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오만과 편견> 브리짓 존스의 일기
19세기 영국에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 있다면, 21세기 영국에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있다. 「오만과 편견」에서 영감을 얻어 한 남녀가 오해를 풀고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에 약간의 현실감과 짓궂은 농담을 더했다. 무려 2001년에 개봉한 브리짓 존스 영화 트릴로지의 시작, <브리짓 존스의 일기 1편>의 이야기다.
너무 유명한 영화는 때로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 영화의 내용과 결말까지 다 알지만 실제로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은 없는 경우. 나에게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딱 그런 영화인데, 중학생 때 2편 <브리짓 존스-열정과 애정>을 보고 성인이 돼서 3편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을 본 후에야 1편을 아직 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아차!' 하는 마음에 바로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찾아봤다.
영화는 31살의 노처녀라고 자기 신세 한탄을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거기서 두 번째 '아차!' 했다. 내가 바로 31살, 브리짓 존스와 동갑인 것이다. 그나마 시대가 빠르게 변해 요즘 31살은 '노처녀'소리는 듣지 않는다지만 실속 없는 연애와 술과 일기장만큼은 브리짓 존스와 꼭 닮았다. 비슷한 나이와 비슷한 몸무게, 친구들과 신나게 술을 마시는 내 모습이 브리짓 존스와 비슷해 보인다. 아, 혼자 글을 쓰고 늘 혼자만의 상상 속에 산다는 것도!
천방지축의 사고뭉치 브리짓 존스가 사랑스러운 이유는 그녀가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마치 아이의 천진난만하고 대책 없는 해맑음이 브리짓의 매력일 것이다. 다소 경직된 다아시에게는 아마 자신과는 정반대의 매력으로 끌렸을 것이다. 1편 이후의 2편 <브리짓 존스의 일기-열정과 애정>, 3편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까지... 브리짓 존스는 통통하고 골초에 술도 많이 마시고 거침없이 욕도 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사랑스러운 여자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마크 다아시 역으로 등장한 콜린 퍼스는 일찍이 95년작 BBC 드라마 <오만과 편견>에서 피츠윌리엄 다아시를 연기한 적이 있다. 이 드라마로 콜린 퍼스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영국 여성들의 '미스터 다아시'가 되었다. 이후 한 잡지사의 인터뷰에서 콜린 퍼스가 다아시의 캐릭터를 분석한 과정을 볼 수 있다. 그는 다아시를 자신이 살아온 방식 외 다른 방식을 알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으로 이해했는데, 이것이 '오만'한 태도의 핵심이었을 것이다. 나만 옳고 상대방의 방식은 존중하지 않는 태도가 '오만함'이기 때문이다. 배우의 깊은 고민과 분석이 다아시를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들어 준 것 같다.
분명 '사랑으로 재산과 계급의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는 로맨스'는 비현실적인 환상이다. 제인 오스틴이 자신의 삶에서 갖지 못한 로맨스를 소설로 해소한 것처럼 현실에서 쉽게 이룰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것이다. 소설 밖 세상에서는 여전히 '결혼은 현실'이고 '사랑보다 서로의 조건을 따지는 것'이 현명하다.
그럼에도 영원한 사랑의 환상이 먹히는 이유는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사랑에 대한 목마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직업, 사회적 지위, 재산 등의 조건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서 어린아이 같고 부족한 모습까지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관계. 그래서 남녀노소 모두 이런 한 마디를 듣고 싶은 것이다.
I like you very much. Just as you are.
난 있는 그대로의 네 모습을 정말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