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고양이들에게도 이름이...

아기 냥이 집사 구하기 Project 04.

by 구름조각

우리 집고양이의 이름은 '고진숙'이다. '고양이 고씨에 참 진 眞, 익을 숙熟 자를 써서 참되게 성숙하라는 의미로 작명소에서 받아왔다...'는 거짓말이다. 고양이 고씨라고 너스레를 떤 것은 '고양'이라고 부르는 것인 '김양', '이양'처럼 성에 '양'자를 붙이는 것 같아서 지어낸 농담이다. 진숙이라는 이름을 작명소에서 받아온 건 아니고 내가 꾼 꿈에서 받아왔다. 열아홉 살 한창 수험생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을 때였는데 하루는 이상한 꿈을 꾸게 되었다. 내가 "진숙아~ 진숙아!" 라고 애타게 부르면서 온 집안을 뒤지는 꿈이었다. 사람을 찾는 거라면 침대 아래나 옷장 속은 안 들여다볼 텐데 정말 온 집안을 다 뒤져대면서 '진숙이'를 찾다가 꿈에서 깼다. 그 꿈을 꾸고도 참 찝찝하게 생생해서 이상한 꿈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그 꿈을 꾸고 이틀 정도 지난 때였나? 여느 때와 같이 이른 아침에 등교 중에 인도 한복판에 작은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는 걸 봤다. 그 고양이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면서 "야옹" 하고 울었던 순간, 운명적으로 느꼈다. '너구나. 내가 찾던 진숙이가...'


가까이 다가가니 고양이는 절뚝거리면서 내 쪽으로 걸어와 신발에 얼굴을 비비기 시작했다. 다리 한쪽이 심하게 다쳐서 피고름이 줄줄 흐를 정도였다. 급하게 가방 안에서 수건을 꺼내 고양이를 감싸 안았다. 물병에 물이 샐까 봐 수건으로 물병을 감싸서 들고 다니곤 했는데 그날은 고양이를 감싸는 용도로 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기처럼 우는 고양이를 계속 안고 다니기도 어려워서 매점에 가서 종이 박스를 하나 얻어왔다. 고양이를 박스에 담아놓고 길고양이를 구조한다는 단체에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받은 사람은 고양이를 맡겨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열흘 후에 안락사를 시킬 거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이 참 기분 나빴던 게 은연중에 나에게 죄책감을 덧씌워서 내가 고양이를 책임지도록 압박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어쨌든 치료도 잘 못해준다는 말에 대단히 실망하여 상자를 안고 교실로 올라갔다. 같은 반 친구들은 등교하면서 고양이를 보고 놀라워하고 귀여워하고 안타까워했다. 그중에 반장인 친구가 이대로 다친 고양이를 상자째 데리고 있을 수는 없으니 같이 동물 병원에 가자고 제안했다. 선생님께는 대충 둘러대고 택시를 불러 인근에 있는 24시간 동물 병원에 데려갔다. 도착해서 보니 '24시간 동물 병원'이라 해도 늘 열려있는 건 아닌지, 병원 문이 잠겨있고 수의사 번호가 적혀 있었다. 전화를 걸어 응급환자가 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더니 곧 수의사가 머리가 까치집이 된 채로 뛰어왔다. 수의사는 고양이의 다리를 보더니 수술을 당장 하겠지만 신경을 다쳐 걷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을 했고 수술비는 어느 정도 나올 거라고 미리 알려줬다. 돈 없는 고등학생이던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 엄마가 동물 병원에 와서 결제할 테니 학교로 돌아가라는 대답을 듣고 학교로 돌아갔다. 다행히 1교시는 자습이어서 선생님들께 혼나지는 않았다.


그날 집에 가보니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고양이가 빨래 바구니 속에 담겨 있었다. 생각보다 병원비가 비싼 데다 입원비가 상당해서 엄마가 집에 데려온 것이다. 고양이를 탐탁지 않아 하시는 부모님이 방에서 상의하고 있는 사이 바구니 속에 담겨있던 고양이의 눈을 보면서 여러 번 주문을 외웠다.

"언니랑 같이 살자. 네 이름은 진숙이야. 진숙아 이제부터 언니랑 같이 살자."

진숙이는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길게 "야아옹" 울었다. 우리 둘은 오래오래 눈을 마주치고 있었고 그 후로 매일 한 침대에서 자고 일어났다.


