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의 거제 여행기
로컬 맛집이라고 불리는 곳은 왠지 허름하다. 손님들도 인스타그램을 보고 찾아온 젊은 여자들 보다 아저씨들이 많다. 거기에 사장님이 친절하기 보단 왠지 불친절에 가까운 듯한 포스가 있다. 거제굴구이집이 딱 그런 맛집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곳이었는데 도착하자마자 컨테이너 식당안에는 얼큰하게 취한 아저씨 두분이 계셨다. 사장님은 조용히 철제 테이블로 안내해주셨는데 의자옆에는 파란색 플라스틱 쓰레기통이 떡하니 놓여 있었다. 아마 굴껍데기를 모아 놓는 용도인가 보다.
2인상 B코스는 굴회, 굴전, 굴구이, 새우구이, 굴튀김, 굴죽코스에 5만원이다. A코스에는 새우가 없고 가격이 저렴하지만 기왕 온거 새우도 먹어보자 싶어 B코스를 주문했다. 엄마는 기본 상차림의 김치를 맛보시더니 공장 김치가 아니라 직접 담은 김치인 것 같다고 하셨다. 요즘 공장 김치가 아니라 직접 담은 김치를 내주는 곳이 많지 않은데 신기한 일이다. 먹어보니 시고 콤콤한 묵은지 맛이 난다.
굴회는 무채, 당근채에 미나리 조금과 생굴을 초장에 버무려 나온다. 기본적이지만 새콤달콤매콤하니 입 맛을 돋워주는 메뉴이다. 신선한 생굴과 무채를 생김에 싸먹으니 진한 바다향이 느껴진다. 분명 맛있는 메뉴였지만 아직 이 곳이 맛집이라 확신하기엔 부족했다. 곧 굴전이 나왔고 크고 탱글한 굴알이 씹히고 갓 구워 뜨끈하니 비린내도 없다. 굴전을 한 입 먹고 '여기 맛집이구나!' 확신이 들었다.
사장님, 여기 청하 한병 주세요!
맛있는 굴전을 먹는데 술이 생각날 수 밖에 없지 않나? 뜨거운 철판에 굴의 수분으로 찌듯이 익힌 굴구이는 신선하고 굴도 제법 컸다. 굴 한점에 소주 한잔. 술이 술술 들어 간다. 이렇게 굴로 배를 채운 적은 처음인 것 같다. 곧이어 나온 굴튀김은 바삭한 튀김옷과 입천장이 데일 정도로 뜨거운 굴을 후후 불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고소하고 새콤한 타르타르 소스에 굴 튀김을 찍어 먹는 조합이라니...이 코스는 막걸리, 맥주, 소주 등 주종을 가리지 않고 모두 품을 수 있는 메뉴 조합이다.
이때쯤 치마 단추를 풀어야 할지 말지 고민하게 된다. 이미 배는 가득 찼기 때문에 지금부턴 정말 맛을 즐기기 위해 먹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순전한 즐거움과 만족감때문에 음식을 먹게 된다. 마지막으로 먹은 굴죽도 속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미리 끓여 밥솥에 보관하는 죽이 아니라 쌀 알이 삭지 않고 씹히는, 식감이 좋은 죽이었다. 죽도 맛있다며 바닥을 싹싹 긁어 먹는데 더 이상 물 한모금도 들어갈 자리가 없겠다 싶었다.
맛깔스런 음식을 먹으면서 두 명 식사값으로 얼추 10만원은 나오겠다고 생각했다. 2인 코스요리가 5만원이었는데 당연히 1인당 5만원일 거라고 예상했다. 사실 1인당 5만원이라고 해도 기꺼이 지불할만한 음식이었다. 그래서 음식값을 지불하고 나올때 영수증에 56,000원만 찍혀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음식 맛뿐만 아니라 가성비까지 완벽한 식사였다.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으나 기왕 온김에 히노끼탕에 뜨거운 물을 받았다. 워낙 탕이 넓다보니 절반 정도 물을 채우는 데에도 2시간이 꼬박 걸렸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엄마와 나란히 뜨끈한 탕에 들어갔다. 창문을 열고 조용히 귀를 기울이니 먼 곳에서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뜨거운 물 속에 앉아 창밖에서 들리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목욕을 즐겼다.
"엄마, 이것도 나쁘지 않지?"
"나쁘지 않기는...너무 좋은데?"
"엄마, 우리 앞으로 자주 여행 가자."
"좋지."
"다음에는 어디 갈까?"
"글쎄?"
"해외여행 가게 적금부터 부을까?"
"어디에 가려고?"
"나 예전에 베를린에 갔을 때 꼭 엄마랑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어."
"독일 여행 너무 좋지!"
"응, 베를린 꼭 다시 가자. 내가 다 안내해줄게."
"그래."
아쉬우면 아쉬운 데로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침대에 누웠다. 인생은 늘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실망하고 하루종일 불평할 필요는 없다. 메이크업 리무버도 안 가지고 와서 바디오일로 화장을 지웠지만, 막상 발라보니 잘만 지워지던걸? 대책없이 사는 게 아니라 유연하게 상황에 대처하면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엄마와는 늘 자매처럼, 친구처럼 살았다. 누군가는 부모님을 친구로 만나더라도 잘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는데, 나는 만약에 엄마와 학교 동급생으로 만났다면 분명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서로의 취향을 알아가고 늘 영향을 주면서 살았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를 '나의 엄마'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으로서도 참 좋아한다. 그럼에도 함께 일하는 것은 쉽지 않아서 엄마와 가게를 운영했을 때는 서로를 너무 힘들게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후회될 말들을 퍼붓고 엄마도 못지 않게 상처줄 말을 쏟아냈지만 지금은 어렴풋한 과거일 뿐이다.
엄마의 재능과 취향이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서양미술을 전공한 엄마의 손재주를 물려받아 그림을 그리거나 요리를 곧잘 해낸다. 그럼에도 늘 엄마는 나보다 그림도 잘 그리고, 뜨개질도 잘 하고, 요리도 잘 한다. 이렇게 재능 많은 엄마가 더이상 나의 엄마로만 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엄마의 재능과 취향이 세상의 인정을 받을 날이 올 때까지 내가 엄마의 가장 큰 서포터가 되려 한다. 지금까지 엄마가 늘 나의 든든한 서포터였듯이...