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재능에 대한 고찰
당신에게도 꽃피우지 못한 재능이 있나요?
이런 획일화된 공교육 시스템에서 우리 모두가 피해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군가는 이런 시스템에 잘 적응하여 사회가 요구하는 학력과 탄탄대로의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잡기도 하니까.
다만 나에게는 학교에서 요구하는 지식을 최대한 많이 머릿속에 저장할 재능이 많지 않았던 것뿐이다. 그런 나에게도 다른 재능이 없었던 건 아니었고, 오히려 크고 작은 재능이 많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사람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았고, 춤도 곧잘 췄고, 미술을 전공했던 엄마를 따라 그림도 잘 그렸다. 그러나 그 어느 재능도 학교 시스템,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로부터 선택받을 만큼 월등하진 않았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여전히 나도 잘 모르는 재능을 남들이 발견해주곤 했다. 누군가는 나에게 심리 상담가처럼 다른 사람을 잘 위로해준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나에게 작가가 될 만큼 글을 잘 쓴다고 말했고, 누군가는 나에게 요리를 정말 잘한다고 칭찬해줬다.
이쯤 되니 어디 히어로 영화에서 밸런스 붕괴를 가져올 만큼 재능이 많은 사람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 무엇 하나도 밥벌이가 될 만큼 주요한 재능은 아니었다. 결국 내 인생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재능만 많은 사람으로 끝낼 것인가?
글을 읽는 독자들을 포함해 우리 모두 어린 시절 누군가 나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해준 경험이 있었을 거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런 재능만으로는 성과가 녹록지가 않은 것이다. 나는 그림을 잘 그렸고 그 재능을 살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려고 했지만, 두 번의 대입 실패로 결국 다른 전공을 선택했다. 그 일은 오래도록 나에게 실패의 쓰라림으로 남아 있다.
내가 대학에 떨어진 날, 합격한 친구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하면서도 마음 깊이 씁쓸했던 19살의 겨울. 난 아직도 그날의 온도와 장소를 오롯이 기억하고 있다. 그것은 1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소가 여물을 게워 올려 되씹듯 여러 번 그날을 반추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실패했던가. 왜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가.
깨달음은 31살이 되어 어느 날 불현듯 찾아왔다. 이르게 핀 벚꽃잎이 떨어지며 꽃비가 내리는 봄날이었다. 사람의 인생을 작은 씨앗에서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는 것으로 비유하자면, 우리의 재능은 씨앗에 불과하다. 씨앗은 싹을 틔울 수 있는 적절한 순간이 올 때까지 1년이고, 10년이고, 100년이고 땅속에 숨어 있다.
그러다 적절한 온도와 환경이 갖춰지면 껍질을 뚫고 여린 싹을 밀어낸다. 그 후에 풋풋한 어린싹이 자라 큰 나무가 자라고 꽃을 피울 때까지 오래도록 세월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재능은 씨앗이고, 적절한 환경이 되어 싹이 트면, 그 후에는 뿌리가 깊어지고 기둥이 단단해질 때까지 오래도록 인내해야 한다. 그리고 나에게 부족했던 건 이 인내심이었다.
따지고 보면 미대 입시를 실패한 것이 나에게 그림에 대한 재능이 없다고 단정 지을 근거가 될 수도 없다. 두 번 실패했지만 세 번째에는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정말 나의 온전한 즐거움이라면 전공과 관계없이도 계속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당시 부모님의 도움으로 나는 적절한 환경도 갖춰졌었다.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고, 환경은 주어지는 것이라면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건 버티는 인내심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재능이 부족한 것이 아니었고 버텨내지 못한 것뿐이었다.
타고나지 못한 재능은 아무리 간절하게 원해도 가질 수는 없다. 나는 노래를 못한다. 노래를 잘하려고 노력해본 적도 없다. 대신 나의 다른 재능은 사람들에게 발견되었다. 글, 그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나의 생각을 말하는 재능, 함께 대화하는 사람의 마음을 쉽게 여는 재능, 내가 하는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재능, 새로운 것을 빠르게 배우는 재능. 그리고 나에게 응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부모님의 도움으로 적절한 환경도 갖춰졌다. 원하면 학원과 과외를 하며 배울 수 있었고, 부모님은 내가 뭔가에 도전할 때 그것을 꺾으려 한적도 없으셨기 때문이다. 변명의 여지없이 나의 인내심 부족이 원인이다. 여린 싹이 두꺼운 나무 기둥으로 자라기까지의 풍파를 견디지 못한 내가 고통에서 여러 번 도망쳤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재능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특출 난 재능만 있으면 손쉽게 성공하거나 남들의 인정을 받을 거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예체능 계열에서는 그런 타고난 재능에 대한 열등감이 만연했다. 실제로 내가 보기에도 타고난 재능을 이기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입시장에서나 미술대회에서만 옳은 말이었다. 그날 나보다 뛰어났던 그 아이가 지금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 가지 작은 재능이라도, 적절한 환경 속에서 싹을 틔워 꽃이 피기까지 기다리는 사람만이 크게 자란다.
어쩌면 재능도 환경도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라 사람 힘으로 어쩔 수 없다 쳐도, 변명의 여지없이 나의 선택이었던 건 끝까지 버텨내냐는 문제 하나였을 뿐이다.
나의 20대엔 안타깝게도 도망친 기억이 더 많다. 10대 후반의 쓰라린 실패의 기억은 오래도록 내 발목을 잡고 위축되게 만들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고통에 여러 번 쉽고 작은 허들만 뛰어넘으려고 했다. 그래서 반만 읽고 덮어 둔 책처럼 무엇 하나도 끝을 보지 못하고 덮어 둔 일만 여럿이다.
30대가 되니 그것이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걸 알아서, 오랫동안 덮어 둔 책들을 하나씩 열어 보았다. 먼지 뽀얀 서랍 속 버리지 못한 붓과 물감들, 일기장 빼곡히 써놓은 짧은 글들. 어느 것 하나 버리지 못한 건 아직도 이루지 못한 꿈들이 유령처럼 나를 뒤쫓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들은 매번 내 발목을 붙잡고 다음 걸음을 걷지 못하게 한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다.
내가 포기한 꿈들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어쩌면 이런 글을 쓰는 것도 이루지 못한 꿈이라는 유령들을 성불시켜줄 위령제 같은 목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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