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간 소통에 대한 '나'와 '우리'의 생각]
① 애늙은이 같은 아이
② 내가 그들에게 실망한 이유
③ 운명의 수레바퀴와 삶의 지혜
앞선 글 3편에서 나의 이야기를 했다면 이제는 '우리'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세대 간의 소통에 가장 큰 장벽은 서로의 삶을 알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나의 친구들 뿐만 아니라 카카오 '음'에서도 2030이 제일 힘든 세대인가에 대한 주제로 토론방이 열린 적이 있었다.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그들의 대화를 경청만 하면서 깊은 고민을 했다.
정말 지금의 20대 30대는 힘들게 살아가는 걸까?
그렇다면 우리는 왜 힘들다고 느끼는 것일까?
이전 세대는 나름대로 어려운 점이 있었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 IMF 이전에도 지금보다 풍요롭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증언도 있다. 직장이나 학교에서의 가혹행위도 더 심했고 주 6일 근무하는 환경도 말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K-장녀라는 단어에는 자기 세대에는 정말 학교도 못 다니고 공장에서 미싱 돌리는 딸들의 이야기를 해준 분도 있었다. 그건 분명 사실이다. 그때는 정말로 지금보다 불합리한 일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를 살아온 어른들의 눈에는 지금처럼 풍요롭고 기회가 많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왜 이렇게 시간과 젊음을 낭비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혹은 왜 20대들이 좌절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듣고 싶은 어른들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왜 2030들이 방황하고 힘들어하는지 그 이유를 정리해봤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구조
많은 젊은이들이 금수저, 흙수저라고 자조하면서 사회초년생부터 이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불공정의 이유가 성별에 의한 건지, 부모의 사회적 지위에 의한 건지, 교육 혜택에 대한 건지에 따라 담론이 달라질 뿐이다. 공정과 공평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치열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과 능력주의가 당연하다는 의견이 돌아올 때도 있기 때문에 공정과 공평에 대해 명확한 구분부터 해보자.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의 강연에서 공정과 공평에 대한 정의, 예시, 쓰임새를 알 수 있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5명의 아이들과 5개의 빵이 있을 때, 공평은 모두 1개의 빵을 가지는 것이고 공정은 더 많이 일한 사람에게 빵을 더 주는 것이다.
공정 : 능력과 성과에 따른 배분
공평 : 산술적인 의미에서 배분
덧붙여 우리가 협동을 하는 일에서는 공평한 배분이 전제되어야 하고 선의의 경쟁을 위해서는 공정한 조건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공정한 조건이란 공동체의 구성원이 모두 합의하고 있는 공정한 규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것은 5명의 아이들 모두가 더 많이 일한 아이가 더 많은 빵을 받는 규칙에 대한 이해와 합의가 전제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주의는 더 능력 있고 더 많이 일한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가져가는 것이 마땅한 원칙이다. 그러나 애초에 시작부터 너무 다른 출발선에서 개인의 능력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을 때는 어떻게 공정한 조건을 만들 수 있는 것일까?
부모, 지역, 성별, 환경 등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는 조건들로 한 사람의 한계가 정해진다면, 개인의 노력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 영역과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영역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20대 초반에 내가 느낀 좌절은 그런 것이다. 왜 내가 아버지의 지위와 재력에 의해 평가받아야 하는 건지, 왜 사회에 첫발을 디딘 순간부터 불평등을 느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 아버지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잘 알기에 그런 불만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아버지께 불효하는 것 같은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30대가 된 지금은 태생적 한계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기를 다짐했으나 다음 세대는 조금 더 공정한 환경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펼칠 수 있길 바란다.
■풍요 속의 빈곤, 상대적 박탈감
경제가 성장해서 파이가 커진다고 해도 내 몫이 늘어나진 않는다. 더군다나 SNS가 발달하여 타인의 삶을 엿보기 쉬워진 2030들은 수많은 상품과 선택지들 속에서 불안한 자유를 느낀다.
어머니가 자주 보시는 탈북자 방송에는 이런 유머가 있다. 북한에서 "오늘 뭐 먹지?"라는 고민은 대체 뭘 먹어서 입에 풀칠이나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지만, 남한에서 생활이 안정된 후에 "오늘 뭐 먹지?"라는 고민은 수많은 맛있는 음식들 중에 무엇을 먹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된다는 것이다. 탈북자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죽을 고비를 넘어 남한에 와서도 "오늘 뭐 먹지?"라고 고민한다며 한바탕 웃었다. 그러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모두 경험한 그들의 농담이 많은 선택지 속에서도 만족할 수 없는 심리를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오히려 선택에 대한 불안감을 높이고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기회비용을 걱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단순히 행복도만 비교하면 무한한 선택지 보다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지를 좁혀주는 것이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참고: 키에르케고르의 불안의 개념)
다들 비슷하게 살았던 시대에는 고만고만하게 살면서 크게 상대적으로 내가 못 산다는 비교의식이 없는데 빈부격차가 심한 사회에서는 상대적인 격차도 커진다. 나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분별력을 가지기 이전에는 타인의 욕망에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지금이 더 많은 박탈감과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많은 선택지 중에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는 불안감. 타인의 삶을 쉽게 관찰하면서 느껴지는 상대적 박탈감. 늘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아쉬워하면서 손에 쥔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심리. 풍요로운 환경에서도 늘 심리적 빈곤을 느끼는 이유이다.
