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간 소통에 대한 '나'와 '우리'의 생각-⑤
[세대 간 소통에 대한 '나'와 '우리'의 생각]
어제 저녁 메뉴는 오징어 볶음이었다. 매콤한 오징어 볶음에 막걸리 한잔을 곁들이며 아버지와 세대 간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버지는 65년생이시고 한 회사에서 30년 넘게 근속하시며 사원에서 임원의 자리까지 오른 분이다. 26살에 내가 태어난 후로는 "앞으로 내 인생에서 지켜야 할 여자는 딸과 아내뿐이라고 생각했다."며 당신의 어머니께 늘 미안해하는 분이다. 아들로서,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한 회사의 근로자로서, 성실한 국민으로서. 어찌 보면 사회에서 요구하는 모든 책임을 완수한 분이고 그것으로 자녀의 존경을 얻은 분이다.
내가 말하는 기성세대라는 막연한 단어는 사실 '나의 아버지 세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자 노력하는 분들의 동기도 대부분 '내 자녀의 생각이 궁금해서' '우리 아이 또래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어서'인 경우가 많았다.
세대 간 소통이라는 거창한 사회문제도 그 시작은 개인의 삶에서 느끼는 작은 어려움인 것이다. 이런 긴 호흡의 글을 써내는 동력도 나의 부모를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하고자 발버둥 쳤던 개인적인 노력들이 바탕이 되었다.
28살에 우울증을 호소하여 가족 모두가 상담을 받기 전까지 부모님은 늘 내가 유약하다고 생각하셨고 나 또한 그리 생각했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 거리의 시위대에서 목소리를 높인 어머니와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의 설움을 극복해낸 아버지를 보면 실제로 내가 너무 나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울증 치료를 통해 부모님께서 내가 말하지 않은 이야기를 알게 되고 가족들이 서로 더 마음을 열고 소통하면서 마침내 서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힘들고 고된 시간이었으나 분명 가치 있는 결과를 얻었다. 그렇게 부모님과 소통하면서 마침내 정서적으로 독립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할 힘을 얻었다.
세대 간 소통을 주제로 삼은 것은 결국 이런 배경이 있다. 내가 부모님을 이해하고 부모님이 나를 이해함으로 얻은 감동을 나에서 사회로 확장하려는 시도이다.
한 사람의 정체성이란 본인의 기질, 가정환경뿐만 아니라 사회적 배경이 복잡하게 얽혀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 안에서 어느 부분이 사회의 영향이고 어느 부분이 부모의 영향이며 어느 부분이 온전한 나의 개성인지 선명하게 구분하기 힘들다. 우리의 의식이 여러 환경, 시대, 육체를 전전하며 살아보지 않는 한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아버지로 대표하는 기성세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성장했던 사회적 배경을 필수적으로 이해해야 했다. 마찬가지로 기성세대들이 젊은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성장해온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전에 업로드한 4번째 글은 그러한 사회적 배경에 대한 나름의 분석을 담고 있다. 그럼 2030 세대들의 이야기를 들었으니 공평하게 기성세대의 이야기도 들어봄직하다.
1991년 나의 아버지 26세, 어머니 24세에 결혼하실 당시 혼인연령 평균은 남자 28.0세 여자 24.8세였다.
참고한 그래프만 봐도 1990년부터 2017년까지 평균 초혼연령은 꾸준히 늦어지고 있고 20대 후반에 결혼하는 혼인건수도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2020년 혼인연령은 남자 33.2세 여자 30.8세까지 뛰어올랐다.
현 2030 세대가 결혼을 기피하는 데는 출산 부담, 집값, 실업 등의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담론이 너무 확장될 거라 생각하여 거기까지는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결혼이라는 것이 개인의 태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해보려 한다.