진숙이라는 이름은 당혹스러울 만큼 촌스럽고 한번 들으면 잊지 못할 이름이 되었다. 나는 곳곳에 고양이의 이름은 '진숙이'이고 꿈에서 본 이름이라는 사연을 퍼뜨리고 다녔다. 어느 날 우연히 꾼 이상한 꿈, 그 후 운명처럼 만난 고양이 진숙이의 이야기는 친구들과 가족들의 뇌리에 각인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내가 진숙이를 키우는 것으로 여론이 형성되었다. 진숙이란 이름이 예쁘지 않다고 질색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좋든 싫든 고양이 진숙이의 사연은 잊을 수 없게 되었다. 예쁘고 평범한 이름보다 촌스럽고 모자란 듯한 이름에 더욱 정이 가기 마련이니까. '진숙이'라는 이름은 입에 착착 달라붙는 정겨운 맛이 있었고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작은 고양이의 모습은 모두의 동정심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엄마도 진숙이의 밥과 약을 챙겨주며 금세 정이 들었다. 물론 우리 진숙이가 제법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던 것도 큰 몫을 했다. 마침내 고양이를 다른 집에 보내라는 아버지에게 어머니의 일갈이 있었다.

"고양이 싫으면 당신이 집에서 나가!"

뭐, 그렇게 엄마의 한판승으로 진숙이는 우리 집 막내딸이 되었다.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하나의 대상을 더 이상 보편적인 대상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특별한 대상으로 만드는 행위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도 이름을 알게 되면서부터 스쳐가는 의미 없는 사람이 아니라 특정 인물로 기억하게 되고 나와 관계를 맺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길가에 무성한 잡초도 이름을 알게 되면 더 이상 잡다한 풀이 아니게 되고, 남들 눈에는 하찮게 보이는 달팽이 같은 것들에게도 이름을 붙이게 되면 애완동물이 된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대상을 알게 되는 것이고,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대상에 정을 붙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꿈틀꿈틀 살아 있는 전복이나 싸구려 인형같은 온갖 잡다한 것들에도 이름을 붙이고 정을 준다. 정 떼기의 어려움을 아는 어른들은 점점 더 정을 붙이지 않으려 이름 대신 직위나 직업으로 상대방을 부른다. 경비원의 이름을 궁금해하지 않고 '경비원 아저씨'나 '경비원'으로 부르고, 회사에서는 이름보다 부장님, 과장님, 사장님이라고 직위를 부르는 게 일상이다. 회사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애정을 가지는 것보다 조직 내의 위계질서를 확인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게 우선이라 그렇겠지? 중년의 나이가 지나면 이름을 불리는 일이 점점 사라진다. 엄마, 아빠, 부장님, 과장님, 누구의 학부모님, 혹은 아줌마, 아저씨로. 애정을 담아 이름을 부르고 이름이 불리는 일이 낯설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점점 다정하게 이름으로 불리는 게 낯설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다.


위층에 사는 4명의 아이들이 상자 속의 고양이 두 마리에게 이름을 붙여 주면서 정을 붙였다. 갈색 눈에 귀가 까만 고양이는 '까미'라고 이름 붙이고 파란 눈에 귀가 하얀 고양이는 '꼬미'라는 이름을 받았다. '꼬미'의 꼬리는 까만색이지만 꼬리 끝 부분만 하얀 부분이 있다. 아이들은 정떼기의 어려움을 아직 몰라서인지, 새끼 고양이에게 정을 붙이고 이름을 붙이는 데 주저함이 없다. 그 애들의 용기에 감화되어 나도 고양이들이란 단어 대신 꼬미까미로 부르기로 했다. 3일째 되는 날부터 꼬미까미는 로봇 청소기 위에서 장난도 치고, 집안 곳곳을 탐험하고 있다. 까미가 좀 더 장난꾸러기이고 꼬미는 조금 얌전한 녀석이라고 한다. 아직 너무 어려서 성별은 모르지만 아마 까미 녀석은 사내아이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벌써부터 몸집도 까미가 조금 더 큰 것 같고 좀 더 늠름하게 생긴 것 같다. 이 작고 연약한 꼬미까미에게 좋은 집사가 나타나길 기원해본다.





keyword
이전 04화사람에게 상처받고 사람에게 치유받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