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조각들> -에픽하이
딸이지만 아들 같이 무뚝뚝한 성격으로 아버지와는 데면데면한 편이다. 살가운 말을 하거나 둘만의 시간을 보내본 기억은 거의 없다. 간혹 아버지와 산에 간 적이 한두 번 정도 있었다. 정상에 오르겠다는 목적이 있을 때는 제법 손발이 잘 맞는 부녀지간이었다. 다만 서로 감정을 드러내거나 부드러운 말을 잘 못하는 것뿐이다. 나의 이런 모습은 아버지를 닮았고 그 사실을 아버지도 알고 있다.
사춘기 시절에는 아버지와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자주 나를 한심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나의 아버지는 아주 강인한 분이었고 자녀들도 자신처럼 강하게 키우려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앞에서 약한 소리나 고민 상담 같은 건 할 수 없었다. 고등학생 시절 공부하는 게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어했지만 아버지의 눈에는 모든 환경이 갖춰졌음에도 고마운 줄 모르는 나약한 투정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나의 아버지는 아주 가난한 집에서 혼자 힘으로 공부했기 때문에 더욱 나를 이해할 수 없었겠지... 그 시절이라 가능했다고 말하기에도 나의 아버지는 참 강한 분이다. 그런 강인함으로 가족을 지켰기에 나와 내 동생은 아버지를 존경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나는 아버지에게 애정과 증오라는 모순적인 감정을 느낀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부터 종종 "빨리 죽고 싶다"는 말을 하셨다. 나이가 들어서 은퇴하고 병이 들어 가족들에게 짐이 되기보다 빨리 사라져 주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어릴 때는 "빨리 죽고 싶다"는 아버지의 말이 너무 무섭게 들렸다. 나 때문에 아버지가 행복하지 않다는 뜻인 것 같았고, 내가 싫어서 빨리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말로 들렸다. 언제라도 아버지가 날 두고 떠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뚝뚝하고 자기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아버지라 오해나 갈등이 풀리기는 쉽지 않았다.
나에게는 아주 어린 시절 함께 목욕탕에 갔던 아버지와 내 뺨을 때렸던 아버지와 나의 자전거를 사준 아버지와 내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뱉은 아버지와 나에게 미안하다고 울었던 아버지의 기억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한 명의 사람에게 이렇게나 복잡하고 모순적인 감정을 덧씌울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그러니 아버지와의 관계는 마냥 평탄하지 만은 않았고 이후 연애에서도 비슷한 패턴을 느꼈다. 딸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남자와의 관계를 배운다. 남자들과의 연애에서도 이렇게 애정과 증오가 뒤섞인 복잡하고 격렬한 감정을 느낀다.
수많은 사건들과 긴 시간을 어떻게 한 편의 글로 설명할 수 있겠나. 나는 아버지에 대해 미워하는 마음에 대한 글을 썼고, 존경하는 마음에 대한 글을 썼고, 미안해하는 글을 썼다. 그리고 오늘은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이 글을 직접 보여주지도 못하고 남들이 보는 인터넷에 쓴다는 것도 아버지를 닮았다. 아버지는 나에게는 한 번도 직접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지만 아버지의 후배들에게 늘 내 자랑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후배가 나중에 알려줬다. '너의 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네 얘기를 하신다'라고, '똑똑하고 든든한 딸이라고 자랑'하신다고. 아버지와 나는 너무 닮아서 문제인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어렸을 때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골목대장이었고 할아버지를 참 좋아하셨다고 했다.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병으로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를 아버지는 오랫동안 사랑하고 미워했던 모양이다. 나도 어릴 때 늘 밖을 쏘다니는 왈가닥 여자애였고 아버지를 참 좋아했다. 그래서 나에게 사랑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오랫동안 사랑하고 미워했다.
<당신의 조각들>이란 노래는 에픽하이의 타블로와 미쓰라가 각자 자신의 아버지에게 바치는 가사를 쓴 노래다. 하나의 문학작품처럼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절절하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많이 울었다. 언젠가는 아버지와 헤어질 때가 온다는 걸 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오랫동안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함께한 추억을 더듬으면서 못 해 드린 것만 떠올라서 슬퍼할 것이다. 그리고 이 노래를 들을 것 같다. 마지막 가사에서 마음이 무너지겠지.
아버지의 조각들과 어머니의 조각들이 모여 나라는 사람을 이루었다. 그중에 아버지가 준 조각들은 오랫동안 싫어하고 거부하려 했지만 결국 아버지를 닮은 나를 인정했다. 아버지가 주신 모든 것들이 나에게 선물이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당신의 조각들'이란 단어처럼 내 안에 아버지를 닮은 모습을 본다. 아버지께서 내 곁을 떠났을 때도 내 안에 오래 살아 있을 아버지의 말, 기억, 신념들이다. 그것들이 나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 주었고 세상의 옳고 그름을 알려 주었다. 아버지의 두 눈동자가 밤하늘의 쌍둥이 별처럼 나에게 가야 할 길을 알려줄 거라고 믿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bsAPIRVnIU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