1991년 26살에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가장이 되면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바로 생계를 위해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며 그 뒤로는 가족을 먹여 살린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진다. 1991년에 남들보다 조금 이른 결혼을 하신 나의 아버지는 취업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 고생하던 차에 할머니께서 다니시던 절에서 108배까지 하고서야 겨우 취업에 성공하셨다. 그 뒤로는 꾸준히 한 회사를 다니셨고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회사에 충성한 만큼 보상을 받은 사람'이다.
아버지의 회사는 대단히 마초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입사 초기부터 잦은 술자리에 불려 다녔고, 주말에는 야유회나 등산대회, 봉사활동 등의 명목으로 직원들을 부른다. 아버지는 임원이 된 지금도 그런 자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시는 것으로 '회사에 대한 충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규직 직원들은 모두 남성이고 여직원들은 파견 계약직만 뽑는다. 출근 시간은 8시라도 임원이 7시 30분에 출근하면 사원들은 7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올해 56세인 아버지는 오랜 회사생활로 얻은 노련함과 풍채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이 있다. 그 앞에서 24살, 25살의 신입사원들은 빠짝 긴장하고 아버지도 그런 햇병아리 같은 신입사원들이 불편하시다고 한다.
아버지 또래인 임원들은 요즘 신입사원들을 이렇게 평가한다.
대체 일을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왜들 이렇게 징징대고 나약하고 책임감도 없어서 3년을 채 버티지도 못하는 거냐며 의아해하신다. 회사 내에서 멘토링 명목으로 신입사원과 임원 면담을 시행해도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다. 여기가 아니라 어딜 가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거라며 조금 더 일을 배우고 이직을 고민하라는 조언에도 입사 3년차가 되기 전 그만두는 직원들이 많다고 한다.
물론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이유는 같은 나이의 아버지는 그런 회사를 견디며 가정에 대한 책임감으로 일해 오셨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어린 나이에도 지켜야 할 가정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떠나올 때의 마음가짐이 다르다. 갖은 어려움에도 집에서 기다릴 아내와 딸을 생각하면 조금 더 버텨야 하는 것이다.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는 책임을 안고 산다.
2016년 26살의 나는 어땠는가? 마찬가지로 졸업반이었으나 유학 준비를 하면서 어학공부와 서류 준비, 졸업작품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결혼보다는 나의 꿈을 선택하였고 주변에 결혼을 꿈꾸는 친구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버지의 지원으로 독일까지 유학을 간 나는 28살에 거기서 우울증을 안고 돌아왔다. 어렵게 준비했으나 포기는 빨랐다. 그 뒤로 29살까지 우울증으로 고민하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삶에 대한 고민과 방황을 했으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나에게 책임져야 할 대상이 없었다는 것이다.
31살까지도 먹고사는 일에 조급함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직 현역인 부모님이 든든하게 받쳐주고 내가 부양해야 할 가족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크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운이 좋은 편에 속하고 안전한 가정의 울타리에서 보호받았다고 인정한다.
안타까운 점은 같은 세대의 친구들이 모두 나처럼 가족의 지원을 받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일찍 생계를 꾸리며 양 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려야 하는 또래도 있었고,
아버지께서 일을 하다 장애를 얻은 후 국가에서 지원하는 장학금으로 학업을 마친 친구도 있다.
어린 시절 가난과 아버지의 빚으로 20대 초반부터 많은 빚을 안고 시작하는 친구도 있고,
부유한 가정이지만 정서적으로 가족들과 사이가 나빠져 일찍 독립한 친구들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현재의 20대 30대들은 우리 세대 안에서도 각자 살아가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무엇하나 비슷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29살, 아버지는 직장에서 대리로 승진했고
29살, 어머니는 두 아이를 낳았으며
29살, 나는 우울증에 칩거했다.
시대와 각자의 상황에 따라 같은 나이의 사람에게 서로 다른 무게가 지워진 것이다. 1991년과 2016년 불과 25년 사이에 변한 사회구조는 개인의 삶의 태도까지 다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