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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Jul 18. 2021

내년에는 함께 벚꽃을 보러 가자

데이 먼스이어가 부르는 <Yours>

    코로나가 시작된 후 당연하게 누리던 삶의 즐거움들이 많이 사라졌다. 그중에 가장 아쉬운 것 하나는 봄마다 가던 벚꽃놀이를 가지 못한 것이다. 우수수 흩날리는 아름다운 꽃잎 비 속에서 혼자서, 친구와, 가족들과  산책하고 이야기 나누는 그 소소한 즐거움을 빼앗긴 것이 두고두고 아쉬울 뿐이다.


    친구들과의 벚꽃놀이는 주로 맥주와 함께 한다. 대구 동촌 유원지 벚꽃길에 돗자리 펴고 앉아 유유자적 흐르는 금호강을 보면서 각자 가지고 온 안주에 맥주를 한 캔 곁들인다. 봄에는 낮은 따뜻하지만 저녁엔 제법 쌀쌀하니 웃옷을 하나 챙겨가는 것도 잊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따뜻한 봄볕 아래 햇살이 반짝이는 강을 보면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지.


    한 명은 집에서 피자를 한 조각 가져왔고, 다른 한명은 떡볶이를 사 왔고, 나는 과자를 몇 봉지 사갔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딱 그 시절 어린이 입맛으로 준비한 간식들이었다. 벚꽃놀이에 어울릴 만한 술로는 묵직한 흑맥주는 어울리지 않는다. 시트러스의 향기가 느껴지는 가볍고 산뜻한 맥주가 어울린다. 이 날 친구의 추천으로 1664 블랑을 처음 마셨고 그 후 지금까지 제일 자주 마시게 되는 맥주가 되었다. 꽃향기가 난다는 블랑에서 진짜 꽃향기를 느끼지는 못했지만, 한 모금 마신 차가운 맥주캔에 바람에 날려온 벚꽃잎이 붙은 것을 보고 생각했다.


'향기가 뭐 대수랴... 지금 이 순간이 이렇게 완벽한 걸...'   


    세명 모여서 꽃놀이를 하다가 한 명씩 한 명씩 소식을 듣고 친구들이 모여 해질 무렵에는 6명이 되었다. 앉은 자리를 정리하고 밤 벚꽃의 운치를 즐기며 슬슬 걸어가, 그날 저녁은 육회와 소주로 마무리했다. 왠지 너무 아재 취향이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소주 한잔 곁들이며 시끄럽게 떠들 수 있는 곳으로는 육회집만 한 곳이 없었다. 그날은 육회 한 접시에 목이 쉴 때까지 웃고 떠들며 하루를 보냈다.


    가족들과의 벚꽃놀이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중에도 특별한 기은 꽃샘추위에 호되게 당한 진해 군항제에서의 추억이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저녁 먹으러 나간 길에 갑자기 밤 벚꽃을 보러 가자는 말이 나왔다. 한번 흥이 돌면 다 같이 으쌰 으쌰 해서 뭔가를 해내고야 마는 우리 집 식구들은 그런 충동적인 결정에도 바로 차의 액셀을 밟는 실행력을 가졌다.


    그렇게 아무 준비도 없이 간 군항제에서 상상도 못 한 꽃샘추위를 만나 오들오들 떨다가 왔다. 찬바람에 머리는 산발이 되고 콧물이 찔찔 나서 사진을 찍어도 사람 몰골로 나온 게 없다. 너무 추워서 차 트렁크에 있 먼지 쌓인 담요를 뒤집어쓰고 가족들끼리 찰싹 끌어안고 벚꽃을 보러 다닌 것이 추억이라면 추억이다.


    그런 쌀쌀한 날씨에도 원피스며 짧은 치마를 입고 벚꽃을 보러 온 여자분들이 많았는데 예쁜 사진을 건지겠다는 그들의 열정에 감탄했다. 나는 맨투맨에 바지를 입고 있어도 춥다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의연하게 포즈를 취하는 그 열정이라니!


