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늙은이 같은 아이

세대 간 소통에 대한 '나'와 '우리'의 생각-①

by 구름조각

할머니의 꼬부라진 등을 보면서 우리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1kg, 1kg씩 등짐을 지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1살일 때는 1kg, 5살에는 5kg만 지고 뛰어놀면 되고, 20살에는 20kg의 무게만 들고 혈기왕성하게 살아간다. 그러다 60살이 되면 60kg의 무게가 척추뼈를 휘게 만들고, 80대가 되면 80kg의 무게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힘들어지고 무게가 더해지면 그만 짓눌려 숨이 끊어지는 것이라고.


어찌 보면 피할 방법도 없이 점점 더 많은 무게를 지고 살아가는 삶이 비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10대부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른이 된다는 것을 두려워했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도 이제 내 나이가 31살이라는 이유만으로 31kg의 무게를 들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준비가 안 되었다고 벌벌 떠는 것이야 내 사정이고 인생의 규칙은 냉혹하여 때가 되면 자신의 몫을 다 해야 한다.


어른들의 말을 유심히 듣는 것은 일종의 예습과 같은 느낌이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성실한 모범생처럼 살아왔기에 먼저 늙어본 사람, 먼저 인생을 살아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 삶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실제로 많은 조언들을 받았고 그중의 대부분은 얼추 내 상황에 들어맞았다.


그건 일종의 공략집 같은 것이었다. 레벨 3에서 헤매는 나에게 레벨 4, 레벨 5에서 사는 사람들이 주는 조언을 모아서, 어떻게 이 던전에서 많은 아이템을 챙기고 경험치를 쌓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공략집인 셈이다. 아마 내 타고난 성향 자체가 고민을 이야기했을 때 감정적인 위로보다는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확실하고 실용적인 해결책에 반응하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나이 또래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단박에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그 안에서 뭔가 이야기가 맴도는 느낌이다. 우리가 다 고만고만한 상황에서 살기 때문이겠지? 그럴 때 먼저 세상을 살았던 인생 선배들에게 물어보면 내 머리로는 생각하지 못한 해결책을 얻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른들과, 세대 간에 소통을 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다고 느낀다.


카카오 '음'에서 소통방을 열면 그런 내 성향에 끌려 온 사람들이 대부분 연령대가 높은 사람들이 많고, 전체적으로 진지한 느낌이 있다. 처음 시작은 가벼운 주제로 시작하더라도 결국에는 인생과 철학과 삶의 의미 같은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지난번 소통방도 음악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끝에는 세대 간의 소통의 어려움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했다. 나이가 많은 분들은 젊은 이들의 생각이 궁금하고 소통하고 싶은 한편, 꼰대라고 거절당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훨씬 더 풍요로운 세상에서 사는 20대 30대들이 왜 자꾸 힘들다고 하는지 궁금해하는 것이다.


그날 이후 세대 간의 소통이라는 주제에 대해 고민하면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료를 수집하고, 어떤 방식으로 소통해야 할지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서로 다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할 수 있게 될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지면서 처음으로 머릿속에서 글의 구조를 짜는 일이 매우 어렵게 느껴졌다.


지금의 2030은 나름의 어려움이 있고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개인적인 삶의 문제에서 계속 방황하고 있다.


5060대 분들은 젊은이들의 생각이 궁금하면서도 창창할 때 왜 이렇게 많은 기회를 놓치고 사는지 답답하다.


덧붙여 개인마다 소통에 목말라하는 정도도 다르고 문제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지점도 달랐고 어떤 영역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지도 달랐다. 사람들은 항상 각자의 욕구와 동기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소통이라는 한 주제 내에서도 근본적인 욕구가 다른 것이다.


많은 말들과 정보들 속에서 길을 잃었다가 메일을 한 통 받았다. 내가 처음 세대 간의 소통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던 '음'의 소통방에서 조용히 경청하고 있던 분이 개인 메일로 연락을 준 것이다.

누군가는 꼰대라며 무시하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그 멘토님에게서 삶의 지혜, 혜안, 통찰력을 얻으며 한층 성숙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꼰대는 놓치기엔 너무나 아까운, 아니 절대 놓쳐서는 안 될 훌륭한 멘토, 인생의 롤모델의 다른 이름이다.

