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채식주의자.. 01
육식 강박에 시달린 사연
지금 우리가 사는 문명사회는 죽음과 마주할 일이 거의 없다. 하다못해 닭 모가지 하나 내 손으로 잡아 비트는 일 없이 완성된 치킨을 먹을 수 있는 시대니까. 예전처럼 마당을 뛰어다니는 닭을 잡는 것부터 시작했다면 우리가 지금처럼 자주 육식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불교 유치원을 다녔고 간헐적으로 고기를 안 드시는 외할머니를 보고 자라서인지 왠지 모르게 육식에 대한 죄책감이 있었다. 특히 공장식 사육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접하고 난 후부터 우리가 먹는 고기가 다른 생명체의 시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나의 이모가 달라이 라마의 <화>라는 책을 읽은 후, 육식을 그만두었다. 이모는 지금까지 페스코 베지테리언(생선, 계란, 우유까지 섭취하는 채식주의자)으로 살고 있다. 그의 결단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경우엔 언제나 식욕이 죄책감을 이기고 있었다.
고기가 너무 맛있다. 그 기름진 맛이 주는 쾌락이 너무 선명해서 죽어가는 돼지와 소와 닭의 이미지가 자꾸만 흐려지는 것이다. 가끔 지나치게 탐닉해서 숯불에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를 정신없이 먹고 나면 알 수 없는 죄책감에 괴로웠다. "그럴 거면 처먹지나 말던가..."라는 어느 인터넷 현자의 말이 떠올랐지만 욕구를 이기는 것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쾌락과 그 후에 오는 죄책감은 묘하게 쾌락을 증폭시키는 양념의 역할을 한다.
고상한 문명인의 도덕관념과 너무나 솔직한 육체적 쾌락. 어느 채식주의자가 만든 다큐멘터리에는 육식의 즐거움을 포르노에 비유하기도 했는데, 아마 이 지점에서 유사성을 발견한 것이 아닐까? 문명인의 도덕관념은 늘 식욕과 성욕을 억제하게 만들지만, 우리의 육체는 너무나 솔직하게 맛있고 기름진 음식과 섹스의 쾌락을 욕망한다. 더군다나 육체적 욕망은 인간의 상상력으로 끝없이 증폭된다. 한번 그 세계에 발 들이면 돌아가는 게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큰 마음먹고 육식을 끊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육식뿐만 아니라 정제탄수화물, 설탕, 커피, 모든 종류의 가공식품을 안 먹었다. 갑작스러운 나의 변화에 주변 사람들 모두 당황했지만 다행히 내가 100일간의 기간을 정해두었기 때문에, 내가 어떤 챌린지에 참여한다고 받아들였다. 정확한 한계와 정해진 기간이 스스로에게 도전의식을 불러일으켰다.
▶ 나는 얼마나 나의 욕망을 통제할 수 있는가?
▶ 내가 욕구가 아닌 필요에 의해 살아가는 삶을 살 수 있을까?
▶ 사람에게 만족감을 주는 최소한의 음식은 무엇일까?
이런 호기심과 함께 어쩌면 나의 욕구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다른 어떤 논리적 이유는 이후에 그럴듯하게 붙인 설명과 자기 합리화이다. 그 시기에 나는 분명히 강박과 지나친 자기 통제에 고통받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준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피곤한 출근길이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저 멀리 도로가에 누가 햄버거 고기를 버려놓은 게 보였다. 신선한 핑크색의 고기가 아깝게 땅에 떨어져 있던 것이다. 그런데 가까이 가서 보니 그 고기에는 팔과 다리가 붙어 있었다. 길 고양이가 로드킬로 머리가 터져 도로가에 시체가 어지럽게 널려 있던 것이다.
팔다리가 저릴 정도로 크게 충격을 받았다. 끔찍하게 죽은 고양이의 안타까운 마지막도 충격적이지만, 그의 시체를 보고 햄버거 고기를 생각했던 나 자신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핑크색의 신선한 간 고기는 고양이의 뇌와 장기였다. 그런데 그걸 몰랐을 때는 익히기 전의 햄버거 패티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거의 원효대사 해골물에 버금가는 충격이었다.
어떻게 구청의 동물 사체 처리를 전담하는 부서의 전화번호를 찾아서 연락하고 시체를 치워달라 부탁했다. 그리고 출근은 했지만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안 잡혔다. 직장선배가 자꾸 실수를 하는 나를 따로 불러내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나는 그날 아침 고양이 시체를 본 일이 머릿속에 맴돌아서 일 하는데 집중이 안된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선배는 "뭘 그런 일 가지고 그러냐. 커피 한잔 마시고 정신 차려."라고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에 나는 여기는 일하는 곳이고 내 감정을 위로받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다시 열심히 일에 집중해서 오후는 무사히 보냈지만 깊이 억누른 감정은 늘 자기를 억압한 만큼 더 독해져서 돌아온다.
그 후 마트에 가면 깨끗하게 포장된 고기 팩에서 고양이 시체를 봤다. 집에서 키우는 내 고양이의 도곤 도곤 울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면 그 날 죽은 고양이도 이렇게 작고 빠른 심장이 있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내가 먹는 신선한 고기와 끔찍하게 흩어진 고양이의 시체와 나를 말갛게 보는 내 고양이의 눈동자가 어지럽게 뒤섞였다. 그래서 어느 날 선언했다.
나 오늘부터 고기 안 먹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