    한철 장사를 노리고 길가에 늘어선 상점에서 먹거리도 많이 팔았다. 솜사탕과 닭꼬치 냄새에 홀려서 하나 사 먹을까 말까 고민하기도 하고, 작은 수공예품을 슬쩍슬쩍 구경하기도 했다. 아빠의 목에 올라탄 어린아이들은 손에 반짝이는 장난감이나 풍선을 하나씩 들고 신이 나서 팔을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 활기찬 풍경에 섞여 들어가면 뺨이 에리는 추위도 조금 물러나는 것 같았다. 편의점에서 파는 따끈한 커피를 가족들과 나눠 마시며 이렇게 추운 날 벚꽃 보는 것도 나름 운치가 있다며 다 같이 웃어 버렸다. 고생스러운 기억이 오래간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고생은 흐려지고 즐거움만 오래 남는다. 그래서 과거를 돌아보면 참 아름답게만 추억이 남아 있는 거겠지?



    안타깝게도 남자 친구와 벚꽃놀이를 간 기억은 없다. 지난 남자 친구들은 벚꽃을 보러 가자는 나의 낭만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정한 남자들이었으니. 그래서 올해가 가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내년 봄에는 함께 벚꽃을 보러 가는 게 소소한 목표다.


    벚꽃을 보러 가는 길에 이 노래를 함께 듣고 싶다. 데이 먼스 이어의 편안한 목소리로 부르는 <Yours>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손을 잡고 산책을 가고 싶게 만든다. 베이스 소리가 딱 경쾌하게 기분 좋을 때 발걸음 같단 말이지.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다정하고 편안해서 봄의 풍경과 너무 잘 어울릴 것 같다.


    나에게는 이 노래가 장범준의 <벚꽃 엔딩>만큼 봄마다 들어야 할 봄 캐럴송 같은 곡이다. 특히 데이 먼스 이어의 <Yours>는 왠지 밤에 핀 벚꽃과 어울릴 것 같다. 요즘은 벚꽃길에 조명을 설치해서 보랏빛, 핑크빛으로 물든 벚꽃을 보기도 하던데 그냥 가로등 불빛 아래서 보는 밤 벚꽃도 심심한 매력이 있다.


    가사를 보면 하루 종일 함께 있어도 밤이 되면 헤어지기 아쉬워서 집 앞 가로등 불빛 아래서 벚꽃을 한참 보고 있는 느낌이다. 여자친구를 보내기 싫어서 집앞에서 벚꽃이 예쁘다며 서성이지만, 사실 벚꽃이 예쁘다는 말보다 네가 예쁘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우물쭈물하는 남자친구 같다. 


설레는 봄, 벚꽃, 사랑하는 사람과 즐거운 시간.

우리의 인생에 몇 없는 낭만을 떠올리면서...

내년 봄에는 이 망할 놈의 코로나가 끝나서 우리 모두 벚꽃을 보러 갈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VHj6IYA-Dxs


<Yours> -데이 먼스 이어

내가 손을 잡을게 너는 힘을 빼도 돼

그저 복사꽃 핀 거릴 걷자

너의 마음이 녹아 우리 밤을 합치면

무너진 달을 세워놓자


가끔 너의 모습은 봄날의 낮과 밤 같아

따스하다가도 차갑곤 해

또 넌 맑은 하늘에 내리는 소나기 같아

넌 대체 내게 뭐를 원해


그대여 난 솔직히 좀 싫어

그대는 내가 없더라도 아무렇지 않은 게

넌 나의 모든 하루를 바꿔

난 그렇게 또 두 눈을 감고 마네

그대여 난 솔직히 좀 싫어

그대는 내가 없더라도 아무렇지 않은 게

넌 나의 모든 하루를 바꿔

난 그렇게 또 두 눈을 감고 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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