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무룩한 아버지를 보는 건 마음이 아프다.
저녁밥상을 다 차려놓고서야 아버지가 늦는다는 메시지를 봤다. 아버지는 일찍 5시쯤 보내 놓았는데 오래간만에 된장찌개에 고기 좀 구워 먹겠다고 부산을 떨던 내가 스마트폰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탓이다. 갑자기 또 습하고 더워진 날씨가 짜증이 나서 시원한 병맥주도 두 병 사놓았는데... 아쉬운 대로 동생과 한 병을 나눠 마셨다. 이상하게 맥주는 병맥주가 더 시원하고 맛깔난 것 같다.
저녁 식사에 먹을 고기 중 절반 정도 아버지 몫을 떼어놓고 구워서 맛있게 먹었다. 식탁을 정리하고 동생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 아버지가 들어왔는데 얼굴이 왠지 시무룩해 보였다. 나는 저런 아버지의 얼굴을 알고 있는데 일전에 아버지 승진 날 본 얼굴이다. 승진은 기쁜 일인데 왜 시무룩해졌냐면, 임원으로 승진한 아버지 자리에 있던 선배가 은퇴를 했기 때문이다. 축하자리에서 아버지의 승진과 선배의 퇴직이 동시에 이뤄졌다. 뭐 그런 얄궂은 행사가 다 있냐고 혀를 내둘렀지만 사회생활이란 게 그렇다고 한다. 자리가 얼마 없으니 한 사람을 밀어내고 그가 있던 자리에 올라서야 한다.
그런 걸 볼 때마다 어릴 때 하던 의자 뺏기가 생각난다. 천성이 승부욕 따위 없는 나는 그런 게임을 하면 늘 제일 먼저 탈락하고 의자를 빼앗기곤 했다. 열심히는 하지만 어딘지 맹하게 살았던 20대도 매번 의자를 빼앗기며 살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왜 의자를 욕심내야 하는지 이유를 잘 몰랐다. 갖고 싶지 않은 것을 위해 애쓰고 몸을 부딪혀 경쟁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돈이야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야지."라고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만 했다. 생일에도 뭘 갖고 싶다고 떼쓴 것도 없고 친구들 입고 다니던 브랜드 옷에도 심드렁했다. 나 때는 노스페이스 바람막이가 유행이었고 그 세태를 보고 풍자해 '등골 브레이커'라는 단어가 생겼다. 어린 학생들이 부모님의 등골을 부셔 비싼 옷을 산다고 비아냥대는 단어였다. 그런데 나는 그런 트렌드니 브랜드니 하는 것에는 영 눈이 어두워서 그런 게 유행하는 줄도 몰랐다. 옷도 늘 엄마가 사주는 것을 군말 없이 입고 다녔고 지금도 옷이나 구두에 영 흥미가 없다. 내 얼굴이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고 말하는데 그건 다른 친구들보다 순진하고 아둔한 인상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늘 이런 어수룩함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다시 아버지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아버지의 시무룩한 얼굴은 그런 뜻이다. 승진 경쟁에서 이기고도 알고 지내던 동료나 선배가 은퇴하는 것을 보고 마냥 기쁘지는 않은 마음이다. 자신도 곧 저렇게 은퇴한 직장인이 될 것을 알고 마음이 심란할 때 나오는 표정이 꼭 잘 지내던 친구가 전학가 버린 초등학생 같다. 그런 날은 무뚝뚝한 아버지도 왠지 모르게 투정을 부리시곤 한다. 승진하신 날에는 말도 없이 대뜸 케이크를 사 오라고 으름장을 놔서 '오늘이 무슨 기념일인지' 한참 머리를 굴려보고 엄마에게도 전화를 했다. 당연히 엄마도 5월에 아무 기념일도 없다고 해서 혼자 의문만 가득한 채로 케이크를 사러 갔다. 아버지는 계속 뚱해져 있다가 케이크에 불을 붙였을 때야 오늘 승진을 했는데 동시에 선배 한 분이 은퇴하게 되어 마음이 좋지 않다고 말을 했다. 나는 조용히 아버지를 안아주고 등을 여러 번 쓸어드렸다.
오늘은 아버지의 동기가 은퇴를 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식사와 술자리를 하고 오신 모양이다. 아버지는 그때와 같이 심란한 얼굴로 "아빠 나이 때는 하나둘씩 은퇴하기 시작한다."라고 중얼거리셨다. 그 말이 너무 쓸쓸하게 들려서 내 정신이 혼미한 사이에 아버지는 옷을 갈아입고 운동을 하러 가셨다. 노인네들은 친구들이 죽고 떠나기 시작할 때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다는데 회사원들도 자신의 동료가 떠나갈 때 제일 크게 불안해지지 않을까. 계속 회사에서 쓸모 있는 존재로 남을 수 없음을, 이제는 원치 않아도 물러나야 함을 직감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까지 더듬어 보니 아버지의 마음이 무거운 것도 이해가 간다.
한참 후에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오신 아버지는 말도 없이 샤워를 하고 맥주를 한잔 드셨다. 내가 사놓은 맥주가 시원한 병맥주라고 조금 좋아하셨던 것 같다. 나는 어떻게 말을 할지를 몰라 아버지의 등을 몇 번 쓸어드리다가 너스레를 떨었다.
"얼른 돈 많이 벌어서 아빠의 짐을 덜어줄게."
"그래... 고맙네."
아버지는 늘 그렇듯이 별로 말도 없고 술만 드셨다. 엄마는 매일 술만 마시는 아빠가 싫다고 하지만 나는 속내를 잘 털어놓지 않는 아버지의 유일한 위안이 술인 것 같다. 아버지의 무게를 덜어드리기엔 자식들의 허황된 약속들은 매번 무게가 없다.
앞으로 부모님 말 잘 들을게요.
어른이 되면 성공해서 효도할게요.
나중에 호강시켜 드릴게요.
그런 말들은 유치원에서 색종이로 카네이션을 접어올 때부터 해왔지만 한 번도 현실이 된 적이 없다. 약속을 지키는 어른이 되자고 다짐했는데, 가장 오래 묵은 약속들은 지키지 못했다. 성실하게 남들에게 나쁜 짓 안 하고 열심히 살았던 내 부모가 나의 자긍심인데, 어쩐지 나는 늘 부끄러운 자식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