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저씨, 나의 아버지

아버지 없는 소녀의 아저씨와 아버지가 그리운 딸의 이야기

by 구름조각

그런 사람들이 있다. 다정한 위로의 말 한마디보다 상대의 손에 돈을 쥐여주는 사람들. 묵묵히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들. 나의 가족들이 전부 이렇다. 핏줄로 내려오는 집안 내력이란 말은 세포 하나하나에 알알이 박힌 유전자의 기록을 뜻하는 것이다.


특히 전형적인 경상도의 무뚝뚝한 남자인 나의 아버지는 사랑한다는 말 대신 매일 새벽 6시에 일어나 회사에 출근하는 사람이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이 전부인 사람이지만, 그게 결코 소소한 일이 아니라는 건 내가 21살에 첫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깨달았다. 남의 돈을 벌어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치욕을 견뎌야 한다. 특히 아버지처럼 한 직장에서 30년을 버텨내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 사원에서 이사 자리 까지, 가파른 절벽을 오르는 염소처럼 아버지는 사회의 절벽에서 한번을 추락하지도 않고 꾸준히 올라오셨다.


그러니 얼마나 아슬아슬하고 매 순간을 긴장해야 하는 삶일까. 아버지의 몸은 자면서도 긴장을 풀지 못한다. 토끼처럼 작은 소리에도 놀라서 깨고, 어깨와 목은 늘 뭉쳐 있다. 굳은 몸을 이완시키는 건 알코올뿐이라 매일 술을 드셔야 하는지도 모른다. 난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가 술을 마실 때 싫은 소리를 하지 않고 맛있는 안주를 만들어 드리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버지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깊이 잠들 수 있다면 좋겠다고 바란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술에 잔뜩 취했을 때만 "딸, 사랑한다"는 다정한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다음날이 되면 또 무뚝뚝하고 차가운 얼굴이었기에 난 항상 아버지의 사랑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미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었음에도 늘 사랑에 고팠다. 좀 더 재밌고 다정하고 나와 많은 시간을 나누는 아버지가 되어주길 바랐다. 그러나 철없던 난 아버지에게도 아버지가 없었다는 걸 매번 잊어버렸다.


할아버지께서는 아버지가 15살이 되던 해 돌아가셨다. 내 짐작에는 아버지가 기억하는 아버지로서의 롤모델이 그때의 기억에서 끝난 것 같다. 내가 가슴이 봉긋해지고 사춘기가 오면서부터 아버지와 사이가 급격히 멀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는 사춘기 딸을 둔 아버지의 행동 양식에 대한 데이터가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남동생에게도, 15살 이후의 자녀들에게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 같았다.


멀게 느껴지던 아버지가 중국 지사에 발령받으면서 따로 살게 되었다. 그리움이 서운한 기억들을 덮어버리게 되면서 난 전형적인 '파파걸'이 되었다. 지금도 아버지의 존재는 나의 눈물 버튼이다. 생각만 하면 항상 애틋하고 죄스럽고 슬프지만, 앞에서는 다정한 말도 잘 못한다. 우리 부녀의 전화통화는 매번 30초를 넘기지 못한다. 내가 아버지를 닮아서 그렇다.


강해 보였던 아버지도 오랜 타지 생활이 힘드셨는지 부쩍 약해 보이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돌아와서도 다른 지역에 발령받았기 때문에 가족과 또 떨어져 지내야 했다. 드라마 같은 건 보지도 않던 분이 어느 날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 얘기를 하시면서, 너무 공감된다고 가끔은 보면서 눈물이 난다고 하시더라. 사람이 안 하던 행동을 하면 죽을 때가 된 거라던데, 갑자기 약해진 아버지가 당황스럽기만 했다.


이선균이 연기한 박동훈 캐릭터에 감정이입이라도 한 것일까. 늘 견제받고 불안한 회사 생활, 살을 비비며 살아왔는데도 왠지 멀게 느껴지는 아내, 착하고 성실하게 버텨 왔지만 대단히 인정받지는 못하는 삶. 아버지는 자기 자신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걸까. 난 그 드라마를 볼 때마다 묘한 죄책감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혹시나 나의 아버지는 '아버지가 된 걸 후회하는 것은 아닐까?' 부모님 두 분 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생긴 '나를 당신의 인생에 불청객처럼 여기는 건 아닐까?'


어머니의 존재가 무한한 애정과 헌신, 희생의 상징이듯 아버지의 존재는 든든한 보호나 지원 같은 의미를 가진다. 아이유가 연기한 이지안은 세상천지 기댈 곳 없이 살아온 가련한 소녀가장이었고, 박동훈의 존재는 처음 만나는 보호자의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지안이 말하는 '나의 아저씨'는 사실 '나의 아버지'라고 말하고 싶은 존재라는 생각을 한다. 가끔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고, 돈도 좀 빌려달라고 어깃장 놓아도 날 버리지 않을 것 같은 비빌 언덕. 믿을 수 있고, 기댈 수 있고, 내가 맞을 풍파를 대신 맞아주는 사람.


나의 아버지가 그러했으니까...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은 우연히 마주친 이지안의 변한 모습에 박동훈이 놀라고 기특해하는 장면이다. 세상의 짐은 다 자기가 지고 있는 듯하던 이지안에게 동료가 생기고, 미소가 생기고, 여유가 생겼다. 그런 지안에게 박동훈이 독백으로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라고 묻는다. 나는 그 장면에서 지안도 박동훈에게 '나의 아저씨, 당신도 편안함에 이르렀나요?'라고 물어보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 나의 눈엔 박동훈이 살아온 삶의 무게도 만만치 않았기에.

마지만 장면.jpg 사실은 내가 묻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의 아버지, 당신은 편안함에 이르렀나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버지의 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