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어머니께서 손을 크게 다치셨어요. 화장실 문을 닫다가 휴지걸이의 물 튀는 걸 막아주는 덮개 모서리에 손이 베였다시네요. 설명을 듣고 얼마나 황당하던지... 다른 것도 아니고 휴지걸이에 손을 베인다는 게 말이 되나요? 제법 피가 많이 나서 손수건으로 지혈하면서 응급실에 다녀왔습니다. 돌아왔을 때는 손에 붕대를 칭칭 감고 왔는데 혈관이 베여서 피가 많이 났다고 하네요.
속상한 점은 그렇게 손을 다치면 조심하고 쉬어야 하는데 어머니는 또 고집을 부립니다. 자격증 학원 수업을 가야 된다며 다친 손으로 운전을 해서 대구에 간다고 고집, 혼자서 머리 감을 수 있다고 고집, 한쪽 손으로 소고깃국을 끓이겠다고 고집이네요. 그 와중에 일주일에 한 번 먹는 골다공증 약은 또 빼먹어서 저의 성미를 돋웁니다. 작년에 골다공증 진단을 받고도 자꾸 약을 빼먹어서 올해 건강검진에는 골밀도 수치가 또 떨어졌거든요. 얼마 전에는 뒷목이 너무 아프다며 잠도 못 주무셨어요. 한의원에 가서 목 어깨에 뜬 부항자국이 없어지지도 않았어요. 자꾸 아픈 곳이 늘어가는데 손에 붕대까지 감고 국 끓인다고 허둥대는 게 신경 쓰여 죽겠어요.
저도 꽤나 성미가 뾰족합니다. 엄마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 들고 무를 퉁퉁 썰었습니다. 나박나박 얇게 썰어야 하는 게 고까운 마음이 드러나서 자꾸 무가 삐뚤빼뚤 투박해집니다. 무는 바람이 들었는지 영 시원찮아요. 그게 또 짜증이 나서 툴툴 댑니다. 오래 써서 무뎌진 부엌칼로는 소고기 양지가 잘 썰리지 않아요. 성질이 나서 부엌칼로 소고기를 팍팍 때렸습니다. 북어 대가리 마냥 팍팍. 이 놈의 소고기 살은 왜 이리 질겨! 물기를 꼭꼭 닦고 새 칼로 자분자분 썰다가 결국에는 어머니와 크게 말다툼했네요.
엄마: 너 왜 이렇게 성질을 부려? 고기만 썰어 놓고 가. 엄마가 국 끓일게.
딸 : 손 다쳐놓고 끓이긴 뭘 끓여? 저리 좀 가 있어.
엄마: 됐어. 소고기 그렇게 써는 거 아니야. 엄마한테 칼 줘 봐.
딸 : 한쪽 손으로 고기를 어떻게 썰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방에 들어가.
엄마: 두고 가. 엄마가 한다니까.
딸 : 아 쫌! 제발! 다쳤으면 얌전히 좀 있어! 방에 들어가 있으라고!
엄마: 너 말을 왜 그렇게 못됐게 해?
딸 : 엄마는 말귀를 왜 못 알아먹어?
엄마: 그럼 놔두고 가! 엄마가 한다고!
딸 : 못한다고! 대파도 씻어서 다듬어야 하는데 한쪽 손으로 어떻게 해! 엄마 바보야?
엄마: 야!
딸 : 왜!
바락바락 소리 지르다가 목이 따끔하네요. 결국 둘 다 제대로 성질이 나서 크게 싸웠습니다. 저는 말도 안 하고 소고기를 다지듯이 썰어서 참기름에 달달 볶고 엄마는 혼자 씻으러 들어갔어요. 참기름에 고기 볶다가 무 넣고 볶다가 무가 살짝 투명해지면 국간장을 쪼르르 붓습니다. 고춧가루도 탈탈 넣는데 샤워기 물소리에 또 신경이 쓰입니다. 손 다쳤는데 머리는 어떻게 감으려고? 가스불을 줄여놓고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기를 빼았았다가 2차전이 벌어졌어요.
