을 했을 때 취약해진다는 걸 인지하고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남성을 찾는 것이다. 그런 경향성은 유전적인 명령의 차원이라 의식하지도 못한 채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여성이 그런 본능적 경향성을 가진다면 남성도 본능적 경향성을 가질 것이다. 무의식적인 유전적 명령은 자신이 경쟁력 있다는 걸 증명하고 사회의 위계질서에서 높은 자리로 올라가야 젊고 아름다운 여성 파트너를 얻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된 경쟁을 뚫고 적절한 보상이 되려면 획득한 여성은 남들의 선망을 받을 만큼 아름답고, 고귀하고, 순결해야 할 것이다. 그건 힘들게 일한 나 자신에게 한정판 신상 시계를 선물하는 것과 같다. 괴로운 자기 절제와 나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게임에서 승리하고 얻는 보상이 당근 마켓 중고품이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남성에게 권력 투쟁을 부추기는 사회에서는 여성의 순결이 미덕이다. 젊고 아름답고 나에게만 허락된 여성이라고 하면, 남성들을 권력 획득을 위한 눈먼 경쟁으로 몰아넣을 동기부여가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사회는 남자들에게 깨야할 퀘스트를 주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아름다운 여자와 재물, 권력, 지위, 사회적 존경들을 약속하는 것이다.


그러니 한 게임판에서 여러 남자들과 짝을 지은 여성은 사회적 미덕을 저버렸다 조롱하는 것이겠지? 그 조롱은 가치가 떨어진 여성을 하찮게 여기는 시각에서 온 것이다.


이런 논리가 아니라면 도무지 그들의 심리가 어떤지 알 수가 없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댓글을 달아주면 좋겠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며

대학 단톡방에서 남학생들이 여자 동기들의 외모를 평가하고 비하하는 대화 내용이 유출되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있었다. 사실 평가하고, 선택하고, 비하하는 행위는 상대보다 내가 더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심리이다. 권력게임에서 더 많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은 모두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것이다. 이런 행동은 남성이 여성보다 더 큰 권력을 가졌던 구시대의 유물인 것이다.


기존의 남성 권력이 해체되는 구조적 변화는 그 안에 살고 있는 구성원 모두에게 혼란과 스트레스를 가져온다. 과도한 경쟁에 익숙해져 있는 남자들에게 갑자기 변한 사회는 의아한 것일지도 모른다. 분명 사회에서 성공하고 많은 돈을 벌면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만나 마음껏 즐기며 살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막상 사회의 경쟁이 너무 치열하여 풍족하게 돈을 벌기도 쉽지 않고, 우리 사회의 계층 구조는 더 이상 수직상승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또 여성들은 이전에 들어본 적 없는 공감능력이나 동등한 권리 같은 모호한 개념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남자들의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게 과도한 요구와 압박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여자들도 결혼해서 남자에게 경제적으로 기댄다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면서 점점 경제적으로 독립하려 하고 있다. 그래서 이전보다 더 경쟁적이고 공격적이며 자신의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해야 할 압박을 느끼고 있다. 자유의 제1원칙은 더 많은 위험부담을 감당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새장을 벗어난 새는 스스로 야생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미약한 개인은 때로 시대의 변화나 국가의 상황에 따라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프랑스 혁명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임진왜란 때 태어난 아이들은, 일제 강점기에 공부했던 학생들은 사회의 구조가 해체되고 개인이 희생되는 고통을 목격했을 것이다. 역사를 되새겨보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큰 파도가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 또한 눈부신 기술발전과 급격하게 늘어난 정보량, 빠르게 변하는 의식과 관념 때문에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동시에 모두가 정신적 혼란을 겪고 있다. 그런 시대에 남녀 갈등을 보면 이 혼란 속에서 느끼는 스트레스와 불안을 어찌할 줄을 몰라서 서로를 물어뜯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벤 샤피로나 조던 피터슨 같은 보수적 시각을 가진 지식인들이 남성들에게 각광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혼란에 대한 뚜렷한 대책이 없다면 안정적인 과거의 질서로 회귀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미국에서는 기독교적 가치에 바탕을 둔 보수주의일 것이고 한국에서는 가부장제도가 될 것 같다.


다음 글은 <03. 여자만 가부장제도에 희생된 걸까?>입니다. 6/15 화요일에 업로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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