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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Sep 04. 2021

밥 반찬 귀찮으면 제육볶음

대충 차려먹으면 제육볶음에쌈밥이지... 안그래요?

    요리가 취미라고 해도 매일매일 밥상을 차리는 일은 고되고 지루한 일입니다. 머릿속으로 메뉴를 구상해서 필요한 재료를 사 오는 일도 귀찮고요. 반찬끼리의 조화를 생각하거나 근래 먹은 반찬과도 겹치지 않게 하는 것이 또 중요하잖아요. 잘 모르는 사람들이야 "냉장고에 있는 걸로 아무거나 해 먹자."라고 하겠지만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그렇게 뚝딱 한 상차림 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거기다 칭찬에 인색한 우리 집 식구들 생각하면 밥상 차리는데 의욕이 참 나질 않죠. 맛있다고 식탁 위에서 깽과리를 치고 춤을 춰도 귀찮은 게 밥상 차리기인데 '맛있다.' '수고했다.' 일언반구도 없으면 숟가락으로 머리를 한 대 쳐주고 싶어요.


    이렇게 의욕이 없을 때에도 왠지 있어 보이고 그럴듯해 보이는 밥상을 차리는 데는 쌈채소와 고기 볶음이 최고인 것 같아요. 풍성하게 쌈채소를 쌓아놓고 맛있게 양념한 고기를 한 점 얹고 크게 한쌈 싸 먹으면 그만큼 포만감이 느껴지는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쌈을 싸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맛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만족감도 주는 행위이지 않나요? 입 안 가득 풍성하게 맛있는 채소와 반찬을 넣고 우걱우걱 씹어먹으면 사회적인 체면을 내려놓는 쾌감까지 느껴져요. 그만큼 집에서 편하게 먹을 수 있는 한 끼 메뉴로 딱 맞을 것 같네요.


    제육볶음용 앞다리살 600g 사 왔어요. 일단 매실청 6 숟갈을 넣어서 고기가 부드럽고 잡내 없게 만들어 줍니다. 설탕 넣는 것보다 훨씬 맛도 좋고 죄책감도 덜 해요. 어차피 설탕인 건 똑같지만요! 여기에 간장 2 숟갈, 다진 마늘 1 숟갈, 생강가루 조금, 후추 조금 뿌려줍니다. 이렇게 밑간을 해놓고 나중에 볶을 때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더해도 돼요. 근데 그렇게 하니까 제 코에는 고춧가루의 풋내가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고춧가루 1 숟갈고추장 1 숟갈도 같이 넣고 조물조물 무쳐서 냉장고에 넣어뒀어요. 고춧가루는 색을 보고 조금 더 넣으셔도 좋습니다.


    제가 예전에 배달 삼겹살 집을 운영한 적이 있는데요. 저희 가게 메뉴 중에 하나가 고추장 불고기였어요. 간장 없이 고추장을 많이 넣고 간을 해서 국물 자작하게 볶은 요리인데, 소주 안주로 딱 좋았어요. 그때는 생강가루, 미림, 후추, 설탕에 고기를 재워 두었다가 마지막에 고추장 양념을 넣고 볶았죠. 이렇게 양념이 강한 고기를 볶을 때는 타지 않게 계속 뒤적여 줘야 돼요. 국물이 너무 흥건해도 맛이 좋지 않거든요.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서 센 불에 볶음 팬을 달궈 줍니다. 기름을 약간 두르고 대파 1대양파 반개를 채 썰어서 볶아주세요. 살짝 향이 올라올 때쯤 고기를 넣고 볶아줍니다. 왼손에는 집게, 오른손에는 뒤집개를 쥐고 타지 않게 계속 뒤적여주세요. 어느 정도 고기가 익을 때쯤에는 양파와 대파에서 물이 나오기 때문에 양념이 타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계속 고기가 골고루 익도록 얇게 얇게 펴주세요.


    쌈채소는 청상추, 적상추, 깻잎, 치커리, 겨자채 등등 다양하게 준비해줍니다. 쌈채소의 쌉쌀한 맛을 즐기는 것도 쌈밥의 매력이잖아요? 저는 쌈채소를 씻어두고 커다란 통에 키친타월을 도톰하게 깔아준 다음 삼채 소를 차곡차곡 담아서 보관합니다. 통째로 식탁에 올려도 좋고 비닐에 넣는 것보다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어요.  


    여기에 맛있는 쌈장을 곁들여야죠. 시판 쌈장을 먹어도 좋지만 저는 집에서 만든 쌈장이 더 맛있더라고요. 된장에 고추장을 3대 1 비율로 섞어주고 여기에 볶은 잣을 잘게 다져 넣은 후, 다진 마늘다진 고추를 넣어 만듭니다. 쌈장에 견과류를 넣으면 고소하고 맛있어요. 단맛을 더하고 싶다면 물엿을 조금 넣고 마지막에 참기름을 살짝 넣어주면 고소한 향기가 더 좋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쌈장에 상추만 있어도 밥 한 그릇 뚝딱 먹지 않나요?


    돼지고기 먹을 때 잘 어울리는 것이 있는데 부추무침이죠. 간장을 넣어서 짭짤하게 하는 것보다 식초연겨자를 넣어서 새콤, 매콤하게 무쳐낸 것이 맛있습니다. 제육볶음과도 잘 어울리고 오리고기와도 잘 어울리는 곁들임 반찬이에요. 식초, 노란 연겨자, 매실청을 섞어주고 양파 ¼개 채 썰어 넣고, 고추 한 개 다져 넣습니다. 여기에 부추를 한입 크기 정도로 썰어 넣어 줍니다. 가볍게 양념을 묻혀주고 참기름 약간들깻가루 한 숟갈 넣어줍니다. 짠맛은 적고 새콤해서 짭짤하게 간이 배인 고기와 잘 어울려요.  


    오늘 찌개는 된장찌개를 끓였어요. 자투리 무 애호박, 양파, 팽이버섯을 넣고 두부 한모 잘라 넣어서 푹 끓였죠. 쌀뜨물을 넣어서 된장을 풀면 국물 맛이 아주 구수해요. 간이 부족하면 액젓 살짝 넣어도 좋고요. 마지막에 고추 대파를 썰어 넣어서 한소끔 끓여주면 된장찌개도 완성입니다. 귀찮아서 제육볶음만 하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된장찌개까지 끓였네요? 된장찌개, 제육볶음, 쌈채소, 쌈장까지 식탁에 차려놓으니 제법 그럴싸한 한 끼가 되었어요.

대충 삽시다. 식탁 사진 찍는데 숟가락 대충 던져놓은 저처럼.... 

    뭐든 시작하는 게 어렵긴 한데, 하다 보면 욕심이 나서 이것저것 더하게 돼요. 제육볶음이나 해서 대충 먹어야지 하다가 쌈채소 씻고, 된장찌개 끓이고, 부추 무치고, 쌈장까지 만들었네요... 일을 한번 벌여 놓으면 이렇게 점점 판이 커지네요. 이렇게 될 걸 알아서 시작하기 싫어지는 것 같기도 해요. 글 쓰는 것도 시작은 미약하게 쓰다가 점점 길어지고... 욕심이 많아지고... 기준이 높아지고... 스스로에게 스트레스 주고...대충 살자고 해도 대충 살 수 없는 저란 사람...스스로 피곤하게 만드는 성격이네요. 


입 안 가득 얼굴이 구겨지게 쌈밥을 넣고 우걱우걱 씹으면서 대충 살자고 다짐하는 저녁 식탁의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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