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놈은 늘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나를 데려간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상자 속의 고양이도 그렇고 피 흘리는 다리로 절뚝거리며 나에게 왔던 반려 고양이도 어리버리한 나를 생각지도 못한 삶으로 이끈다. 상자 속의 고양이는 나에게 '버려진 고양이들의 세계'에도 수많은 규칙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국가와 지방단체들이 동물보호에 소홀하여 동물을 돈으로 사고 팔고 버리고 학대하는 사이에,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반려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버려진 고양이들의 세계'가 워낙 잔혹하여 블로그의 글도 한편 써놨다. 작은 동물들에게 끔찍한 학대를 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수의 동물들을 키우거나, 예쁜 동물이라고 데려가서 싫증이 나면 다시 유기하기를 반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속이 메슥거렸다. 이에 대항해서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카페에서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입양 계약서'같은 법적인 효력이 발생하는 서류도 제시하고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들을 정리해 입양 조건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제시하고 있었다. 페이스북에 '길고양이 친구들'이란 페이지에는 좋은 보호자인 척 접근하는 학대자들의 신상을 공유하면서 반려동물들이 해코지 당하지 않도록 서로에게 경고 메시지를 주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 '버려진 고양이들의 세계'에 체계적인 시스템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노력으로 정보들을 축적해 준 결과일 테지. 새삼 존경스러운 마음이 생겼다.
만약 동물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의 행위가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어떤 인간들을 자신들을 괴롭히고 해코지하려고 하는데, 어떤 인간들은 도와주고 사랑해 주려 한다. 동물들의 세계는 포식자과 피식자의 관계가 명확해 사슴은 늑대를 보면 도망치고 토끼는 여우를 보면 도망친다. 그런데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그렇지 않다. 인간은 어떤 동물은 사랑하고 어떤 동물을 잡아먹는다. 일종의 선별적인 사랑인 셈이다. 동물의 종류뿐 만 아니라 동물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인간마다 천차만별이다. 어떤 인간은 동물을 인간보다 사랑하고, 어떤 인간은 동물에게 무관심하고, 어떤 인간은 동물을 무서워하고, 어떤 인간은 동물을 싫어하고, 어떤 인간은 혐오를 넘어 증오하고 학대한다. 인간이라는 종이 다른 포유동물들과 맺는 관계는 이렇게나 모순적이고 다면적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동물들이 인간을 정말 좋아하는지도 의문이다. 늑대를 길들여 개로 만든 역사를 보면 개는 늑대들 중 인간친화적인 유전자를 가진 개체들만 남겨서 만든 종이다. 현대 사회로 올수록 인간의 선호에 따라 교배를 반복해 만들어낸 견종들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개들은 '인간을 사랑하도록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생명체'가 아닐까 의문이 생긴다. 고양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 코가 납작하게 눌리거나 다리가 기형적으로 짧게 만들어진 고양이들을 보면 섬뜩하다. 저런 고양이들은 인간의 보살핌 없이는 자연 상태에서 아예 생존이 불가능할 것이다. 숨을 쉬는 것도 버겁고 높이 뛰기도 빨리 달리는 것도 못하는 고양이들을 귀엽다고 좋아하는 인간들을 보면 더욱 의심스럽다. 고양이는 정말 인간을 좋아할까? 아니면 자신의 목숨 줄을 쥐고 있는 상위 개체에게 굴욕적인 복종을 하는 것에 불과할까?
새끼 고양이들이 담겨 있던 상자 아래에는 강아지들이 쓰는 배변패드가 깔려 있었다. 그러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고양이를 상자에 담아 아파트 단지 구석에 유기한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다. 물 한 그릇, 고양이 밥 한 그릇 없이 상자에 배변패드만 깔아서 덜렁 나무 뒤에 숨겨놓은 누군가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낳은 새끼들 중 아파 보이는 고양이들을 내놓은 것일까? 아니면 자기도 불쌍하다고 길고양이를 데려왔지만 막상 키울 엄두가 안 나서 상자 속에 담아 내놓은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키우려고 사 온 새끼 고양이가 눈병에 걸리니 금세 싫증이 나버린 것일까? 생후 3주 정도의 어미젖도 덜 떼고 눈에 진물을 흘리는 아기 고양이들이 상자 속에 담긴 사연이 궁금했으나 고양이들은 말이 없다.
생각이 이어지니 금세 머리가 복잡해졌다. 생명을 책임지고 보살피고 믿을만한 누군가에게 입양 보내기까지 고려해야 하는 단계가 너무 많았다. 내가 모르면 몰라도 알게 된 이상 무시하기는 힘든 상황들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짐을 떠넘기듯 데려갈만한 누군가의 손에 덥석 맡기기에는 세상에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내가 책임지기에는 능력이 부족하여 또 자기혐오에 빠질 뻔했다. '내가 이런 고양이쯤 마음대로 책임질 수 있는 수입과 공간이 있었더라면...'하고 아쉬워지는 것이다. 예전에 한 드라마에서 본 장면이 생각났다.
잘 사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 되기 쉬워...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
'진즉에 잘 사는 사람이 되었더라면 어른의 도움이 필요한 초등학생들을 외면하겠다는 비겁함도 생기지 않았을 테지. 좀 더 권력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사회를 바꾸기 위해 뭔가 실제적인 행동을 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나에게 많은 돈이 있었다면 이 고양이들을 바로 좋은 환경에서 안락하게 보호하고 '내가 책임지겠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그 모든 상상들은 막연한 가정에 불과하다.
나는 내 집도 없고 고정 수입도 부족하고 내 한 몸 건사하기 힘들지만 내가 가진 소소한 능력과 별 볼일 없는 헌신으로 작은 고양이들을 도와주고 싶다. 이틀째 되던 날 위층 이웃이 보내준 영상에는 애처로운 고양이들은 어디 가버리고 장난기 넘치는 아기 고양이 두 마리만 있었다. 그 사이 눈병도 많이 좋아져서 보기에 훨씬 예뻐졌다. 화목한 가정에서 넘치는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동물들이 사람들에게 치유받고 사람과 동물 사이의 간극을 넓혔다 좁혔다 한다.
가까운 미래에 동물들 쪽에서 먼저 인간을 배척하고 외면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버림받는 쪽은 인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동물들 스스로 인간을 손절한다고 해도 그간 해온 행적들이 있으니 딱히 변명은 못할 테지. 지금 내가 하는 소소한 구조니 입양이니 하는 일들은 유죄판결을 받을 인간 종족들에게 정상참작도 받지 못할 작은 선행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