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수 없는 약속
아기 냥이 집사 구하기 Project 05.
고양이라 다행이야 라는 카페에 임시보호 요청 글을 올리고 난 후 많은 사람들이 고양이를 맡아줄 수 있다고 연락이 왔다. 포인핸드에 올린 글에는 입양을 원한다는 문자가 종종 오는데, 그러면 고양이 입양을 원하는 사람의 연령대, 성별, 사는 지역 등을 물어 본다. 이게 1차 방어선인데 예쁜 고양이 사진을 보고 불쌍하거나 예뻐서 충동적으로 입양을 원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이 1차 방어선 에서 탈락하는 분들은 답장이 없거나 "급한 사정이 생겼다"고 돌려 대답한다. 그러면 나도 마음만으로 감사하다고 답장을 한다. 괜히 화내거나 비난할 필요가 없다.
1차 방어선에서 기꺼이 고양이를 맡겠다는 분에게는 2차 방어선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 거주 형태가 독신인지 가족들과 함께 사는지 물어본다. 혼자 사는 사람일 경우 출근을 하거나 집을 비울 때 보살핌이 필요한 고양이들이 혼자 남겨지기 때문이다. 고양이들이 아무리 영역동물이고 독립적이라고 해도 외로움을 타고 혼자 있게 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경우라면 가족들도 고양이를 데려오는 것에 동의한 상태여야 한다. 또 반려동물을 키운 경험이 있는지를 물어보는데, 반려동물 집사 면접에서도 경력직을 우대하는 상황이다. 내가 우리 고양이를 처음 데려왔을 때 지식도 경험도 없어서 얼마나 서툴게 돌보았는지 생각해보면 경력직 우대가 자연스러운 것 같다. 그리고 고양이를 키우면 사료, 모래, 병원비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지도 중요하다. 수입에 대해 물어보고 나면 최종적으로 '입양계약서'에 서명하는 데 동의하는지 물어본다. 집사 면접도 취업면접처럼 거주환경과 경력, 수입등을 물어보고 최종적으로 근로 계약서를 쓰는 것이다.
당신은 앞으로 갑:고양이를 위해
을: 충실한 집사로 근무하는데 동의 하시겠습니까?
근로계약서를 쓰면 마음대로 그만둘 수도 없는 것처럼 입양계약서를 쓰면 반려동물을 유기하거나 학대했을 때 법적인 책임이 발생한다. 만약 동물을 키우다가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파양하게 되면 입양을 동의서를 쓴 사람에게 돌려줘야 한다. 파양하더라도 사람의 손을 탄 동물들이 길거리로 버림받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2차 방어선까지 통과한 사람은 그래도 제법 고양이를 키우겠다고 단단히 결심했으리라고 기대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고양이를 쉽게 내어주지는 않는데 바로 3차 방어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3차방어선은 바로 '가정방문'이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고 사랑하는 감정이 넘치더라도 당장 사람 하나 누울 곳도 없은 좁고 지저분한 집에서는 고양이를 키울 수 없다. 최소한의 정도로 깨끗하고 위험한 환경이 아닌지 확인해야 하고 고양이 화장실이나 장난감이 구비되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이미 고양이나 개를 키우고 있다면 사고가 발생할지도 모르니 주의해야 하고 간혹 뱀같은 파충류를 키우는 사람이 있다면 맡길 수 없다. 글로 쓰면서도 믿기지 않지만 버려진 동물을 데려와 키우는 파충류의 먹이로 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후 3주정도 된 꼬미와 까미가 겨우 사람 손바닥만한 크기인 걸 감안하면 구렁이나 큰 뱀의 뱃속에 들어가는 게 불가능할 것 같진 않다. 이런 기타 등등의 여러 조건들을 확인하기 위해서 가정방문을 요청하는데 여기서 많은 분들이 입양을 포기한다. 1차, 2차, 3차 방어선 까지 들먹이며 깐깐하게 굴어대니 누군가는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하지 저런 조건이나 계약서를 따질 필요가 있냐고 물어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감정은 늘 오락가락 변화하고 약속은 쉽게 깨어지는 것이 사람들의 민낯이다.
우리는 늘 지킬 수 없는 약속들이 판치는 세상에 익숙해졌다. 정치인들의 공허한 공약에 속아 투표권을 행사해도 몇년 지나면 비리나 횡령 뉴스만 들을 뿐이다. 결혼식장에서 수많은 신랑신부들은 '검은 머리 파뿌리 될때까지 잘 살겠다' 약속하지만 그 중 절반은 이혼하거나 쇼윈도 부부가 되어 무늬만 그럴듯한 결혼생활을 유지한다.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남자들의 약속보다 변치 않는 다이아몬드가 여자의 친구(best friend)라던 마릴린 먼로는 얼마나 현명한지, 남자든 여자든 입으로 뱉는 약속은 너무나 가볍고 아무런 힘이 없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일로 누군가를 처벌할 권한도 없다. 우리에게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처벌할 권한이 없는 이유는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른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 양심과 도덕성보다 훨씬 더 원초적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나라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그들과 다를 바가 없으니 함부로 처벌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지키지 못할 약속들을 쉽게 뱉고 금새 잊어버리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약속에도 관대한 편이다. '마음이 변했겠지.' '사정이 달라졌겠지.' 그렇게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혼자 변호해주고 잊어 버린다.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빡빡하게 굴고 따져 묻는 게 더 피곤한 일이어서 그런 것 뿐이다. 그런 게으름과 관대함 뒤에는 '나중에 내가 약속을 어길 때 받게 될 비난을 피하려는 비겁함'이 숨어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네가 약속을 어긴 것을 비난하지 않았으니 내가 약속을 어길 때에도 아무 말 없이 넘어가줘.'라는 암묵적 합의를 위해 우리는 서로의 약속을 느슨하게 받아들여 준다.
그러나 그런 지킬 수 없는 약속에 생명이 걸려 있다면 큰 문제가 된다. 고양이나 강아지를 입양하겠다고 했다가 금새 마음이 변하기라도 하면 곤란해진다. 사람의 말이 하루 아침에 바뀌고 절절하던 사랑도 눈 깜짝할 새 빛이 바래는 것을 여러번 봐왔으니 결국 확인해야 할 것은 그의 마음가짐이나 동물에 대한 애정보다 안정적인 수입, 환경, 계약서 같은 구속력있고 물질적인 조건들을 확인할 수 밖에 없다. 남자의 사랑한다는 말보다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믿는 여자처럼, 입양을 원하는 사람의 의지력이나 애정이 아니라 계약서와 물질적인 조건이 고양이를 살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