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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Jul 08. 2021

삼겹살 수육과 돈육면, 아버지

아휴... 효도하기 힘드네

어제 아버지께서 저런 메시지를 보내셨어요.


"오늘 홍어 도착할 것 같은데..."


"그런데?"


"수육이 있어야 되는데...


    어쩌라는 걸까요? 저는 홍어 안 먹거든요. 근데 딸내미가 해준 수육은 먹고 싶고, 뭐 그런가 봐요. 비 와서 창문 활짝 열고 환기도 못하는데 꼭 이런 날 눈치 없이 홍어를 주문한 아버지를 보면 잔소리가 목 끝까지 차오릅니다. 그놈의 홍어 매번 사 올 때마다 어머니께 잔소리 듣고 결국에는 아들이랑 눈치 보면서 먹을 거면서 1년에 3~4번씩은 꼭 홍어를 찾으시네요.


    해놓으라고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아련하게 메시지를 남겨놓으시니 뭐라고 도 못 하겠고 결국 수육 해드리기로 했어요. 아휴, 저 같은 효녀가 어디 있습니까!?


    통 크게 삼겹살 1.3kg 샀어요. 4등분으로 나눠서 수육 해두면 홍어 삼합으로 먹고도 많이 남겠죠. 물을 받아서 된장 크게 1 숟갈, 소주 쪼르륵 붓고, 계피 한쪽에 월계수 잎, 통후추를 넣었어요. 대파 파란 부분 뚝뚝 꺾어 넣고 양파 반개 턱 넣고 육수부터 끓였어요. 여기 생강이랑 마늘도 넣어주면 좋아요.


    육수가 한 소금 끊으면 고기를 넣고 끓입니다. 팔팔 끓어오르면 중불로 줄여 40분을 익혀주고 젓가락으로 고기를 찔러 쏙 들어가면 불을 끄고 국물 속에서 천천히 식혀주세요. 여열로 고기가 부드러워지기도 하고 식으면서 육수의 맛이 고기에 배어 들거든요.


    홍어 냄새가 싫어서 방으로 피해있고 동생과 아버지는 홍어삼합에 막걸리 배 터지게 먹은 모양입니다. 수육 재료나 썰어 놓은 사진을 좀 찍어 놨어야 했는데 또 잊어버렸어요. 이상하게 요리를 시작하면 빨리 해서 뜨끈할 때 먹어야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 중간 단계 사진을 자꾸 깜박하더라고요. 친구가 푸드 에세이라면서 글만 많고 요리 사진은 한 장만 있는 게 아쉽다고 피드백을 줬는데, 저도 동의하면서 자꾸 잊어버리는 게 큰 문제입니다.


    어쨌든 수육이 쫄깃하고 부드럽게, 잡내도 없이 잘 익었어요. 여기에 묵은지만 얹어 먹어도 참 맛있겠는데, 아니면 쌈배추에 쌈장 얹어 먹으면 딱 좋겠구만. 홍어 냄새에 도망쳐 있느라 저는 밥위에 수육을 얹어 덮밥처럼 먹었어요.


    다음날 남은 육수와 삼겹살 수육을 보면서 요걸로 장칼국수를 끓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육수 끓일 때 된장도 한 숟갈 넣었으니 고추장 좀 넣고 칼칼한 장칼국수 끓이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육수가 식으면 기름이 뜨니까 그대로 체에 걸러서 국물만 끓여줍니다. 여기에 고추장 2큰술, 된장 한 큰 술, 새우젓 한 숟갈 넣어서 짭짤하게 간을 맞춰주세요. 면도 들어갈 거고 채소도 듬뿍 넣을 거니까 짜게 간 맞추고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육수에 면넣고 바로 채소 넣어서 같이 끓여줍니다. 채소는 팽이버섯 조금, 표고버섯 두개, 애호박 반개, 부추 한 줌, 대파 한 줌 넣었어요. 다진 마늘 한 스푼 크게 떠서 넣고 간을 봅니다. 짜면 물 보충, 싱거우면 새우젓 조금. 한소끔 끓는 동안 청양고추 한개 채 썰어 넣고요, 깻잎도 조금 가늘게 채 썰어서 고명으로 쓰려고요. 남은 삼겹살 수육도 얇게 썰어서 차곡차곡 면 위에 올려줄 거예요.


    장칼국수를 모르는 분이 계실까요? 이 장칼국수의 맛을 설명하자면 꾸덕, 칼칼, 녹진, 묵직한 맛에 각종 채소와 고기와 면이 풍성하게 씹히는 든든한 맛입니다. 한입 먹으면 저절로 소주가 생각나요. 기름진 국물에 국수의 전분이 녹아서 녹진한 맛이 입안에 맴돌 때 소주 한잔을 탁 털어 넣으면 개운하게 입 안을 씻어주는 느낌이에요. 절반쯤 먹다 보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얼큰하고 뜨끈한 음식이죠. 흐린 날 기운 쳐져 있던 제 입맛에는 정말 잘 맞더라고요!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국물이 시원하지 않다, 면이 너무 불었다, 국물 맛이 뭔가 이상하다고 투덜투덜 대시네요. 제가 조용히 째려보니까 그제서야 중국에서 먹은 우육면 맛이 난다며 애써 수습하려 하시는데...

흥칫뿡이에요. 어제는 아버지 마음대로 홍어 먹었으니 오늘은 제 취향대로 장칼국수를 끓여 먹을 겁니다. 제입에는 맛만 좋던걸요?


    수육을 만들고 남은 국물도 고기의 맛이 잘 우러난 진국인데 그냥 버리기 아쉬워서 한번 머리를 써봤지요. 기름진 맛은 된장, 고추장으로 구수하고 매콤하게 잡고 가벼운 채소들을 가득 넣어서 끓여 먹으면 가끔 별미로 괜찮을 것 같아요. 저희 집은 경상도 집안이라 항상 멸치 육수를 써서 국수를 끓이지만 전국 팔도에 잘 찾아보면 고기 육수로 끓인 녹진한 국수가 있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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