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다리살, 앞다리살로 만드는 돼지고기 수육
올해부터는 김치 그냥 사 먹으면 안 돼?
매년 엄마에게 김치도 사 먹자는 말을 하지만 정작 공장 김치에 제일 아쉬워할 사람은 저일 것 같아요. 집에서 엄마의 손맛으로 담근 김치 맛에 길들여졌고 원래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을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도 김장철마다 고생하는 엄마를 생각하면 괜히 사 먹자는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럼 엄마도 솔깃해서 "홈쇼핑에서 김수미 김치 한번 사볼까?" 하시는데 그래도 매년 하는 김장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시는 것 같아요.
김장을 하면 적어도 3일간의 준비가 필요하죠. 양념을 만드는 데 하루, 배추를 절이고 물기를 빼는데 하루, 김칫소를 버무리는 데 하루가 걸려요. 그나마 절인 배추를 사고부터는 배추 절이는 시간을 많이 줄일 수 있었지만 물기에 축 늘어진 배추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물기를 빼는 작업도 꽤 노동력이 든다고요. 예전에 절인 배추를 일일이 씻어 물기를 뺄 때에는 허리가 끊어지는 줄로만 알았지만 요즘은 그냥 허리가 뻐근하다 정도에서 끝나는 수준이랄까요?
커다란 김장용 매트를 깔고 그 위에 양념을 한 가득 부어놓고 절인 배추를 버무리고 있으면 양반다리 하고 앉은 다리가 저려 이리저리 꼬물대 봐도 방법이 없죠. 최선은 후다닥 김칫소를 버무리고 침대에 눕는 것 밖에 없습니다. 배추 잎을 일일이 들어 적당한 정도로 김칫소를 넣는 것도 노하우가 필요한데 양념이 적으면 싱겁고 많으면 짜고... 작년에는 제가 김칫소를 적게 넣어서 약간 싱거운 김치를 먹었어요. 아, 그리고 금방 먹을 김치에는 김칫소에 굴을 넣어서 같이 버무려 줍니다. 우리 집 식구들은 모두 굴김치를 가장 좋아해요.
어렸을 때는 모든 집에 김장 김치는 굴을 넣는 줄로만 알았어요. 중학교 때 친구네 집에서 갈치 넣은 김치를 봤을 때 얼마나 놀랬던지... 갈치와 오징어를 잘게 잘라 김치를 담은 걸로 김치찌개도 하고 김치볶음밥도 하더라고요. 그때 친구가 만들어 준 갈치 김치볶음밥은 말도 못 하게 비렸지만, 아무 말도 못 하고 끝까지 먹었어요. 남의 집 김치를 두고 맛이 있다 없다 평가하는 건 뭔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죠? 친구의 엄마를 욕하는 듯한 기분이라 비리는 뭐든 주는 대로 얌전히 먹고 나왔습니다.
굴을 잔뜩 넣은 우리 집 김치도 누군가에게는 비리고 이상한 조합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참 재밌네요. 예전에는 집집마다 김치 맛이 달랐는데 요즘엔 공장 맛으로 통일되는 게 아쉽기도 하고요. 우리 집 전통을 지키듯 김치와 된장을 담그는 엄마가 대단하게 느껴져요. 외할머니께 물려받은 비법으로 엄마가 만든 된장은 장 가르기를 하지 않아서 검은 간장 빛이 나는 진하고 짠 된장이 되는데 이걸로 된장찌개를 끓이면 얼마나 구수한지 몰라요. 나중에는 제가 엄마가에게 배워 우리 집안의 장과 김치를 이어갈 수 있을까요?
외할머니댁에서 이모, 외숙모, 엄마, 외할머니 전부 모여 김치를 담근다고 했으니 저는 집에서 수육을 준비합니다. 삼겹살 수육이 맛있겠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서 망설이다 돼지고기 앞다리살 800g과 뒷다리살 1kg을 준비했어요. 뒷다리살도 부드럽게 익히면 담백하게 먹을 수 있고 앞다리살을 쫄깃한 맛이 있으니 적당히 섞어먹으면 될 것 같아요. 채소의 물기로 익히는 무수분 수육도 있고 콜라로 익히는 콜라 수육도 있더라고요. 유튜브로 다양한 영상들을 보면서 어떤 방법으로 할지 고민했지만 제일 베이식한 방법, 늘 하던 방법이 좋을 것 같았어요. 우리 집 전통의 김장 김치에는 전통 방식의 수육이 제격이지 않겠어요?
일단 수육용 고기를 씻어 물기를 제거하고 소금을 조금 뿌려둡니다. 소금의 화학식이 NaCl인데 고기의 수분과 만나 녹으면 Na와 Cl이 이온화되어 더 작은 입자고 고기 깊숙이 침투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소금을 뿌려두고 10~20분 정도 둬야 속까지 짠맛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고기 표면을 보니 돼지 털이 약간 보여서 겉면을 그슬려 주기로 했어요. 기름을 약간 두른 팬에 고기의 4면을 익혀서 색을 내줍니다. 고기를 먼저 굽고 수육을 만들면 모양도 잘 유지되고 색도 먹음직스럽게 나요. 반대로 고기 수육을 만들고 나서 팬에 구워주는 사람도 있는데, 간장을 살짝 입혀 구워주면 향과 맛이 좋아진다고 해요. 집집마다 김치 양념이 다르듯이 좋아하는 수육 레시피도 다른 모양입니다.
커다란 냄비에 구운 고기를 넣고 양파 한 개, 대파 2개를 뚝뚝 끊어 넣어주세요. 생강 한 톨도 잘게 썰어 넣고 고기의 잡냄새를 잡아주는 월계수 잎도 2~3장 넣습니다. 된장도 듬뿍 한 스푼 넣고 사과 주스를 한 컵 넣었어요. 사과를 넣어줘도 되지만 사과주스도 괜찮아요. 과일의 단맛이 고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맛을 끌어올려 줄 겁니다. 파인애플의 빳빳한 심지를 같이 넣어도 좋고, 귤껍질을 넣어도 좋습니다. 미림도 반 컵 넣고 강불에서 30분, 중불에서 20분 삶아줄 거예요. 그러고 육수에 잠겨 있는 채로 천천히 식혀줄 겁니다. 육수 속에서 식으면서 다양한 맛들이 고기에 배어들고 고기를 썰기 좋은 정도로 단단해질 거예요.
뒷다리살로 만든 수육은 담백하고 앞다리 살로 만든 수육은 쫀득합니다. 삼겹살 수육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데다 가격도 저렴해서 부담이 없었요. 김장 김치를 결대로 쭉쭉 찢어 돌돌 말고 굴 한 개도 같이 올려 수육과 먹으면 이것 만큼 맛있는 게 있겠어요? 1년 중 단 하루 김장날에만 먹을 수 있는 별미인데 간편한 공장 김치 때문에 이 맛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매년 고생스러운 김장을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대식구가 모여 김장을 하고 커다란 밥상에 둘러앉아 김장김치에 수육, 어묵탕을 먹는 게 자연스러웠는데, 요즘에는 드라마 속에서나 보는 장면일까요? 한 때는 우리나라에 500종이 넘는 김치가 있었다고 하는데 점점 개성 있는 김치 맛이 사라지고 표준화되고 일반화되는 게 아쉽기도 합니다. 나중에는 집에서 김장하는 집이 없어질지도 모르겠어요. 저에게도 '우리 엄마의 김치'가 사무치는 그리움이 될 날도 찾아오겠죠. 곧 다가올 어머니 생신에는 근사한 생일상을 차려드려야 겠다고 다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