이분이 자신의 에세이를 보여주시고 메일로 연락을 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반드시 이 주제를 다뤄야겠다는 묘한 사명감까지 생겼다. 소통에 목말라하는 것은 결국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취합해서 2030이 힘들어하는 원인을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전에 내 이야기를 먼저 해보고 싶다. 원래 자신이 직접 겪은 이야기에 가장 큰 에너지가 실리는 법이다.


■ 좋은 어른과 그렇지 않은 꼰대

살면서 만난 모든 어른들에게 존경할 만한 구석이 있던 건 아니다. 어떤 어른들은 그저 시간만 배불리 먹고 그것이 대단한 위세 인양 조언을 건네는 것이 어이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유교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어떤 상황에서든 나이는 벼슬이고 권력이다. 나이가 1살이라도 차이가 나면 관계에서 권력이 생기고 권력의 차이는 지시와 통제를 만들지, 동등한 입장에서 소통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소통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첫 번째 지점은 질문할 수 없는 환경이다. 학생은 선생님에게 질문할 수 없고, 자녀는 부모님에게 질문할 수 없고, 부하직원은 상사에게 질문할 수 없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합리적이지 않은 과정, 납득할 수 없는 선택, 이해하기 힘든 결정에 대해서 질문하면 '권위에 대한 도전'이 된다.


나는 늘 질문이 많았다.

"왜 여자들만 제사상을 차리고 남자들은 앉아서 술만 먹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면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왜 교수들의 취향에 맞춰 학생들이 눈치를 보고 과제를 제출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면 성적에 대한 불이익으로 대답을 들었다.

"왜 사장님은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직원들의 노동력을 착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면 절이 싫을 때는 중이 떠나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여러 절을 떠돌아다니다 보니 내가 머무를 절이 없었고, 이 세상에 내 자리가 없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나에게 질문은 그저 질문이었다. 나는 이것을 이해할 수 없으니 나를 납득시킬 합리적인 이유와 설명을 요청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질문이 곧 도전이었다. 그것은 자신들도 합리적이지 않다는 걸 인정하기 싫고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집안일을 나서서 하고 명절날 처가에 먼저 가겠다는 선택을 할 생각을 할 수는 없다.

교수들이 어느 날부터 진정으로 학생의 잠재력과 비전에 관심을 가지고 그에 맞는 새로운 평가법과 학습 커리큘럼을 제공할 수는 없다.

사장이 어느 날부터 직원들의 복지와 삶의 질을 생각해서 확실한 휴가, 월차, 노동에 맞는 월급을 줄 수는 없다.


그들이 변할 수 없다면 내가 변해야 하고, 내가 변할 수 없다면 그들이 규칙을 만든 게임판에서 떠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나둘씩 떠나오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매년 퇴사자가 많아지고 그들은 젊은이들이 나약하고 인내심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버티는 것을 선택해 기성세대의 방식을 이해한다고 해도 이미 권력의 불균형이 있는 상황에서는 노예가 주인을 이해하고, 쥐가 고양이를 이해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억울하다.

그것이 솔직한 심경이다. 그래도 기득권이라 매도하고 기성세대를 혐오하지 않은 것은 나의 멘토가 되어준 어른들이 몇몇 있었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방황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진지하게 삶을 살아가는 나를 응원해준 어른들이 있었다.

네가 옳아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가 있지만, 그럼에도 네가 틀린 것은 아니라고 말해준 어른들이 있었다.

그래도 끝까지 버티면서 성실하게 살아내면 언젠가는 너의 기회가 온다고 말해주는 어른들도 있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울어서 퉁퉁 부은 눈을 슥슥 닦고 다시 열심히 해 보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다.


명절날에는 유난히 보수적으로 변하지만 우리 아버지도 빨래를 각 잡아 접으면서 "사람은 늘 반듯하게 살아야 한다"라고 말해주신 적이 있다. 그 한마디가 내 평생의 이정표가 되었다는 굳이 설명할 필요 없겠지.


어떻게 보면 젊은 날의 위기에서 날 구해준 것은 응원과 격려, 날 아껴주는 사람의 조언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너무 큰 좌절을 느꼈을 때는 그 어떤 것도 소용이 없었다. 아홉수라는 말이야 진즉 알았지만 이렇게 크게 좌절하고 세상이 날 배신할 줄은 몰랐다. 19살과 29살에 내가 경험한 세상에 대해서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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