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간 소통에 대한 '나'와 '우리'의 생각-③
[세대 간 소통에 대한 '나'와 '우리'의 생각]
지독했던 스물아홉 살을 보내고 서른한 살, 괴로운 시간들이 지난 후에 다시 내 인생의 궤도로 돌아오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동안 문득 깨달았던 것이 '어른들 말 틀린 게 하나도 없었네!'라는 것이다.
일찍이 나의 반골 기질을 알아봤던 중학교 선생님은 늘 나에게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해주셨다. 너의 이상을 실현하려면 너와 뜻이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하고, 네 손에 힘이 생길 때까지 굽힐 수도 있어야 한다고 당부하셨지만 그때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권력이나 명령에 따르지 않고 반항하는 기질은 아버지와의 강한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다. 아버지는 뉴스를 볼 때마다 분통을 터뜨리는 나를 보며 "우리 딸 나중에 운동권 되는 거 아니냐?"라고 걱정하셨다. 함께 등산을 할때 아버지께서는 처음에 의욕이 앞서 금세 지쳐버리는 내 습관을 간파하셨다. 뭐든지 천천히 끝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말해주셨지만 그게 내 인생에 대한 조언인지는 몰랐다.
재수할 때 만났던 미술학원 선생님은 내가 꿈과 이상이 커서 그만큼 좌절을 많이 겪을 거라는 것도 예상하셨다.
중간에 포기하지 마라. 마지막까지 버티는 사람이 강한 것이다.
네가 용의 꼬리로는 만족 못하고 뱀의 머리라도 되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언젠가 뱀의 머리와 용의 머리가 만날 날을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우화였다.
타인과의 소통, 침착함, 인내 같은 나의 치명적인 단점들을 미리 아시고 조언을 준 어른들이 많았지만 그때는 그 말이 귀에 안 들어왔다. 그리고 깊이 좌절해 과거를 곱씹을 때가 와서야 '아, 그 말이 이런 뜻이었구나'를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늘 이상과 꿈을 꾸며 사는 나 같은 사람은 별을 보면서 앞으로 나아가느라 당장 눈앞에 돌부리에도 쉽게 걸려 넘어진다.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눈앞의 장애물에 쉽게 좌절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지나치게 고집스러운 내가 어른들의 진심 어린 조언을 꼰대의 잔소리로 치부했다는 것을 깨닫고서야 다른 사람의 말에 귀가 열리기 시작했다.
반항적인 성향이 위험하다고 평가받은 건 사회라는 견고한 구조와 미약한 개인이 맞붙었을 때 결국 깨지는 건 개인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들이받아도 다치고 깨지는 건 내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나를 아끼는 어른들이 이런 성향을 억누르려고 한 것이다. 평가할 자격이 있는 교수와 평가받는 학생 사이에서 권력은 마땅히 교수에게 기울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교수에게 대드는 것은 나의 이익에 맞지 않는 것이지. 어쨌든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얻을 때까지는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없고 자신이 가진 재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안에 머무르는 것이 좋다. 나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들을 갈망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지치게 만든다. 평범한 부모님의 딸이 아니라 부잣집 고명딸로 태어나고 싶었어도 이미 태어난 걸 어쩌겠어. 부모님을 부정하면 결국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나의 유전자는 모조리 부모님에게 받은 것이니 부모와 화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지 않고 타인과 어울려 사는 기쁨을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인간은 결국 사회적 동물이라 아무리 각자의 길이 있다고 해도 멀리서 보면 함께 북적이며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인연들을 감사하게 여기고 그들과 다정한 우정을 나누는 시간이 우리의 내면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결국에는 어른들이 해준 말이 다 옳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선생님도 아버지도 젊은 날의 혈기에 모두 한 번씩은 나와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도 젊은 날이 있었고 현실을 잘 몰랐고 꿈을 먹고살던 시절이 있었겠지. 그러나 막상 인생을 살아보니 젊음은 한순간이고 현실은 냉혹하며 꿈은 배를 불리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런 현실이 처량하게 느껴진 순간마저 지나고 이 모든 게 인생의 한 흐름이라는 것을 받아들인 후에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은 것이다. 적어도 살아보니 "그쪽으로 가면 위험하다."는 걸 알려주는 정도로는 도움을 주고 싶은 거지.
타로카드에는 운명의 수레바퀴라는 카드가 있다. 계절의 순환, 카르마(업보), 윤회, 전환점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카드에서 굴러가는 수레바퀴를 보면 인간의 삶이란 이런 큰 흐름 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승하면 하강하고 영광의 뒤에 몰락이 따르고, 젊은이는 늙어가고 언젠가는 죽음이 오지만 우리의 영혼은 다시 태어날 것이며, 모든 것은 돌고 돌아서 제자리를 찾는다는 것.
인생이란 수레의 한 바퀴를 거의 돌아본 사람에게는 그 흐름이 눈에 보이는 것이고
이제 막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젊은 이들에게는 아직 저 흐름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10대의 나도 참 고되고 힘들었지만 30대의 지금은 그때의 고민이 가볍게 느껴진다. 친구와 싸워서 울고 진로가 막막하고 공부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좌절하던 때도 먹고사는 일을 견디는 지금보다는 가볍게 느껴진다. 지금 아등바등하며 사는 나의 고민도 아마 50대의 아버지나 60대의 선생님에게는 가벼운 고민이 되겠지.
그렇게 고민을 한 발짝 뒤에서 가볍게 볼 때에 현명한 해결책이 보인다. 고민에 빠져있고 지금 당장 괴로움에 허덕이는 사람에게는 눈앞의 열쇠가 보이지 않는 법이지. 그것을 깨달은 뒤로는 어른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에게 삶의 지혜를 구하고 있다. 놀랍게도 내가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 그들은 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답을 쏟아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