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의 러브스토리

당신의 러브스토리 1. 클라리넷 부는 남자의 사랑

by 구름조각

카카오 음에서 2기 크리에이터 #음프렌즈에 선정되면서 새로운 컨텐츠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는 만큼 새로운 콘텐츠를 진행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역사속 인물, 영화나 신화속 사랑 혹은 내가 만난 누군가의 사랑이야기를 소개하는 컨셉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들어간 음(mm)의 소통방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를 들었고 작은 관심이 생겼다. 전후 사정 설명도 없이 새로운 소통방의 첫번째 게스트로 섭외한 것에는 순전히 그의 목소리 때문이다. 유순한 목소리로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서 천천히 말을 하는 남자. "저런 목소리를 가진 남자는 어떤 사랑을 할까?" 이런 작은 호기심이 모든 일의 시작이다.


◈첫번째 사랑

그의 첫사랑은 중학생때라고 말했지만 그걸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어설프기도 했다. '더 같이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고백했지만 곧 감정이 식어버려서 헤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감정은 금새 식었지만 그 아이의 사진만은 쉽게 버리지 못하고 오래 보관했다.


◈마지막 사랑

총 2년간의 연애는 그가 일하던 카페의 알바생으로 새로운 알바생이 일하게 된 것으로 시작된다. 그 카페는 대학가 앞에 있어서 학생들이 수업중일 때는 늘 한가했기 때문에 종종 함께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호감이 싹트고 사귀게 되었다.


소박하고 예쁜 사랑을 했다. 손편지를 자주 써주곤 했는데 가끔 커피 홀더 안쪽에 작게 메세지를 적어 놓기도 했다. 오고가는 소소한 메세지에는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가득 담겨있었다. 어느날은 여자친구가 그에게 작은 화분을 사주었는데 그 후로 그는 꽃선물을 자주 전해줬다. '메리골드'라고 불리는 선명한 오렌지색 국화꽃이었다. 우리말로는 금잔화라고 불리는 메리골드의 꽃말은 '반드시 오고야말 행복'이라고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별의 슬픔' '가련한 사랑'이라는 정반대의 꽃말도 있다. 어쩌면 메리골드를 받아들고 기쁘게 웃었던 그녀의 얼굴이 이 사랑 이야기의 복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메리골드.jpg 메리골드, 금잔화

그는 헤어진 날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의 날짜, 날씨, 장소와 그녀의 표정까지 모든 것들을......이별을 말했을 때는 그가 29살이던 2018년 12월 크리스마스 전 겨울이었고, 장소는 여자친구의 집이었다. 그녀가 입고 있던 검은 색 추리닝과 이별을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까지 모든 것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에게는 삶의 우선순위가 화가 날때마다 상처를 주던 그녀의 버릇 모두 명확한 이별의 이유였지만 그녀에게는 사소한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사랑은 둘이 시작하지만 이별은 한사람의 결정으로도 이뤄진다.


헤어지고 2년여가 지난 후 헤어진 그녀에게 연락을 해 본적이 있다고 했다. 그녀가 갑상선암에 투병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보고 싶은 마음도 조금은 남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연락하지 말아달라는 단호한 답만 돌아왔다. 헤어지자고 말한 사람이 어쩌면 더 오래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와 대화를 하는 동안 그는 다시 카톡의 차단 목록을 보다가 그녀의 프로필 사진에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봤다.


◈처음과 마지막, 그 사이의 사랑

그의 사랑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에서 가장 뜨겁고 열렬했던 순간들을 엿보는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첫사랑과 마지막 사랑을 물어본 후에 '가장 잊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해 물어봤다. '잊을 수 없음'이라는 단어에는 많은 의미가 숨겨져 있다. 가장 사랑했기에 잊을 수 없기도 하지만 가장 아팠기에 잊을 수 없는 사랑일 수도 있다.


