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사람들 전부 다 마라탕에 중독된 것 같아요.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면 이제 마라탕도 한국음식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요? 그 특유의 화한 맛이 처음에야 낯설어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한 두 번만 더 맛보면 고소한 감칠맛에 중독되잖아요.
마라탕 쿨타임이라는 단어가 있어서 일정 시간이 지나면 마라탕을 꼭 먹어줘야 한다는 말이 있던데 정말 공감되었어요. 저희 가족도 주기적으로 마라탕을 시켜먹고 4인분 마라탕을 먹으면 남은 국물에 라면사리까지 넣어서 먹어줘야 끝나거든요. 정말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어치운다고요.
제가 2014년쯤 중국 베이징에서 먹었던 마라탕과 마라샹궈는 지금 한국에서 먹는 맛보다 훨씬 더 기름지고 자극적인 맛이었어요. 그럼에도 각종 채소, 고기와 독특하고 자극적인 마라 소스가 잘 어울려서 언젠가는 한국에도 유행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때 마라탕 사업을 했으면 마라탕 선구자가 되었을까요? 6~7년 전이라면 아마 쫄딱 망했을 것 같네요.
2018년에 독일 함부르크에 갔을 때는 같이 살던 중국인 친구가 충칭 출신이었어요. 충칭이 마라 맛의 대표 고장이라 제가 마라샹궈나 마라탕에 대해서 물어보니까 정말 반가워하더라고요. 친절하게 그 친구가 충칭 본토의 레시피로 마라샹궈를 만들어 줬답니다.
재밌었던 건 그때 같이 살던 토고에서 온 친구도 꽤 매운맛에 익숙한 친구였어요. 그 친구가 사는 지방에는 아프리카 고추를 넣고 푹 끓인 생선 스튜와 고기 스튜를 옥수수 가루로 만든 폴렌타라는 주식과 함께 먹는 음식문화가 있었거든요. 작은 피망처럼 생긴 아프리카 고추는 색이 알록달록하고 귀엽게 생겼는데, 지금 이름을 찾아보니 '필리필리'라고 불리네요.
그렇게 서로의 음식 문화를 이야기하다 갑자기 3국 매운맛 대결이 시작되었어요. 충칭의 대표 에이미는 화한 마라의 매운맛을, 토고 대표 조이스는 독한 아프리카 고추의 매운맛을, 그리고 한국 대표인 저는 화끈한 청양고추의 매운맛을 자랑하면서 서로 맵부심을 부렸어요.
각자 자신 있는 매운 음식을 만들어서 나눠주기로 했는데 공부하느라 바쁜 유학생들이니 하루는 에이미의 마라샹궈를, 하루는 제가 만든 고추장찌개를, 하루는 조이스가 만든 매운 생선 스튜를 먹었어요.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인정했답니다. 3국의 매운맛 끝판왕은 아프리카 고추 필리필리였어요. 세상에... 쪼끄만 놈이 어찌나 매운지...
너무 매운 음식을 먹으면 혀에서 쓰게 느껴진다는 거 경험해보셨나요? 한 입 넣는 순간부터 머릿속에 경보가 왱왱 울리면서 "당장 뱉어!"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아요. 친구의 호의를 거절하면 안 된다는 이성과 이건 사람이 먹을 게 아니라는 혓바닥이 얼마나 싸워대는지, 내적 갈등이 극에 달하니까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라고요. 제 표정을 보고 깔깔 웃던 조이스가 너무 매우면 안 먹어도 된다고 허락해 준 게 참 고마웠답니다. 앞으로 한국인들은 아프리카 친구들 앞에서 맵부심 부리면 안될 것 같습니다.
집에서 마라탕을 만들다 보니 여러 나라의 친구들과 함께 살던 때가 생각나네요. 그때 저는 많이 외롭고 우울했는데 저를 다정하게 챙겨준 친구들이 있어서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죠. 에이미가 알려준 마라샹궈의 레시피도 참 간단하고 맛있었는데, 저를 배려해서 화자오나 강한 향신료를 빼고 마라샹궈를 만들어 줬어요. 전 본토의 강력한 맛을 느끼고 싶었는데 친절한 친구의 배려가 고마워서 군말 없이 맛있게 먹었답니다.
