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들에게 실망한 이유

세대 간 소통에 대한 '나'와 '우리'의 생각-②

by 구름조각

[세대 간 소통에 대한 '나'와 '우리'의 생각]

① 애늙은이 같은 아이



■열아홉, 그들은 부패했다.

이미 다니던 고등학교의 급식문제에 실망했지만 정작 가장 큰 사건은 10대의 마지막에 생겼다. 갑자기 미대 진학을 준비하면서 야자 대신 실기학원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멀어졌고 다 같이 모여서 공부하는 동안 생겼던 문제는 다음날에나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하루는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전교회장이라는 직책이야 있었지만 새롭게 전교 부회장이라는 자리가 생겼다고 했다. 우리 반에 리더십 많고 교우관계가 좋던 친구는 전교 부회장에 출마하려고 지원했다가 선생님과 면담을 하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내정자가 있으니 너는 출마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그 내정자라는 친구는 서울 소재 대학에 '리더십 전형' 전형으로 지원하고자 학부모와 학생주임의 지원으로 있지도 않던 전교 부회장이라는 직책에 선거도 없이 당선될 예정이었다. 아무도 지원하는 사람이 없어야 자연스럽고 간편하게 전교 부회장에 오를 텐데 다른 지원자라도 있으면 실제 선거도 치러야 하고, 투표 조작도 해야 하니 아주 번거로웠겠지. 그래서 그 친구를 따로 불러 포기를 종용한 것이다.


야자시간에 그 친구의 말을 들으며 모두 함께 울었다고 했다. 그 얘기를 전해 들었을 때 내 감정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부당함, 억울함, 그 모든 판을 짜는 어른들에 대한 역겨움, 박탈감 그리고 깊은 좌절감. 일찍이 학교 급식 문제를 다루는 선생님들도 너무나 실망스러웠으나 이렇게 한 학생의 날개까지 꺾어버릴 정도로 부패한지는 몰랐다.


가슴에 불이 붙어서 그냥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교육청에 민원을 넣어 교내 비리에 대해 진상조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다음날 학교가 발칵 뒤집어졌다. 난 교육청에서 감사가 나와서 소란스러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내부고발자를 찾기 위해 난장판이 된 거였다. 정식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누가 민원을 넣었다는 게 이사장 귀에 들어간 모양이지. 교감이 학생들을 불러 추궁했고 주로 모범생 라인에 들지 않는 아이들이 타깃이 되었다.


같은 반 친구 중에 내가 민원을 넣었다는 걸 눈치챈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내가 한 게 맞냐고 물었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들은 너 인걸 모르는 눈치니 조용히 있자고 말했고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하고만 있었다.


경솔하고 순진하고 어리석은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다른 친구들이 피해를 보고 있었지만, 선뜻 내가 고발자라고 나서기엔 너무 무서웠다. 그 일은 지금까지 나에게 죄책감으로 남아있다. 디테일한 정황을 썼으니 이 글을 보는 사람 중에 당시 피해를 봤던 학생들이 있을 수 있고, 나를 기억한다면 그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내 잘못인데 그때 비겁하게 숨어서 미안해."


열흘 후에 교육청에서 편지가 왔다. 조사 결과 딱히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짧은 한 줄. 거짓말쟁이들. 한 번도 조사 같은 건 한적 없으면서, 미리 알려줘서 고발자 색출이나 하게 만들었으면서, 다 썩어빠진 어른들.


졸업앨범을 사지 않았다. 담임은 몇 번이나 정말 졸업앨범을 안 살 거냐고 물어봤고 그때마다 필요 없다고 대답했다.


"너 후회하지 마라."

"후회 안 해요."


저는 졸업앨범을 사지 않은 게 아니라 이 학교 출신이라는 걸 두고두고 후회할 겁니다.


■스물아홉, 먹고사는 치욕

자영업은 너무 힘들다. 잘 되면 몸이 힘들고 안 되면 마음이 힘들다. 열심히 일해도 가게 월세, 인건비, 재료비를 충당하면 남는 게 없다.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자기 노동시간까지 계산에 넣으면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29살 결국 가게를 정리하고 급한 김에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가족경영 회사인데 처음 면접을 봤을 때 안 좋은 촉이 느껴졌지만 다른 곳에서는 연락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입사했다.


6개월 동안 일했다. 달에 150만 원 받았고 월차는 한 번도 못 썼다. 근로계약서도 썼는데 왜 월차를 못 썼냐면 고용주가 명절 연휴에 직원들이 월차를 쓴 걸로 신고했기 때문이다. 서서 움직일 일이 많았는데 일을 그만둘 때는 만성 족저근막염에 정강이뼈 근육까지 염증이 번져 매일 절뚝거리다 치료를 위해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별의별 일이 많았다. 가끔 아침 일찍 출근하면 머리가 하얀 사장이 나한테 볼에 뽀뽀해보라는 말을 했다. 정색하고 "제가 왜요?"라고 말하니 "너는 집에서 아빠한테 뽀뽀도 안 하니?" 이딴 말이나 들었다. "사장님은 우리 아빠 아니잖아요." 마침 다른 사람이 출근했기에 망정이지 그 순간에 벌컥 화가 나서 사장 뺨을 때릴 뻔했다. 아니, 그때 뺨을 때렸어야 했나? 아직도 답을 모르겠다. 성희롱이 일상이라 무뎌져 버렸다. 어느 날은 "너는 가슴 큰 게 예쁜데 가슴살 빠지니까 다이어트하면 안 된다." 말을 들었는데 슬펐던 건 그런 말을 듣고도 아무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무 지쳐서 화를 내거나 최소한 나를 지킬 힘도 없고 그냥 '내가 왜 돈 벌러 와서 저런 말을 들어야 하나?'이런 생각만 들었다.


