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로하는 방법을 알려줘.

원하시는 위로가 뭔지 말씀만 하십쇼.

by 구름조각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어떻게 위로받고 싶은지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만나면 별 희한한 주제를 다 끌고 와서 대화를 하기 때문에 그날의 주제도 뜬금없이 튀어나온 건 아니다. 공감능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위로를 하는 것에 공감이 필수적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사실 사람마다 위로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이야기도 했다가, 나는 이렇게 위로를 받고 싶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한 친구는 자기에게 쌍욕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험에서 떨어지거나 하면, "그러게 공부를 더 했어야지 멍청아!"라고 질책을 해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게 진짜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 친구는 자기가 자신에게 할 비난을 남의 입으로 듣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어차피 남들이 안 하면 끝없는 자기 비하에 빠질 테니 타인의 비난을 듣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할까? 상당히 피학적인 위로법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친구는 같이 울어주는 게 최고의 위로라고 했다. 아니면 화를 낼 때 같이 화를 내주거나. 어쨌든 감정을 함께 따라가는 게 제일 마음이 편해지는 위로법이라고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힘든 일이 있어서 전화하면 그 친구는 항상 나보다 더 화내 주고 더 속상해해 줬던 것 같다. 자신이 받아본 최고의 위로법으로 나를 위로해 준 것이라고 생각하니 새삼 고마워졌다.


나는 사실 같이 웃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 안되네 젠장.
원래 인생은 네 마음대로 안된다는 거 모르냐?
아, 그렇지. 내가 경솔했네.

이런 시답잖은 농담을 던지면서 한바탕 웃고 말았으면 좋겠다. 너무 심각해지거나 내 앞에서 울면 좀 당황스럽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에도 "금방 지나갈 거야." "너라면 잘 해낼 수 있어."라고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게 해 주면 좋겠다.

땅바닥을 보며 좌절할 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고 등을 툭툭 쳐주는 정도의 위로면 충분하다.

호들갑 떨지 않고 담담하게.


좀 미묘한 점은 내 감정을 부정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점이다. 예전에 오랜 친구 한 명과 대화를 나누다가 이런 위화감을 느꼈다. 독일 생활할 때 바에서 일하다가 사장이 성추행 한 후로 우울증이 왔다는 말을 했는데, 그 친구가 자기는 학교에서 칼 든 사람을 봤는데 다른 친구들이 와서 살았다며, 그러곤 금세 괜찮아졌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 친구의 정확한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추행 정도는 목숨을 위협받은 것도 아니고 별 거 아니지 않냐는 말로 들렸다. 그 당시에는 화를 내거나 따지지 않고 그렇게 생각하냐고 넘어갔다. 그냥 나만 그 대화를 마음에 담아두기만 했다.


그 후에 이삿짐을 정리하면서 중학교 때 그 친구와 대화한 일이 일기장에 적혀 있는 걸 발견했다. 그 친구는 15살에 학교에서 만났고 일기는 16살에 적어 놓은 것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빠가 사소한 오해로 날 심하게 때렸던 게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다는 말을 했더니, 그 친구가 그 정도는 다른 애들도 다 맞고 산다는 말을 했다고 적혀 있었다. 난 그걸 또 그 자리에서는 넘어가고 집에서 생각해보니 서운해서 일기장에 적어 둔 모양이다. 그 친구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정도는 별거 아니야. 다른 사람들도 다 겪는 일이야. 나도 그런 일을 겪었어.


어쩌면 그게 그 친구에게는 최선의 위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난 그런 식의 위로는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그 친구에겐 힘들다는 말은 꺼내지 않기로 했다.


내가 원한 것을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부정이 아니라 긍정이다. 별거 아니라는 말이 사소한 일이고 힘들만한 일이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 정도는 이겨낼 수 있고 버텨낼 수 있다는 긍정의 의미다. 그런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 때문에 어떤 말은 깊은 상처로 남고, 어떤 말은 두고두고 고마운 위로로 남는다.


사과를 하는 태도에도 지켜야 할 원칙이 있듯이 위로하는 사람에게도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1. 상대의 감정을 읽어 주기-명료화(validation)
2. 상대의 감정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인정해주기-정상화(normalizing)
3. 상대의 가치를 확인해주기-승인(affirmation)

*정신의학 신문의 기사를 참조했습니다.

http://www.psychiatric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9111

위로에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면, 좀 더 디테일한 부분은 친구들끼리 미리 알려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좀 더 날 혼내주면 좋겠고,
난 같이 감정표현을 해주면 좋겠고,
난 신나게 같이 웃어줬으면 좋겠다.'

함께 웃음으로 슬픔과 고통을 승화하는 것이 나의 방어기제라는 걸. 서로 알고만 있다면 힘들어하는 친구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서 헤매는 일은 없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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