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할 수 없는 운명의 방향
지뢰밭 같은 우리네 인생사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들어본 가장 무서운 이야기는 지인의 사촌동생이 18살 때 계단에서 미끄러져 꼬리뼈를 다쳤는데 그 뒤로 전신마비가 되어 30년째 병상에 누워있다는 사연이다.
이 이야기가 소름 끼치게 무서운 이유는 너무나 사소한 사건 하나가 인생의 큰 비극으로 자랐다는 점이다. 계단에서 미끄러지는 일이야 모든 사람이 살면서 한 번쯤은 겪을 일인데 결말이 전신마비라니. 의식이 살아있는 채 몸만 굳었다는 게 더 고통스러울 것 같다. 옛말이 '재수가 없으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데 코만 깨진 게 다행이라고 안도해야 할 판이다.
가끔 살다 보면 보면 "일이 꼬이려면 이렇게도 꼬이는구나." 싶을 때도 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예상치 못한 변수로 흥망성쇠가 결정되는 걸 보면, 운칠기삼이란 말이 꼭 틀리지도 않다. 인간의 머리로는 계산이 안 되는 원인과 결과들.
만약 고도로 발달한 AI가 세상 모든 일의 변수를 계산했는데도 앞날을 예측하는 것에 실패한다면, 그때는 아마 운명이나 신의 존재가 증명되는 게 아닐까? 신의 권력을 제치고 발달해온 과학이 기어코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면 그것도 참 재미있는 결말일 것 같다.
지금처럼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 사회에서는 이런 비극을 신의 장난이나 저주로 설명했다. 설명되지 않은 혼란보다는 차라리 신의 노여움이라고 받아들이는 게 마음만은 편할 수 있다. 그러면 신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재물이라도 바치고, 무릎이라도 꿇을 수 있으니. 멀쩡하던 사람이 미치고, 부강하던 도시가 몰락하고, 어느 날 논 밭에 메뚜기떼가 덮치는 일은 신이 화가 나서 우리를 벌하기 위해서 권능을 행사했다고 믿었다.
인간에 비교할 수 없는 힘과 영생을 누리는 신이 묘하게 인간처럼 쫌스럽고, 질투하고, 앙심을 품는다는 게 우습다. 옛날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 모양인지, 아니면 그리스 로마 신들의 막장 이야기에 지쳤는지, 다음 세대에 등장한 유일신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단다. 가끔 내리는 대홍수나, 기근이나 벼락같은 건 다 우리가 엇나갈까 봐 훈육 차원에서 하는 사랑의 매질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과학이 신의 권좌에 앉아 있다. 과학이 증명한 원리는 세상의 법칙이 되고 무지한 인간은 그 지식 앞에 복종해야 한다. 그렇지만 눈 부시게 과학이 발전했음에도 여전히 미래는 불안하고 우리의 예상을 벗어난다. 그러니 아직도 세상엔 종교가 사라지지 않고, 타로카드와 점집이 성행하는 것이다.
나도 한때는 인간 세상을 살아가는 게 너무 불안해서 그런 것들을 공부한 적도 있다. 점성술을 배우고 성격 유형 분석을 배워 사람들을 열심히 분석했다. 그건 나에게 가장 큰 불안 요소가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속이고, 자기의 이익을 우선하고, 인간성은 사회가 만들어낸 환상이란 믿음. 그 시절 나에게는 내가 사는 이 땅이 아귀들이 득실거리는 아수라 지옥처럼 느껴졌다.
예측되는 위험 요소를 피하려 애쓰지만 언제나 나의 예측을 벗어나는 세상이기에, 괜한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측할 수 없는 우리의 인생이 지뢰밭을 걷는 것 같다. 까딱 잘 못 디디면 발목이 날아가고 목숨도 날아간다. 사람의 목숨줄은 왜 그리 약한지 뭔가 대단히 극적인 죽음을 맞는 경우도 거의 없다. 말벌에 쏘여 죽었다는 사람. 그냥 잠들었는데 다음 날 영영 못 일어났다는 사람.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 넘어졌는데 침대 모서리에 부딪혀 죽었다는 사람. 부처님은 식중독에 걸려 앓다가 돌아가셨다지. 깨달은 자에게도 죽음은 공평하다.
흘러가는 실개천은 물줄기가 모이고 모여 강줄기가 되고 모두 끝에 바다에서 만난다. 인간이 이름 붙인 대서양이나 태평양 같은 건 그저 이름뿐이라, 바다끼리는 서로 하나인 셈이다. 사람의 생애도 마찬가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도 결국 모두 죽음으로 만난다. 삶의 마지막은 모두에게 비슷할 것이다. 숨을 헐떡이다 단말마의 탄식과 함께 굳어 버리겠지. 그것을 다 알고도 무사히 살아지는 오늘에 감사하는 것이 인생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