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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Sep 14. 2021

오징어 초무침

새콤 달콤한 초장과 쫄깃한 오징어

    그동안 미루고 미뤘던 화장실 청소를 했습니다. 매일같이 청소기를 돌리거나 바닥을 닦는 거야 문제없는데 화장실 청소는 늘 귀찮아서 미루게 돼요. 비슷하게 귀찮은 건 냉장고 청소가 있는데 그나마 자주 할 필요가 없으니 생각날 때마다 한 칸씩 비워서 청소를 합니다. 화장실 청소가 싫은 거야 락스 냄새를 맡아가며 힘들게 물때를 지우는 게 싫어서 그렇죠. 락스가 싫어서 친환경 세제도 샀지만 생각보다 잘 닦이지 않으니 결국 독한 락스를 쓰게 되네요. 환경을 생각하겠다는 마음은 늘 편리함 앞에 무너지고 맙니다. 


    알고 있어요. 자주자주 물기를 닦고 청소를 하면 락스까지 쓸 필요 없다는 것을. 어쨌거나 원인은 게으름입니다. 청소를 습관처럼 하는 사람들이 보면 기겁하겠지만 화장실 청소 같은 건 미루고 미루다 달에 한번 정도 하는 것 같아요. 어쨌든 어깨가 빠지도록 솔로 문질러서 물때를 제거하고 거울도 한번 닦아주고 나니 화장실이 새 것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요. 묵혀놓고 한 만큼 제일 티가 많이 나서 좋아요. 


    오늘의 가사노동은 화장실 청소가 끝이 아니에요. 엄마가 사놓은 생물 오징어를 손질해서 오징어 초무침을 만들어야 하거든요. 며칠 전 시장에서 저렴하게 산 신선한 오징어는 냉장고 한편에 방치되어 있어요. '저럴 거면 그냥 마트에서 손질된 냉동 오징어를 사는 게 낫지 않은가?' 괜히 투덜거려봅니다. 생물 오징어가 맛있다고 사놓았지만 정작 귀찮은 손질과 요리는 내 몫인 점이 아주 열 받는 부분입니다. 


    오징어의 반을 잘라 내장을 빼내고 빨판을 제거하고 껍질을 벗겨 데치는 것까지, 아주 귀찮은 일 투성입니다. 그 사이 배, 당근, 깻잎, 양파 같은 것도 채 썰어서 준비하고 새콤한 초장도 만들어야 해요.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한데 이럴 때는 그냥 제일 쉬운 것부터 하는 게 좋아요. 일단 무, 배, 당근을 한가득 채 썰어 한편에 치워두고 양파와 깻잎도 썰어둡니다. 양파는 물에 씻어 매운맛을 빼주고, 깻잎은 돌돌 말아 가늘게 채 썰어 줍니다. 


    다음은 초장을 만들건대,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매실고추장을 쓰려고요. 매실청을 넣어서 산뜻한 향이 나는 고추장은 이런 새콤한 초장을 만들기에 딱 좋아요. 고추장에 다진 마늘, 식초, 설탕, 고춧가루, 통깨를 넣고 초장을 만들어줍니다. 저는 여기에 파인애플 주스를 조금 넣었어요. 파인애플 맛이 많이 나지는 않고 과일의 단맛이 나서 좋아요. 간을 보고 소금을 넣어 짠맛을 더해줍니다. 비율은 대강 손가는 대로 만들었어요. 다진 마늘 2스푼에 고추장 4스푼, 고춧가루 2스푼, 식초 듬뿍, 설탕 1스푼, 소금 약간, 통깨 조금 넣었어요. 늘 비율이 애매한 이유는 혀로 맛을 보면서 이것저것 추가해서 만들기 때문입니다. 요리는 뭐든 자기 입맛에 맞추는 게 최고예요. 


    마지막으로 제일 귀찮은 오징어 손질을 합니다. 생물 오징어라 그런지 살이 아주 탱탱하네요. 5마리 전부 데쳐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그때그때 꺼내서 먹으려고요. 일단 가위로 몸통을 쭉 갈라서 내장과 뼈를 제거하고 몸통을 삼각형으로 펼쳐둡니다. 내장, 눈도 가위로 잘라주고 오징어 입을 손을 떼줍니다. 빨판이 잘 안 떨어지길래 굵은소금을 넣고 주물러서 입에 걸리는 빨판을 제거해줍니다. 몸통의 껍질은 키친타월로 힘줘서 밀어내면 벗겨집니다. 말은 쉬운데 막상 해보면 미끈한 오징어 몸통의 껍질을 벗기는 게 쉽지는 않아요. 그래도 데치는 오징어는 껍질이 없는 편이 씹는 맛이 좋아요. 물을 끓여서 소금 한 스푼, 식초 한 스푼, 미림을 조금 넣어요. 식초가 오징어의 비린 맛을 없애줍니다. 물이 끓으면 오징어를 넣고 1분 정도 데쳐주시고 바로 얼음물에 담가주세요. 바로 식혀야 오버 쿡 되지 않고 탱탱함이 살아납니다. 오징어 다리는 1분 30초 정도로 데쳐주세요. 몸통과 다리는 먹기 좋게 잘라서 반찬통에 담아뒀어요. 내일부터 생각나면 야금야금 꺼내 먹으려고요. 버터에 살짝 볶아서 먹을 수도 있고 라면 끓일 때 오징어를 넣어 먹을 수도 있어요.  


    준비한 재료를 큰 볼에 담고 초장을 적당히 넣어서 가볍게 무쳐줍니다. 접시에 한가득 담아주고 참기름 살짝 둘러서 통깨를 뿌려줍니다. 만들 때는 힘들었는데 막상 오징어 초무침을 먹으니 맛이 좋아요. 그러니 이런 수고로움을 반복하죠. 


사는 집을 깨끗하게 치우고, 좋은 재료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이렇게 살림을 하고 나면 이렇게 오늘 하루 잘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직장에서 일을 하면 똑같이 고된 노동을 하는데도 이상하게 '산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청소든 음식이든, 이 일이 결국에는 나를 위해 하는 것이고 그 만족감이 생생한 감각으로 느껴져요. 깨끗한 화장실을 보는 만족감. 맛있는 오징어 초무침을 먹는 만족감 같은 것이요.


     반면에 직장에서 일을 하는 건 해도 해도 남이 이익을 보는 것 같고 만족감이 몸으로 느껴지지 않아요. 돈을 쓸 때야 물론, 만족감이 느껴지지만 그런 건 찰나의 순간이죠. 돈 버는 일은 늘 이렇게 남을 만족시키는 걸로 그쳐요. 그러니 돈 버는 일이 싫습니다. 저는 저를 만족하게 만드는 일, 나의 일, 나의 행복을 좇고 싶어요. 저는 늘 이렇게 거대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뭔가 고장 난 나사처럼 삐그덕 거리며 자꾸 자리를 이탈하려고 해요. 오징어 초무침을 잔뜩 먹고 부른 배를 땅땅 두드리면서 어떻게 이 행복을 지속시킬지, 어떻게 나의 만족을 위해 살아갈 수 있을지 머리를 굴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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