■자아실현이라는 추상적인 목표
먹고 산다는 문제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목표지만 자아실현이라는 목표는 추상적이고 막연하다. 우선 '자아'라는 형체 없는 개념에 대한 이해도 해야 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자아라는 단어가 어렵다면 '내가 대체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이라고 하면 좀 더 현실적일까?
나는 뭘 잘하고, 뭘 좋아하고, 무슨 일이 적성에 잘 맞으며, 어떤 환경에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일해서 돈을 벌고 가족들을 먹여 살린다는 문제보다 훨씬 추상적이고 복잡하다. 메슬로우의 욕구 피라미드를 참고하면 한국 전쟁 이후 짧은 시간 동안 사회 구성원들의 주요 욕구가 빠르게 상위로 옮겨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전쟁을 겪은 70대 80대들은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에 집중하고 50대 60대는 안전과 소속감 추구의 욕구에 집중하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반면에 지금 10대, 20대와 30대의 주요 이슈는 자존감, 성취감, 개인의 자아실현, 성장과 잠재력 달성 등에 집중되어 있다.
즉, 현세대의 2030들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 초점이 가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근본적인 욕구가 다른 세대가 한 공간에서 북적이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해 보인다.
출처 https://blog.daum.net/goog_news/1815■각자 다른 방향성
균질적인 사회 즉, 졸업해서 취업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이 모든 인생의 단계들이 정해진 사회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서로 비슷한 삶을 살아왔기에 공감대 형성도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이고 각자의 삶을 사는 현대의 2030들은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기에 사실 우리 세대 안에서도 공감대 형성이 쉽지 않다.
이렇게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경우에는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온 인생 선배를 찾기 힘들다. 롤모델이나 멘토가 될 사람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최근에 생긴 직업들 유튜브 크리에이터나 앱 개발자, 드론 전문가 등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나가는 사람들은 나이 많은 세대들에게 얻을 수 있는 실제적인 조언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새로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분야를 잘 모르는 어르신들의 조언이 주제넘은 훈수나 꼰대의 잔소리로 들릴 수밖에 없다.
예전에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프로그램에서 25살 유튜브 PD를 대하는 현주엽 선수의 태도가 시청자들의 강한 반감을 산 적이 있다. 유튜브 분야에서는 현주엽 선수가 명백히 초보임에도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젊은 PD를 나이로 무시하는 것이 문제였다. 새로운 분야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키운 사람이라면 나이가 젊다고 해도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다.
2030들이 직장생활에서 기성세대와 가장 소통이 안 된다고 느끼는 지점이 이런 부분이 아닐까 싶다.
■전통적인 공동체의 붕괴
전통적인 가족 공동체가 붕괴된다는 것은 젊은 이들이 실패했을 때 보호받거나 안전망이 되어줄 공동체의 지원이 사라졌다는 의미이다. 도전에 대한 리스크와 사회적인 위기에 대해서 국가적으로 금전적 지원이나 사회적 공동체의 지원이 필요하다.
링크한 다큐멘터리는 코로나 사태로 사회적 지원이 끊어진 프랑스 젊은이들이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힘들어진 상황을 보여준다. 대안으로 지역사회에서 식료품을 지원해주고 일자리를 연결해주는 앱이 등장했는데 여기서 요지는 가족이 아니어도 지역 공동체 차원에서 청년들에게 현실적인 지원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카카오 '음'에서 대화를 나눈 중년의 남성분은 코로나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 양말이라도 팔러 나온 대학생에게 깊은 안타까움을 느꼈다는 말을 전했다. 열심히 살아보려는 젊은이가 기특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지 돕고 싶다는 진심 어린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청년 고독사의 비율이 늘어가고 있는데 국가의 지원은 너무 멀기 때문에 이런 지역사회 공동체에서 소통과 지원이 이뤄질 수 있다면 세대 간의 소통과 청년들의 자립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을까?
■급변하는 사회
2030 세대도 지금의 급격한 변화가 당황스럽다. 기술의 발전은 물론 의식의 변화, 사회구조의 변화의 속도가 빠른 것이다. 2년 전만 해도 펜데믹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어느 날 찾아온 바이러스가 우리가 사는 사회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30대 초반인 나도 나날이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두려움이 있다. 지금의 20대와 10대들의 세상도 내가 살았던 환경과 너무 다르기에 되려 그들에게 배워야 할 것이 늘어가는 것이다. 최근에야 플랫폼, 메타버스, nft라는 단어를 이해했고 비트코인이 처음 나왔을 때는 저게 왜 난리인지 어리둥절하기까지 했다.
이런 기술들의 특징은 기술에 대한 이해 이전에 새로운 개념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돈에 대한 새로운 개념, 자아에 대한 새로운 개념, 소통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이해해야 이런 기술들을 이용하고 세상의 발전에 발맞춰 갈 수 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집요하고 분석적인 성격 탓에 세대 간의 소통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생각이 계속 뻗어나가서 글이 길어졌다. 처음 3편은 나의 이야기, 다음은 우리의 이야기로 확장하여 세대 간의 소통에 대한 실제적인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한다.
이런 재미없고 진지한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정말 감사하다.
왜 이렇게까지 글을 쓰는지 생각해봤는데 깊은 내면에서 남자와 여자나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등 서로 다른 개인이나 집단 간의 소통에 대해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지금 당장은 쓸모가 없더라도 인터넷이라는 바다에 이 글을 유리병에 담아 띄워 보내면 언제 어디서 나비효과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희망이 있다.
그리고 당장의 돈벌이는 안 되지만 자신이 관심 있는 일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도 우리 부모세대가 이해할 수 없는 '요즘 애들'의 특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