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갔더니 재밌는 책이 한 권 있었어요. 『부산 어묵 이야기』라고 어묵의 스토리를 엮어낸 가벼운 책이었습니다. 윤영수 방송작가, 박상현 맛 칼럼니스트, 김정연 구술채록가가 지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구술채록가라는 직업이 뭘까요? 구술은 '입으로 말'하는 이야기를 의미하고채록은 '필요한 자료를 찾아 모아서 적거나 녹음함. 또는 그런 기록이나 녹음'이란 의미가 있으니, 요즘 저를 소개할 때 쓰는 '이야기 수집가'라는 말과 비슷한 뜻이네요. 사람들의 말과 이야기를 모아서 수집하는 사람이죠.
언제부터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지는 모르겠어요. 기억하기로는 어린 시절에도 젓가락을 보면 젓가락을 처음 발명한 사람이 누군지, 젓가락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뭔지 궁금했어요. 하늘의 별을 보아도 그 별의 밝기나 거리보다는 별자리에 얽힌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어요. 지금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묵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다면 어묵탕을 한 솥 끓여 소주 한잔을 곁들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이야기만큼 식탁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또 있을까요?
저는 어묵탕을 끓일 때 어묵을 통으로 넣어요. 넓적한 어묵이나 듬성듬성 잘라주지만 통통하고 길쭉한 어묵은 통째로 끓여서 앞니로 베어 먹는 게 맛있다고 생각해요. 뜨거워서 후후 불어먹는 즐거움이 더해져야 어묵탕의 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와 대파, 표고버섯, 청양고추를 꼭 넣어요. 시원하고 칼칼한 맛이 더해져야 맛이 더 좋더라고요.
물에 멸치와 뒤포리, 마른 새우를 넣어 국물을 우려내 줍니다. 청양고추도 한 개 넣고, 무도 한토막 잘라서 뭉근하게 육수를 우려 주세요. 비린내 사라지라고 미림도 쪼르륵 붓고, 국간장도 쪼르르 붓고, 감칠맛 나라고 요리 에센스와참치액을 쪼르르 붓고 팔팔 끓여줍니다. 어묵탕의 핵심은 국물이죠!
그사이 뜨거운 물에 어묵을 한 번씩 데쳤어요. 기름기 살짝 걷어내면 국물 맛이 깔끔하니 좋더라고요. 육수가 팔팔 끓으면 어묵과 대파, 표고버섯을 넣어 한소끔 끓여줍니다. 냉동실에 애매하게 남은 새우살도 좀 넣었어요. 저번엔 문어도 썰어 넣었는데 문어도 쫄깃하니 맛있더라고요. 마지막에 다진 마늘 크게 한 스푼 넣어주세요.
오늘의 어묵은 가운데 구멍이 뚫린 대롱 어묵, 문어 살이 씹히는 어묵, 조기살로 만든 어묵, 명태와 두부로 만든 어묵, 고추를 다져 넣은 어묵 등등 종류도 다양하게 넣었어요. 이것저것 건져 먹는 맛이 또 어묵탕의 즐거움 아니겠어요? 사이사이 국물이 짭짤하게 배어든 표고버섯과 달큼하게 익은 대파를 쏙쏙 골라먹는 것도 참 맛있어요.
어묵탕에 어울리는 술은 소주겠죠? 지난번에 담아둔 레몬청을 한 스푼 소주와 섞어 레몬소주를 한 컵 만들어 두었습니다. 취할 정도는 아니고 어묵에 곁들이는 정도로 딱 좋지 않나요? 살짝 기분이 들뜬 채로 『부산 어묵 이야기』를 읽어 보았습니다.
오홍... 어묵이 조선시대에는 생선숙편이라고 불렸대요? 고대 중국의 궁중음식이기도 해서 '위완'(생선 완자)이라고 불렀다는군요. 생선살을 으깨서 완자처럼 동그랗게 빚어 만든 음식인가 봐요. 이 요리법이 일본으로 건너가 으깬 생선살을 대나무 꼬챙이에 발라서 구워 먹은 음식이 '가마보코'(부들 꽃의 이삭)라고 합니다. 이 이름이 부들의 줄기 끝에 열매처럼 달렸다고 붙은 이름이래요.
아! 이거 핫도그처럼 생겼는데 베어 물면 꽃가루가 터진다고 유튜브의 화제 영상이 된 적이 있어요. 아니, 이렇게 또 만나다니? 이 야생 핫도그가 일본의 어묵 가마보코의 어원이랍니다. 현대의 가마보코는 분홍색, 흰색 꽃이 있는 찐 어묵을 말해요. 우동 한 그릇 시키면 장식처럼 올라오는 예쁜 어묵이죠.
중국의 위완은 피시볼 같은 음식이고, 일본의 가마보코와 한국의 생선숙편 등 모두 으깬 생선을 모양 잡아 익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죠. 오랜 시간 서로 전통에 영향을 주면서 음식문화가 발전해 가는 게 참 재밌네요.
한국의 1960년대까진 포장마차에서 파는 참새구이가 인기 메뉴였다고 해요. 수렵 금지조치로 참새구이가 빠진 자리에 어묵이 자리 잡아 서민대중음식이 되었네요.
예전에 중학교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신 적이 있어요. 집 근처에 어묵공장이 있었는데 기름에 튀긴 생선살 냄새가 너무 좋아서 동네 사람들이 어묵 공장 앞을 서성이다 갓 나온 어묵을 한 바구니씩 샀다고 해요. 마치 빵집에서 갓 나온 빵 냄새에 홀려가는 느낌이죠?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 갓 나온 어묵의 냄새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었겠죠.
저는 고등학생 시절 추운 겨울날 학원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시장에서 사 먹는 어묵이 제일 맛있었던 것 같아요. 콧물을 훌쩍거리면서 뜨끈한 어묵 국물 한 모금 마시고 통통하게 익은 어묵을 한입 가득 우물우물 먹는 거죠. 저는 납작 어묵을 꿰어 만든 꼬치를 좋아했는데 국물에 조금 오래 담겨 있어서 살짝 퉁퉁하게 불은 어묵이 더 맛있었던 것 같아요. 어묵 3개에 1000원 계산하고 어묵 국물 한번 더 퍼서 집에 가는 길에 홀짝홀짝 마시면 속이 뜨끈해서 추운 줄도 몰랐어요.
오랫동안 우리 곁을 지켜준 어묵인 만큼 한국인의 정서 깊은 곳을 건드리는 기억들이 있죠. 저처럼 국물 있는 꼬치어묵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겠고,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어묵볶음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겠고, 갓 튀겨 뜨끈하고 촉촉한 시장 어묵을 그리워하는 분들도 있겠죠? 여러분들의 어묵 이야기를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