딸 : 앉아봐. 머리 감겨줄게!
엄마: 엄마 혼자 할 거야!
딸 : 한쪽 손으로 머리를 어떻게 감어!
엄마: 벌써 다했어! 헹구기만 하면 되는데 왜 그래?
딸 : 귀 뒤에 거품 남았구먼!
엄마: 내가 하면 돼! 놔둬!
뭐 일단 성질이 나면 바락바락 소리 지르는 건 제가 엄마를 빼닮았어요. 혼자 나와서 끓는 냄비에 물을 붓고 간을 맞추려는데 국간장도 똑 떨어졌네요. 아이 성질나. 오늘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죠? 동생이 국간장 사러 간 동안 잠시 소강상태입니다. 엄마는 안방에서 화를 삭이고 저는 제방에서 화를 삭이고. 생각해보면 엄마가 아픈 게 속상해서 그랬던 건데, 말투가 참 곱게 안 나가요. 왜 저렇게 의욕만 많아서 몸 아픈 건 생각도 안 하는지 짜증이 나다가도, 나 자신이 고스란히 엄마를 닮아서 또 눈이 시큰해집니다. 엄마와 딸은 왜 이렇게 많이 닮았는지 모르겠어요. 더 일찍 떨어져서 살았어야 했나 후회되기도 하고, 자기 몸 관리도 못하는 엄마가 밉기도 하고, 자꾸 혼자 할 수 있다고 고집부리는 것도 미워요. 나의 싫은 면이 보여서 더 화가 나는 것 같아요.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희 외할아버지도 꼭 저러시거든요. 고관절 수술하시고 제가 간병을 간 적이 있었어요. 다리를 절뚝 대시면서도 혼자 걸을 수 있다고 부축도 거부하시고, 머리 감겨드린다는 것도 혼자 감을 수 있다고 성화시고, 링거 주머니가 무거워 보여서 들어드린다고 해도 싫다고 하시고. 외할아버지, 엄마, 나. 특유의 '나 혼자 알아서 할 수 있어!'가 고스란히 물려 내려왔네요. 핏줄이 참 무섭습니다.
너무 닮은 엄마와 딸의 화해는요? 뭐 간단하죠.
딸 : 만둣국 끓였는데 엄마도 먹을래?
엄마: ... 응.
딸 : 이따 나갈 때 같이 나가자. 짐 들어줄게.
엄마: 그래.
차를 타고 가는 엄마에게 운전 조심하고, 무거운 짐 있으면 다른 사람한테 부탁하라고 잔소리를 합니다. 왠지 엄마와 딸의 역할이 바뀐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오래전부터 우리는 이렇게 살았어요. 엄마가 딸을 돌보고 딸이 엄마를 돌보면서요. 아직도 서로 정서적 탯줄이 연결되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탯줄을 억지로 떼어내려고 할 때마다 늘 나보다 작은 엄마의 어깨가 보여서 속이 상합니다.
소고기 국은 엄마의 시그니처 같은 거예요. 우리 가족은 늘 빨갛게 끓인 엄마표 소고깃국이면 국만 두 그릇씩 먹곤 했으니까요. 어쩌면 엄마는 가족들을 걱정시켜 미안한 마음을 국을 끓여주는 걸로 풀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끓인 소고기 국은 무도 투박하고 참기름도 너무 많이 넣어서 영 시원한 맛이 덜 합니다. 바람 든 무의 맛도 좋지 않아서 양파를 한 개 썰어 넣었어요. 대파를 잔뜩 넣고 다진 마늘도 듬뿍 넣고, 고춧가루도, 소금도 추가해서 더 맵고 칼칼하게 끓였습니다. 한 그릇 쭉 들이키면 좁은 속이 확 풀리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