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여자만 가부장제도에 희생된 걸까?

모든 남자가 리더가 될 수는 없었다.

by 구름조각

한국민족문화 백과사전의 정의에 의하면 가부장제도란 '가장인 남성이 강력한 가장권을 가지고 가족 구성원을 통솔하는 가족형태 또는 가족 구성원에 대한 가장의 지배를 뒷받침해 주는 사회체계를 일컫는 제도.'이다.


여기서 말하는 가장인 남성이란 아버지가 1순위이고 아버지의 빈자리를 장남, 첫 번째 아들이 대신한다. 그래서 어머니나 딸은 물론, 우연히 둘째나 막내로 태어난 남자들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릴 때까지 한 가정의 가장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때문에 종종 형에게 밀려 서러운 둘째 아들의 하소연이 들릴 때도 있고, 무작정 가장의 책임감을 떠안아야 하는 K-장남의 사정이 딱할 때도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선천적으로 리더십을 타고나는 게 아닌데도 장남이 가족을 책임지고 지배해야 할 의무를 가지는 것이 가부장제도의 한계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저 큰아들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기대와 부담을 동시에 졌던 남자와 출생 서열에서 밀린 것으로 늘 형에게 지배받아야 했던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장남 아닌 장남

그는 둘째였음에도 장남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2살 많은 형이 경계선 지능장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번 배운 간단한 일 외에는 항상 어린아이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다. 이미 탄탄한 사업체를 가지고 있던 아버지는 큰아들을 일치감치 포기하고 둘째에게 장남의 역할을 맡겼다. 그건 형제들 사이에서 모범이 되고, 어머니를 보호하며,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고, 그의 위신을 세워주는 것이었다. 그 욕구가 어딘가 병적으로 느껴질 만큼 그는 둘째의 성적에 집착했다. 어쩌면 똑똑한 자신에게서 부족한 아들이 태어났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다친 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의 감시 아래 학습지를 풀고 점수가 좋지 못하면 윽박지르는 듯한 잔소리를 몇 시간씩 듣고 있어야 했다. 그때부터 이어져 온 정신적인 압박 때문에 성인 ADHD라는 진단을 받았고, 무엇 하나 집중하지 못하고 늘 초조해하며 살아야 했다. 착한 여자 친구는 그의 가정환경과 단점을 이해했고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이어졌지만, 곧 가정을 일군다는 책임감이 그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의 가족을 떠나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게 아니었다. 지금의 가족을 책임지는 동시에 아내와 아이가 태어날 새 가족의 가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는 혜택을 누렸으나 그에 따르는 부담과 지금의 가족과 새로운 가족을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에 압박감을 느꼈다.


▶형보다 못한 동생

그의 큰 형은 성격이 대단한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형한테 맞고 자랐기에 성인이 된 후에도 형을 보면 왠지 모르게 움츠러든다. 부모님은 형이 그렇게 동생을 '혼내는 일'을 장남의 책임감 정도로 여겼다. 어쩌면 감당하기 힘든 둘째 아들의 훈육을 큰아들에게 맡긴 걸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폭력이 훈육으로 포장되었고, 어린 형이 더 어린 동생을 통제하는 것이 마땅하게 여겨졌다.


유학을 결정한 건 이 집에서 멀리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큰 형만 싸고도는 부모님은 그가 미국으로 유학 가던 서울로 유학 가던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든 인정받고 싶은 마음으로 늘 노력했지만 집안에서 입지는 형의 발끝만큼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는 '부모님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라고 불평했다. 20대 후반의 성인 남성이 투덜거리는 말 치고는 너무 어린아이 같은 말투였으나, 그건 그의 불만이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써본 그들의 이야기는 내가 살면서 만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요약한 것이다. 그들은 각자 다른 환경에 처해있었지만 고통받는 둘째 아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가부장 제도가 남성에게 요구하는 것

실제 가장의 역할을 맡은 사람들은 가족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 그는 가장이라는 역할 아래 가족 구성원과 가정의 재산에 대한 지배권, 통제권을 가진다. 그리고 왕관을 진 자는 반드시 그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한 국가의 왕이든 한 가정의 가장이든 그는 권한을 가진 동시에 막중한 책임감을 버텨야 하는 것이다.


올바른 리더가 되기 위한 조건은 이러하다.

1. 비전 제시

가정도 사회의 최소 공동체로서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 고민 하고 집이나 가족 구성원을 확장할 시기가 있다. 아이들이 커지면 더 큰집으로 이사 가거나 새로운 환경으로 갈 것을 결정하는 소소한 문제뿐만 아니라 새로운 나라에 이민을 가거나 전혀 다른 삶의 방식에 도전하는 것과 같은 방향성을 결정해야 한다.


