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의 거제도 여행기
엄마와 단 둘이 여행을 가기는 처음이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실기시험으로 치러 갔을 때 한 두 번 정도 1박 2일을 보낸 것뿐이다. 그때 나는 시험 때문에 긴장해있었고 엄마도 노심초사했을 테니 즐거운 여행이라고 부를 순 없다.
올해 엄마의 생일에 처음으로 둘만의 여행을 가자고 했을 때, 엄마는 설레는 목소리로 온천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온천여행을 알아보다가 가까운 거제에 해수온천을 즐길 수 있다는 숙소가 있었다. 사진으로 보니 방도 널찍해 보이고 히노끼 탕에 탁 트인 창문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것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온천은 부담스러운데 프라이빗하게 노천탕을 즐길 수 있다면 안전하고 만족스러운 선택일 것 같았다. 숙소를 예약하고 고대하던 거제 온천 여행길에 올랐다.
입실 시간이 남아서 가볼 만한 관광지를 알아보고 매미 성으로 갔다. 사진에서는 돌을 쌓아 만든 성벽이 보이기에 유적지 같은 곳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가까운 과거에 지어진 성채였다. 이 성은 18년 동안 혼자 힘으로 지은 백순삼 씨는 원래 대우 조선 해양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었고 은퇴 후 소일거리로 생각해 텃밭을 가꾸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2003년 태풍 매미로 토사가 붕괴해 농작물이 쓸려가 버렸다.
백순삼씨는 다음 태풍에 대비해 무너진 토사 경계면에 제방을 쌓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시멘트와 콘크리트 벽돌을 쌓다가 점차 예쁜 화강암으로 짓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돌을 나르고 쌓는 고된 시간들이 십수 년 모이자 어느새 거대한 높이 9mm, 길이는 110m가 넘는 성채가 완성되었다. 지금도 공사가 진행 중인지 곳곳에 화강암 덩어리들이 쌓여 있다. 처음 계획한 성은 완성되었지만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해 휴일에 성 쌓기를 계속하신다고 한다.
태풍이 올 것을 염려해 대비하는 치밀함, 혼자 힘으로 묵묵히 고된 노동을 계속하신 인내심, 찾아올 관광객들을 생각해 공사를 지속하는 이타심, 건축을 배운 적도 없이 주변 환경에 어울리는 성채를 지은 미적 감각 등 놀라운 점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저 '기적'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감동하게 되었다.
이 놀라운 기적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의 활기가 넘친다. 각종 음식점이나 작고 예쁜 카페들이 많이 들어섰고 가까운 곳에 캠핑장이 생기기도 했다. 예쁜 몽돌 해변에서 매미 성의 풍경을 감상하고 캠핑을 즐기면서 예쁜 카페들도 가볼 수 있으니 괜찮은 관광지인 것이다.
엄마와 목을 축일 겸 들어간 카페 초록섬에는 작은 일러스트 소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양초나 폰케이스 등을 판매하고 있어서 흥미롭게 구경했다. 은은한 장미향과 블랙베리의 조합인 로즈 에이드에는 로즈메리와 레몬 장식이 올라가 있다. 함께 주문한 흑임자 젤라토도 단맛이 적고 고소해서 잠시 쉬어갈 때 먹기에 좋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4층까지 크고 넓은 카페 곳곳의 인테리어가 흥미로웠는데 2층에는 인공섬 구조물이 있고 3층에는 파리의 에펠탑, 런던의 빨간 공중전화기 부스에 뜬금없는 중세시대 기사 갑옷이 있다. 4층으로 올라가면 탁 트인 전망이 보이는 야외 테라스가 있어 사진을 찍기에 좋다.
숙소, 음식, 동행자라는 여행의 3박자가 완벽히 들어맞는 순간이 없는 걸까? 도착한 숙소는 리셉션에서부터 너저분한 사무실 풍경에 운동복을 입고 건성으로 응대하는 직원의 모습까지... 불안감이 엄습했다. 숙소는 사진과 너무 달랐다. 요즘 부동산 업자들도 자주 사용한다는 어안렌즈는 10평짜리 방도 30평처럼 보이게 해 준다. 거기다 히노끼 나무로 만든 욕조에는 곳곳에 거뭇거뭇 변색이 되어 있고 노천탕에 버금갈 정도로 탁 트인 전망 사진과는 달리 창문에 쇠창살이 달려 있었다.
엄마 생일이라도 특별히 고른 숙소인데 생각보다 너무 실망스러워 얼굴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만하면 괜찮다는 엄마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숙소가 이지경이니 저녁식사도 실패하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오늘 저녁은 무조건 맛있고 가성비가 좋아야 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폭풍 검색을 시작했는데 요즘에는 또 블로그 광고나 평점 조작이 있으니 리뷰 사진과 메뉴판 가격을 보고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카카오 맵에서 리뷰를 찾아 교차 검증을 하다 보니 메뉴 고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멍게 비빔밥은 네이버 평점은 좋지만, 카카오 맵에서 '비리고 맛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의견을 보고 패스, 해물 뚝배기는 사진으로 보이는 비주얼은 대단했지만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의견에 패스했다. 각종 해산물이 듬뿍 들어가 푸짐해 보였지만 10만 원에 달하는 금액에 만족스러운 맛인지 알 수 없었다. 횟집은 어디서나 갈 수 있으니 이것도 패스, 특별한 날을 위한 음식으로 해물 칼국수는 너무 소박해서 패스. 시간은 어느새 6시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고른 식당은 숙소에서 차로 20분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다. 배가 고파서 엄마와 견과류 한 봉지를 나눠 먹으며 기도했다.
제발... 맛있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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