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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조각 Nov 01. 2021

우리가 이별을 결심할 때

<유미의 세포들> 시즌 1 리뷰

    웹툰 원작의 TVN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이 시즌 1을 마무리했다. 마지막 장면은 사랑했던 구웅과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유미의 모습과 1년 1개월 4일간의 연애사가 거꾸로 돌아가며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순간으로 마무리되었다. 유미와 구웅이 처음 만난 장소와 이별을 말하며 헤어진 장소 모두 분수대로 끝났다. 1년 1개월의 기간 동안 만났으니 헤어진 계절도 사랑에 빠졌던 그때와 같을 것이다.


    결말을 이미 알면서도 김고은, 안보현의 연기에 몰입하고 공감하면서 드라마를 봤다. 사랑에 빠진 커플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솟아났지만, 오늘의 이별 장면을 보고 지난 나의 이별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동시에 우리는 언제 관계를 끝내고 이별을 결심하는지 궁금해졌다. 알콩달콩 사귀던 커플도, 매일 전쟁같이 싸워대는 커플도, 남들보다 못한 관계를 유지하는 커플도 헤어질 때는 아주 사소한 것들이 계기가 된다. 갑자기 코를 푸는 모습이 더럽게 느껴진다거나 밥 먹는 모습이 꼴 보기 싫어진다거나 드라마에서처럼 성의 없는 메시지 답장에서 정이 떨어져 버린다. 그러니 우리가 왜 헤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답변은 거창하거나 논리적인 이유가 없을 때가 많은 것이다. 생각해보면 늘 같은 사람이었지만 그때는 내가 사랑했고 지금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뿐이다. 콩깍지가 씌었다 벗겨진 정도의 차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별을 생각하는 순간은 어쩌면 '사랑보다 상처가 더 클 때'도 아니고, '믿음이 깨졌을 때'도 아니고, '둘이어서 괴로움이 혼자여서 외로움보다 더 클 때'도 아닌 것 같다. 그저 '다 사랑했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의 관계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수명이 다 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헤어져야 할 순간인 것이다.

다 사랑했다.

    이미 수명이 다한 관계를 쉽게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익숙하고 편안한 관계는 그 나름대로 소중하고 만난 기간이 길어질수록 왠지 더 의미 있게 느껴지는 게 연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음과 달리 몸은 관성대로 익숙한 사람과 나누던 일상으로 복귀하려 한다. 퇴근 후 나누던 잡담, 저녁은 먹냐고 묻는 소소한 안부, 주말마다 하던 데이트 같은 것들이 그리워진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20816030

    데이트 코치인 로건 유리의 저서 『사랑은 과학이다』를 인용하면, 저자는 이별을 위한 컨설팅 이전에 반드시 의뢰인에게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그것은 "연인을 당신의 옷장에 보관 중인 옷에 비유한다면 어떤 옷이라고 말하겠는가?"이다. 헤어질지 말지 고민하는 연인을 떠올리며 낡고 보풀이 잔뜩 일어난 스웨터나 편하지만 밖에서는 입을 수 없는 목 늘어난 티셔츠를 생각한다면 게임 끝인 것이다. 이미 예전에 버렸어야 하지만 그저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가지고 있는 낡은 옷처럼 이미 정리했어야 하지만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머무르고 있는 의미 없는 관계라는 뜻이다.


    낡은 옷, 오래된 물건에 정 들이고 오랫동안 간직하는 사람이 있다. 나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어서 중학교 때 친했지만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가 준 쪽지를 버리지 않고 간직한다. 그 밖에도 몇 년씩, 심지어 어머니 아버지가 입던 옷을 물려받아 입기도 한다. 문제는 버리지 못한 옷을 옷장에 가득 쌓아 놓는 것처럼 의미 없는 관계도 쉽게 버리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그렇게 망설이는 동안 나와 그의 시간을 버린 것뿐만 아니라 좋았던 기억들도 망가졌다는 걸 인정한다.


     떠올려보면 첫 번째 남자 친구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지만 버리긴 아까운 원피스 같았다. 20대 초반에는 나에게 어울리는 게 뭔지도 몰라서 지하상가의 값싼 옷을 이것저것 사놓고 안 입기 일쑤였다. 어렸을 때 나에 대해 잘 몰라서 했던 실수 같은 것이지. 그때 빨리 그 옷을 버리고 나에게 어울리는 다른 옷을 입었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사귄 남자 친구는 예쁘지만 입으면 너무 불편한 옷 같았다. 그 옷을 입은 나는 꽤 화려하고 멋있어 보였지만 정작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꽉 조이는 드레스 같았다. 그런 옷도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진작에 벗어 버리고 다른 옷을 입었으면 될 텐데 그때도 쉽게 버리지 못했다.


    내 인생을 미니멀하게 바꾸겠다며 옷장과 화장대, 책장을 정리하고 의미 없는 관계들을 정리하면서 생각했다. 앞으로 나에게 어울릴만한 옷은 소박하고 편안하고 단정한 옷이면 좋겠다고...... 관계를 맺을 사람도 그렇게 소박하고 편안하고 단정한 사람이면 좋겠다.   


    서로 예쁘게 사랑했던 유미와 구웅은 익숙한 옷을 버리고 자기에게 어울릴만한 새 옷을 찾아 입기로 했다. 옷이 싫어지거나 찢어져서가 아니라 그저 너무 자주 입어서 빨리 낡아버린 것이다. 옷장을 비워야 새 옷을 사 입고 하나의 인연을 정리해야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 그렇게 수명이 다한 관계를 정리하는 그들의 마지막도 참 담백하고 예뻤다. 새로운 옷을 입을 유미를 기다리며 <유미의 세포들> 시즌 2를 기다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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