월차를 못 쓸 때 무슨 일이 일어나냐면 자식 졸업식에도 못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일해온 여직원이 딸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가고 싶다고 부탁을 했다. 졸업식날 아침에 출근해서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가길래 '사장과 이야기가 잘 돼서 딸애 졸업식에 가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날 분명 그렇게 많이 바쁘지도 않았다.

"오늘 많이 바쁘지 않으니 신경 쓰지 마시고 가족들이랑 좋은 추억 보내세요."

이모뻘의 직원에게 문자를 보낸 너무 오지랖을 부린 걸 수도 있다. 이상하게 그 문자를 보내고 얼마 뒤에 뭔가 서류 작업이 꼬였는지 사장이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저 사람이 미쳤나 싶을 정도? 눈에 광기가 보일 정도로 소리를 지르면서 한다는 말이 자기가 눈치껏 보내줬으면 직원이 알아서 일찍 왔어야 한다는 것이다.


졸업식에 얼굴만 비추고 끝나고 아이들이랑 점심 한 끼 먹을 시간도 없이, 그래도 졸업식에 얼굴이라도 비추게 허락해준 자신에게 감사하며 회사로 돌아왔어야 책임감 있는 직원이라는 뜻이다.


자기도 자식들 졸업식에 한 번도 안 갔는데 졸업식이 뭐가 중요하다고 회사를 빠지냐며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따지는 모습에 질렸다. 이날 굳게 퇴사 결심을 했다. 이 미친 환경에서는 더 눌러앉고 싶지 않다.


일 자체는 재밌었고 같이 일하던 동료들과도 문제없었고 나는 정말 성실하게 일했다. 졸업식에 갔던 그 직원도 그렇게 자기 일을 조용히 성실하게 하는 보통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노예 취급을 받고 얼마든지 갈아 끼울 수 있는 나사처럼 대우받는 건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괴로웠다.


당시에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주 6일 출근에 매일같이 야근을 하다 번아웃이 와서 퇴사한 시점이었다. 그 친구도 야근 수당은 다 못 받아서 시간당으로 치면 최저시급도 안 될 거라며 자조했다. 우리는 가끔 소주를 마시면서 과연 우리가 집이라도 살 수 있을까, 나중에는 정말 길바닥에 나앉는 게 아닐까 걱정했다. 술이 달다는 말이 인생이 더 씁쓸하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사는 게 막막해서 눈물이 난다.


눈물은 짜고 술은 달고 인생은 쓰다.

이게 어른의 삼합(三合)인가 봐.


삼수, 사수라도 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갔어야 했나? 대학교 8학기 동안 7번 장학금을 받았는데, 장학금 너무 많이 받는 애들은 집에 돈이 없어서 공부에 매달린다는 말을 들었다. 돈 많은 집 애들은 장학금 받는 대신 사회 경험하고 해외여행 간다더라. 그들에게 밀려나지 않으려 악착같이 공부하면서 영어도 독일어도 공부했고 짬짬이 공모전도 나갔다. 여름 방학 내내 학교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모든 게 의미 없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내 친구는 아버지가 두 자매의 사립대 등록금과 집세와 용돈을 보내느라 등골이 휘고 언젠가 자식들에게 그걸 갚으라고 할까 봐 무섭다고 했다. 그 친구는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했지만 얼마 전 코로나로 회사가 없어졌다.


다른 친구도 꼭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갈 거라며 재수까지 해서 서울에 갔지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첫 인턴을 하던 곳에서 직장 내 괴롭힘에 트라우마까지 얻어 심리치료를 받다가 어쩔 수 없이 안정적인 공무원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청년실업이 어쩌고 하는 뉴스에 댓글을 보면 요즘애들은 나약하고, 일하려면 어디라도 일할 수 있고, 이도 저도 안되면 공장이라고 가라는 댓글을 볼 때가 있다. 그렇구먼. 모든 건 내가 나약하고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구나.


그러면 진작 말해주지 그랬어.


큰 꿈을 꾸면 큰 좌절을 겪는다는 것을.

자아실현이니, 인생의 목적이니 하는 단어는 들어보지도 못하게 해 주지 그랬어.

내가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 아니라 언제든지 사회의 부품처럼 살다가 교체될 수 있다고 말해주지.


그럼 아무 기대도 없이 꾸역꾸역 살았을 텐데.

가진 꿈에 비해 세상은 너무 냉정하고 가혹하고 벽이 높다.

그들이 말하는 나약한 요즘 애들은 이렇게 산다. 과장 없이 보탬 없이 이렇게 산다고만 이야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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