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장녀의 삶

나의 작고 귀여운 어머니를 위로하기

by 구름조각

지난 어버이날 부모님께서 다투시고 두 분은 아직 냉전 중이다. 들어보니 서로 나름의 이유는 있으나 대화하는 법을 모른다.


우선 엄마의 입장은 이러하다.

그동안 살면서 늘 어버이 날과 같은 집안 행사에는 아빠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웬일로 아빠가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이번 어버이날에 양가 부모님 찾아뵙지 않겠냐고 물었단다. 그 말을 듣고 엄마는 아빠가 신경 써서 준비하려나 기대를 한 것이다. 그런데 친할머니께는 용돈을 30만 원 드렸다고 한다. 외가에는 밖에서 식사만 하자고 했는데, 외할아버지께서는 연세가 많으셔서 장어니 회니 다 싫다 하셨단다. 그래서 1인당 12000원짜리 된장찌개가 나오는 한정식을 먹었다. 그런데 엄마 입장에선 양가에 비슷하게 챙겨드리는 게 맞으니, 거기서 아빠가 용돈을 조금이라도 드려야 한다는 거다. 엄마가 봉투 안 준비했냐고 물으니 아빠가 퉁명스럽게 "밥 먹었으면 됐지 않냐?"라고 말했단다. 엄마는 처가를 무시하는 일이라며 아주 화가 많이 났다.


음... 일단 여기까지 듣고는 엄마가 원하는 걸 정확하게 요구하지 않고 아빠가 알아서 준비할 거라고 기대한 게 잘 못이라고 집었다. 거기다 외할아버지께서 기름진 걸 못 드시니 식사는 간단하게 하고 그만큼 용돈 좀 챙겨드리자고 얘기했으면 간단하게 해결했을 일을 엄마가 꽁해서 설명을 안 하니 일이 꼬인 거 아니냐고 반박했다. 그러니 엄마는 내 말이 맞다면서도 아주 심통이 났다. 어버이날 후론 아빠랑 계속 얘기를 안 하는 중이다.



그날 저녁에 들어본 아빠의 입장은 이러하다.

친할머니는 혼자 계시고 밖에서 식사도 안 한다 하시니 용돈만 드리고 집에 잠깐만 앉아 있다가 왔다고 한다. 친할머니는 아빠만 보면 항상 우시고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시니 아빠는 할머니만 뵙고 오면 마음이 좋지 않다. 외가에는 좋은 식당을 골라서 다 같이 식사를 하면 식사비도 용돈과 비슷할 줄 알았단다. 근데 엄마가 말도 없이 평범한 식당을 골랐고 식사값도 많이 나오지 않아서 신경 쓰였던 참이다. 그런데 그때 엄마가 뾰족한 목소리로 준비한 거 없냐고 쏘아붙이니 기분이 나빠져서 작게나마 주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빠는 엄마가 늘 화가 날 때마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떽떽 거리는 게 기분이 너무 나빠서 입을 다물어 버린다.

난 다음에 엄마가 보는 앞에서 외할머니께 용돈 봉투 좀 챙겨드리라고 말했다. 예전에 외할머니께서 아빠가 아팠을 때 꼬깃꼬깃한 돈 봉투 쥐여 주면서 많이 못 줘서 미안하다고 우셨던 일도 있으니 아빠가 챙기는 건 마땅하다고 짚었다. 그리고 요즘 외할아버지께서 연세가 많으시고 뭘 먹어도 소화를 못 시키시니 엄마는 간단한 백반을 고른 거라고 이야기해드렸다. 아빠도 사정을 들으니 납득하는 모양이다.



만약 이혼 법정에서 이런 사연을 들었다면 두 분 손잡고 서로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포옹 한번 한 다음 손잡고 집으로 가시라고 판결 내렸을 것 같다.


엄마는 이렇게나 감정에 서투르다. 차분하게 이야기했으면 좋을 걸 꼭 화를 내면서 말하고, 속상한 것도 담아 두기만 하고 대화를 안 하려 한다. 나한테도 되도록이면 아빠 욕은 안 하려고 하지만 그건 순전히 내가 아빠 욕을 듣기 싫다고 못 박아서 그런 것뿐이다.


엄마에겐 남편 욕이지만 나에겐 아버지 욕이니 당연히 싫지. 내 유전자의 절반은 아버지한테 받은 건데. 엄마가 내 앞에서 아버지 욕을 하는 건 내 상반신이나 하반신 중 하나에 욕을 하는 거나 다름없다. 그런 상황에 계속 노출되면 난 아메바처럼 자꾸 분열되는 방어기제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엄마가 사랑해 마지않는 딸의 절반 딸의 아버지엄마의 전 남자 친구이자 현 남편이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아줬으면 한다. 그리고 그건 아빠도 마찬가지다.


아빠도 그렇게나 섬세하지 못하다. 나이가 들면 남자들도 좀 섬세해진다는데 우리 아빠는 여고생처럼 삐지는 일만 늘어가는 것 같다. 엄마가 기분파이기 때문에 살살 달래주기만 하면 아주 얌전해진다는 걸, 30년이 넘게 함께 사는데도 전혀 모른다.


문제가 있으면 서로 차분하게 이야기하면 될 것을 꼭 10년 전 일까지 들먹이며 서로 화를 돋운다. 이렇게 유치 찬란한 부모님의 싸움을 보고 있으면 나이 든 그들이 안타깝다. 몸은 늙어가도 마음은 5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저러다 한 명 먼저 보내면 남은 사람은 두고두고 마음이 쓰일 텐데...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사랑이었다는 걸 자꾸 잊는 것 같다.


아님 결혼이라는 게 저렇게 사람을 속 좁게 만드는 걸까?

이렇게 오늘도 결혼에서 한 발짝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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