추억들을 떠올리니 오늘 만들 마라탕이 더 맛있을 것 같아요. 사실 마라탕은 소스와 육수, 재료만 준비해 끓이면 되는 조리법이 아주 간단한 음식이에요. 마라 소스도 이마트나 인터넷에서 하이디라오 마라탕 소스를 구매하면 되니 어려운 게 없죠. 그런데 재료를 양껏 준비하는 게 좀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뭐랄까, 욕심이 많아질수록 일이 점점 늘어간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재료를 청경채, 배추, 대파, 시금치, 새송이 버섯, 팽이버섯, 목이버섯, 숙주나물, 어묵, 두부볼, 소시지, 메추리알, 건두부, 당면, 고기는 냉동 소고기 목심 샤부샤부용 450g을 준비했습니다. 마지막에 추가로 부추를 넣었어요.
분류해 보면 잎채소인 청경채, 배추, 대파, 시금치, 부추는 모두 다 넣을 필요는 없어요. 꼭 넣어야 한다면 전 배추를 선택할 것 같아요. 청경채는 가격대가 비싸고 양이 적더라고요. 의외로 괜찮았던 게 시금치였는데 시금치를 마라 국물에 익히니 달착지근한 맛이 되어서 마라탕이랑 잘 어울렸어요.
버섯류는 모든 종류의 버섯이 가능하니 원하시는 대로, 가능한 대로 넣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나물류는 콩나물도 좋고 숙주도 좋은데, 얼마 전에 콩나물국을 먹어서 숙주를 선택했어요. 저는 깜박했는데 연근이나 감자 같은 뿌리채소를 넣어주면 채소에서 전분이 우러나서 국물 맛도 더 감칠맛 있게 됩니다. 집에 연근이나 감자가 있으면 꼭 넣어보세요.
어묵이나 소시지도 마라탕에 잘 어울리는데 CJ에서 나온 폭신폭신 두부볼이라는 게 새로 나왔더라고요. 동글동글한 어묵처럼 생겼는데 부드러운 명태살과 두부로 만들어서 고소하고 이름처럼 폭신한 식감을 가졌어요. 마라탕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함께 넣어줬습니다. 그리고 저는 분모자나 중국 당면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잡채용 당면 한 줌과 건두부를 같이 넣어줬어요.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기 위해 사골육수 팩 2개를 냄비에 부어줍니다. 저희 집에서 제일 큰 냄비에 끓였어요. 채소의 부피가 크고 끓이다 넘칠 수 있으니까 안전하게 큰 냄비를 꺼냈습니다. 마라탕 소스가 한 팩에 3~5인분이라 탈탈 털어서 넣고 생수를 한 컵만 넣었어요. 채소에서 물이 많이 나오니까 마지막에 당면을 넣고 끓는 물을 추가하시는 게 간 맞추기 쉬울 것 같아요. 마라탕 소스 한팩을 넣으면 다양한 향신료가 들어 있는데 식감이 좋지 않으니까 되도록 채로 걸러주세요.
재료를 넣을 땐 냉동 고기를 먼저 넣고 어묵과 소시지를 넣은 다음 각종 채소를 넣고 불려놓은 당면과 건두부를 넣습니다. 이 순서대로 차근차근 넣으셔야 재료들이 익는 속도가 비슷해지겠죠. 숙주나 부추는 불 끄기 직전에 넣으셔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국물에 땅콩버터를 반 스푼 정도 넣어보세요. 중국에는 참깨와 땅콩을 갈아서 만든 즈마장이라는 소스가 있던데 이걸로 마라탕의 고기와 채소를 찍어먹는 소스를 만들기도 하더군요. 즈마장은 없지만 비슷하게 땅콩버터를 넣어 봤는데 고소하고 달큼한 감칠맛을 줘요. 마지막에 숙주와 부추를 올려 살짝만 익혀주면 마라탕 완성입니다.
1차로 푸짐하게 먹고 채소를 더해서 2차로 끓여먹고 3차로 라면사리까지 넣어서 마라탕 풀코스로 먹었네요. 하이디라오 마라탕 소스 한팩을 다 넣은 맛이 강해서 이렇게 여러 번 먹을 수 있었어요. 배달하는 마라탕과 비교하니 이렇게 먹는 게 조금 번거롭긴 해도 더 알차게 먹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여기에 곁들인 술은 밤빛 머루와 꽃빛 서리입니다. 특히 밤빛 머루의 깔끔하고 은은한 단맛이 마라탕과 잘 어울립니다. 화한 마라탕의 아린 맛을 달콤한 머루주가 싹 씻어준다고 할까요? 온 가족이 모여 술과 맛있는 음식으로 행복한 저녁 식사를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