2. 통제와 질서유지

부모의 권위를 세우고 가정 내에 위계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형제들 사이의 서열은 출생 순서에 따라 신체 발육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지만, 동시에 부모가 형의 역할과 동생의 자세를 가르치면서 공고해진다. 형은 동생을 위해 양보하고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역할을 배우고 동생은 형에게 대들지 말고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배우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고만고만한 애들을 데리고 한 명은 모범이 되고 한 명은 순종하라고 가르치는 게 좀 우습기도 하다.


3. 물자 지원

구성원들을 먹일 자원, 재정적 지원 물자 확보해야 한다. 쉽게 말해 가족들을 먹이고 교육시킬 충분한 돈을 벌어와야 하는 것이다. 나라에 기근이 들면 왕실의 재산을 풀어서라도 굶주린 백성을 먹여야 하듯이, 아이들 분유값을 벌기 위해 투잡이라도 뛰어야 할 압박이 있다. 거기에 아이들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제공해야 할 의무는 최근에 추가된 항목이다. 이제는 정서적 친밀감과 심리적 지원 또한 물자지원만큼 중요한 것이다.


가산에 대한 통제권은 한정된 자원을 공정하게 분배할 때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도 포함한다. 여러 아이들 중에 누구에게 교육혜택을 제공할 것인지, 누구에게 더 많은 돈을 투자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부모의 사랑은 무한해도 가족 내 자원은 한정적이기에 자녀들의 욕구를 모두 채워줄 수는 없는 것이다.


4. 보호

가족 구성원을 외부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의무가 있고 가까운 미래에 예측되는 위험을 피할 필요도 있다. 집에 도둑이 들면 일단 제일 먼저 뛰쳐나가야 하는 것은 아버지나 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을 보호할 때는 위험한 행동을 제지하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지 않게 교육하고 외출금지나 통금시간처럼 자유를 일정 부분 제한할 필요가 있다.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밤늦게 돌아다니거나 질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탈선할 가능성을 막기 위함이다. 물론 적절한 보호에 대해서는 자녀와의 원만한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5. 교육과 롤모델

모범이 되는 가장은 자연스럽게 권위를 가진다. 이것이 현대 가장의 가장 힘든 부분일 텐데, 더 이상 아버지라는 이름만으로는 자연스럽게 존경을 얻지 못한다. 스스로 규칙을 지키고 성실하게 가족을 먹여 살려도 쉽게 아내와 아이들의 존경을 얻기 힘든 것이다.

단순히 학교에서 지식을 공부하는 것 외에 가정에서 자녀의 인성교육, 삶에서의 가치관 성립, 책임과 의무를 교육하는 데에도 아버지의 권위가 필요하다. 아버지의 존재란 자녀에게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삶을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지를 가르치는 롤모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개 아들은 아버지의 뒤를 따르며 그와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


◈가부장제도의 한계

가정의 리더가 되는 건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지는 것이기에 모든 남성이 가장이라는 위치에 적합한 건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좋은 가정의 리더가 되기 위한 조건을 다 갖추기 힘들 것이다. 열심히 돈을 벌어와도 가족들의 존경을 받지 못하거나, 자신의 일은 성공해도 자녀 교육에 실패하거나, 가정 내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것이 버거운 남자들도 있다. 그중에는 통제권을 가졌으나 되려 양보하고 싶은 남성들도 많을 것이고 둘째나 막내가 장남보다 리더에 적합할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가부장제도는 남녀 모두에게 사회구조와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부품의 역할을 강요한다. 여성은 인구 재생산의 기능을 수행하고 남성은 그 어린이들을 먹이고 보호해 제도를 유지할 노동자를 육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훌륭한 아버지의 덕목은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과로에 이를 정도로 일하는 것이다. 그렇게 부품으로 취급받는 남성들 중에 오직 소수만이 인정받고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지 못하는, 즉 충분히 돈을 벌지 못하고 안정적인 직장이 없는 아버지들은 불량품 취급을 받는다. IMF가 강타한 대한민국의 실직가장들이 자살을 선택한 이유는 그렇게 기능을 상실한 나사들이 삶의 의미를 잃었기 때문이다.


볼트의 역할과 너트의 역할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이 전체 시스템을 원활하게 작동하게 만드는데 이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 구조가 집단주의에서 벗어나 개인성을 중시하면서부터 기존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상황이 생긴다. 나는 이런 제도의 일부로서 역할을 강요하는 모든 외부의 압력이 남녀 모두에게 진정한 잠재력을 개발하고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다고 생각한다.


격변하는 사회질서 속에 여성들은 고정된 여성의 역할 모델을 탈피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나, 여전히 기존 체제의 한계에 고통받고 있다. 그리고 무너지는 사회구조 속에서 고통받는 건 여성들 뿐만이 아니라 같은 구조에 소속된 남성도 포함된다. 이들은 기존의 남성성의 롤모델을 잃고 혼란을 겪고 있다. 이런 시기에 조던 피터슨이 남성들의 구원자로 각광받는 것은 그가 전통적이면서 현시대에 적용될 만한 새로운 남성성의 모델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왜 가부장제도를 거절하는가?