음대를 졸업한 그는 전역후 만난 같은 학과의 친구를 '가장 잊을 수 없는 사랑'이라고 떠올렸다. 피아노를 치는 여자친구와 클라리넷이라는 독주 악기를 연주하는 남자친구 커플은 모든 음대생들의 부러움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연습마다 구해야 하는 반주자의 역할을 연인이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함께 연습을 하고 음악으로 공감대 삼아 대화할 수 있었다. 그에게는 그 모든 시간이 즐겁고 소중했지만 그의 여자친구도 늘 같은 마음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함께 붙어 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떨어진 시간이 관계에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여자친구가 독일로 유학간 이후 장거리 연애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는 간절히 원했지만 쉽지 않았던 유학을 여자친구는 집안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너무나 쉽게 떠났기 때문이다. 너무 쉽게 얻은 행운은 그 가치를 모르기 쉽고, 그 행운을 간절히 원하던 이에게는 슬픔을 안겨준다.


오랫동안 이별을 고민하고 마침내 마음을 굳혔음에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렸다고 했다. 3년간의 연애를 정리하는 데 있어 마지막은 반드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한번 더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의 여자친구는 독일 생활을 하면서 한국에 돌아가면 하고 싶은 것들을 잔뜩 적어왔다고 했다. 그 중에는 홍대에서 매운 떡볶이를 먹는 것도 있었고 긴머리에 퍼머를 하는 것도 있었다. 사귀던 시절 늘 단발머리였던 여자친구가 긴 머리로 나타났을 때는 다시 조금, 설레는 것 같기도 했다. 만약 그가 오랫동안 신중하게 고민하고 한번 결정하면 좀처럼 바꾸지 않는 성격이지 않았다면, 좀 더 충동적이고 순간의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었다면, 그날 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장소를 옮겨 조용한 찻집에서 차분하게 헤어지자는 말을 꺼냈다.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말들을 조금씩 꺼내는 동안 여자친구는 그저 가만히 듣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짧은 정적 후에 그녀는 한마디를 남기고 미련없이 나가버렸다.

"그럼 나 여기 더 앉아 있을 필요 없는거지?"


그는 혼자 찻집에 남아 지난 3년간의 시간과 남은 공허감을 곱씹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고 그저 가만히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마침내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찻집을 나오고 담배를 한대 물고는 자신의 지난 연애사를 다 알고 있는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익숙한 선생님의 목소리에 안도하며 '저 헤어졌어요'라는 말을 뱉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했다. 불도 붙이지 못한 담배를 들고 그는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고 했다. 헤어짐을 말로 뱉는 순간,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었음을 알았을 것이다.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이다." 라는 말이 있다. 유사하게 "당신이 입는 것이 당신이다." 라거나 "당신이 듣는 것이 당신이다."라는 말도 있다. "내가 무엇이다."라는 정체성의 문제는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들, 즐기는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당신이 누구를 사랑했고 어떻게 사랑했느냐는 곧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준다. 호감을 느낀 이성의 모습은 내 자아의 일부를 투영한 것이고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곧 삶에 대한 태도가 된다. 그러니 누군가의 사랑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것과 같다.


그는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을 좋아하고 <너는 내 운명>,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야수와 미녀>같은 절절한 로맨스 영화를 좋아한다. 그의 영화 취향에서 그의 사랑하는 방식을 조금은 유추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남자의 지난 사랑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의 사랑방식이 곧 그의 삶의 방식을 말해준다는 걸 알았다. 신중하게 이별을 고민하고 한번 내린 결정을 쉽게 바꾸지 않는 것처럼, 그는 삶의 모든 것들을 신중하게 결정하고 쉽게 바꾸지 않을 것이다. 마치 입시전에 피아노에서 클라리넷으로 전공을 바꾸고 지금까지 악기를 놓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그의 사랑은 천천히 자라나지만 한번 자리를 잡으면 굳게 변하지 않는 커다란 바위 같았다.

001.png 1/7 밤 11시 카카오 음mm에서 [당신의 Love Story]에서 만나요~

이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은 카카오 음mm에서 클라리넷 연주를 하는 '둥이'님입니다. 이 분의 실제 지난 연애이야기를 각색했어요. 음mm에서 연주방도 열기 때문에 팔로우 하시고 연주도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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