어떤 남성들은 남자들이 더 많이 일하고, 여성을 보호하고, 더 많이 책임지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묻는다.

그러나 어떤 것을 책임진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는 것과 같다. 내가 내 삶을 책임진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통제권을 발휘하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책임진다는 것은 자녀가 죽지 않도록 보호하고 양육하는 동시에 자녀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감시하고 자녀의 일상에 대한 일정 부분의 통제권을 가지는 것과 같다. 서양의 부모들은 그 통제권을 이용해 외출금지를 시키고 한국의 부모들은 통금시간을 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유튜브 영상으로 보는 조던 피터슨이나 벤 샤피로의 의견들은 매우 통계적인 근거와 논리적인 사고로 무장했음에도 진보주의자들의 저항을 받는다. 대표적으로 남성은 여성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것인데 이 책임 아래 숨은 통제가 여성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내 안전과 생계와 생존에 대한 책임이 그에게 있다면 여성은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버리게 된다. 자유의 제1원칙은 설령 그 자유가 나를 위험하게 하고 죽게 할지라도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에 있다. 자유가 마냥 아름다운 낙원을 약속하지 않는다는 건 여성들도 잘 알고 있다.


자유의 결과는 냉혹한 인과율이다. 내 자유가 나의 잠재력을 마음껏 펼치게 해 줄 것인지 방종이 되어 나 자신을 해칠 것인지에 대해서 여성들은 축적한 데이터가 없다. 역사상 한 번도 온전히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경험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딸로서 아버지의 보호를 받다가, 누군가의 아내로서 남편에게 보호받고, 누군가의 엄마로서 아들에게 보호받는 삶은 자유를 대가로 안전을 보장받아 왔다.


이런 법칙을 깨달은 여성들이 남성들의 보호와 책임을 거절하는 시대가 되자, 역설적으로 남성의 책임을 강조하는 철학이 인기를 얻고 있다. 남성들이 지난 세기 동안 부여받은 역할 '여성을 보호하고, 가정을 책임지고, 국가를 위해 싸우는' 역할이 불안정해지면서 느끼는 불안감에 대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사회가 요구한 역할이 아닌 개성 있는 자신이 되는 것은 너무 많은 선택권을 가지는 일이고, 너무 많은 가능성은 되려 불안의 원인이 되는 것이기에 어떤 역할 모델을 수행하는 것에 안주하려는 것이다.



◈자유와 책임

기존의 가족공동체가 해체되는 것이 아쉬울 때도 있다. 든든한 아버지, 따뜻한 어머니, 착한 딸과 씩씩한 아들이라는 가족의 이미지가 우리의 무의식 깊숙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너무 빠른 변화가 당황스럽다. 전원일기에서 보는 대가족이 빠르게 사라지고 4인 기준의 핵가족 시대가 왔다가 마침내 1인 가구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과정이 불과 3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나의 경우는 대가족적 환경에서 태어났고 4인 가구에서 성장했으며 1인 가구를 꿈꾸는 사람이라 이 극적인 변화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IMF 이전만 해도 아버지가 일하고 어머니가 가사를 하는 것이 흔했다. 내가 5살 무렵에는 엄마가 동네 아주머니들과 모여서 음식을 하거나 퀼트를 배우곤 했고 아빠는 월급날 누런 봉투를 가져다준 기억이 있다. 그때만 해도 엄마가 매일 새로운 반찬을 만들어 저녁상을 차리고 집 청소도 깔끔하게 해 놓았지만, 엄마가 일을 시작한 후부터는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경쟁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노동은 가치가 없는 것이다. 아이를 낳아 키우고, 가족을 돌보고, 가사를 하는 것이 가치 없는 일이 되어 버린 후로 어머니와 여자들도 사회의 생산자 역할을 맡고 있다. 가족을 돌보는 어머니에 대한 향수가 있는 남자들에게는 아쉬운 일일 것이다.


어떤 제도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채택되고 폐기된다. 우리가 살던 이 땅에도 한때는 왕과 백성이 살았지만 군주제는 버려졌고 민주주의가 채택되었다. 남성의 노동력이 필요한 농경사회에서 가부장제도는 분명히 효율적인 제도였다. 남성의 노동력과 여성의 생산력을 합쳐 자원을 생산하고 미래의 노동자를 육성하는 최소한의 사회 단위. 어쩌면 가부장제도 안에서 서러운 여성만큼이나 남성도 사회의 부품 취급을 받은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가부장제도를 지지하는 남성들을 보는 내 의문은 이렇다.


그들은 왜 자유가 아닌 굴레를 선택하려 하는 것인가?


가벼운 에세이로 시작하면 늘 끝에는 사회 비판으로 끝나는 느낌이 있네요. 어제 축구 보면서 맥주 한 캔 마셨다가 뻗어 버려서 오늘 업로드했습니다. 다음 글은 조금 가볍게 '남자의 고백'에 대해 써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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